2008년 10월 25일 토요일

나무와 풀들.


관심이 일면 배우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도 된다.
아내는 초록색 풀들을 집안에 하나 둘 데려오면서 살뜰히도 보살피고 가꾸더니, 잠깐 동안의 외출 내내 길 옆의 나무 골목 어귀의 풀들을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듯 보고 있었다.
헝겊과 솜들, 털실들, 고양이들, 풀과 꽃들이 집안에 어우러져 오후 내내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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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3일 목요일

꿈같았던 공연



이미 다 아는 순서, 너무 익숙해진 악곡들, 마지막까지 외워버린 공연.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도.
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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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2일 수요일

아프다.

정동.
망해버린 옛 왕조와 지배세력의 동네였던 곳.
백여년 동안 수도 없이 외세로부터 유린되어오고 있는 마을.
가을 냄새가 가득하다거나 진통제처럼 고요한 풍경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지
지랄맞은 관제행사들로 도회의 건물들 사이엔 쇠가 부딛히는 소음이 맴돌이 하고 있었고
외국의 이름으로 간판을 만들어 붙인 음식점들의 냄새만 골목에 가득했다.

리허설을 마치고 비어있는 너른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있는데
계속 어지럽고 뼈마디가 아파왔다.
이틀 새에 잇달은 訃告들 때문이었는지 그저 계절에 마음이 섞여 우울했던 것인지
잘 몰랐었는데
에잇... 감기몸살이었구나.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왔다.
오늘은 먼길을 달려가서, 기다려오던 공연을 구경하기로 했던 날이었는데
몸이 아프니 마음도 맥이 풀린다.

병원에서 돌아와 식은 커피를 따라 두고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
좋은 음악을 골라 나직히 틀어놓았더니 주사약의 냄새가 코에서 났다.
오늘 밤 좋은 음악을 한껏 마시고 돌아오면 몸살도 낫고
내 악기들의 소리도 다시 상쾌하게 들렸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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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내 고양이.


집에서 뭔가 하고 있을 때에는 자주 고양이들의 방해를 받는다.
지난 밤에 매우 집중해야 하는 녹음을 하고 있었는데, 고양이 순이는 무릎을 밟으며 느린 걸음으로 올라와 컴퓨터의 Delete 키를 한 번, 스페이스 바를 한 번 눌러줬다. 녹음한 것을 지워준 후에 다시 플레이까지 해주는 센스. 꼭 붙잡아 안고서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아예 다리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그르릉, 그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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