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1일 수요일

Gerry Mulligan, Night Lights


(2006년 3월 1일)


음반의 표지 그림과 잘 어울리는 음악이 담긴 재즈 앨범들이 많다. 제리 멀리건의 이 음반이 바로 그렇다고 늘 생각했다. 아직 이 음반을 들어보지 않으신 분들, 어떤 음악일까 하고 궁금하다면 그냥 저 음반의 표지그림을 들여다보면 된다. 저런 심상이 가득 담긴 재즈음반이다.

모던 재즈를 어떻게 듣고 있는가에 따라 어떤 재즈팬들로부터는 '뭐야 완전히 이지리스닝이잖아'라고 핀잔을 들을 가능성도 많은 음반이다. 정말 쉽게 들리고 쉽게 음악에 젖게 되는, 눅눅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이유불문하고 역시 좋은 음악은 '잘 들린'다.

이 음반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는 것과 같이, 소위 말하는 '재즈의 이미지'에 충실한 분위기 때문에, 작심하고 감상에 젖을 때에 들으면 좋다거나 심신이 지쳐있을 때에 듣게 된다거나 와인이니 커피니 등등과 곁들이면 좋은 음악들이 담겨있다. 내 경우엔 최근에, 무서운 꿈을 꾸고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앉았을때에 유효하게 사용했다.

첫 곡 Night Lights는 낭만적인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피아노의 테마가 시작되는 순간 자세를 뭔가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질 정도이다. 1분 안에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음악이다. 이 음반에서의 피아노 연주는 Gerry Mulligan 자신이 직접 했다. 참 재주도 많았던 사람이었군.

바리톤 색소폰의 연주를 직접 구경할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어쩐지 이 음반을 듣고 난 후엔 바리톤 색소폰의 이미지가 머리속에 '이것'으로 규정되어버려서, 자꾸만 이 음반을 기준으로 바리톤 색소폰 연주를 점수 매기게 되어지기도 했었다. 심지어 Gerry Mulligan의 다른 앨범 마저도. 사실을 말하자면 이 음반만으로는 Gerry Mulligan의 색소폰 연주를 다 들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가 1996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들려준 음악들은 정말 대단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Birth of the Cool, 짐 홀 아저씨의 Jim Hall and Friends, 데이브 브루벡과의 트리오 음반들, 벤 웹스터와의 음반, 스탄 겟츠, 쳇 베이커, 애스터 피아졸라, 몽크와의 연주들, 빅밴드에서의 연주들......

보사노바로 연주한 쇼팽의 Prelude E Minor를 듣고 있을 즈음이면 벌써 음반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게 된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마이너 블루스인 Festival Minor에서의 짐 홀의 기타 솔로를 듣게 되면 이미 음반은 마지막이다. 여섯번째의 Tell Me When까지 듣고 음반이 끝나면 반드시 한 번 더 처음부터 들어보고 싶게 된다.

대단한 연주자들이 모여서 단 한 사람도 지나치게 튀어나오는 순간이 없이 조화롭게 절제되어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음반은 많지 않다. 너무나 듣기 편안하고 쉽지만, 연주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정말 무서운 경지들이다. 모두가 침착하고 모두가 고요하다. 지적이면서도 인텔리인척하는 허세가 전혀 없다고 표현하면 비슷할까. 앙상블이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해, 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1963년에 녹음되었고, 나는 LP로는 들어보지 못했다. 적어도 이런 음반은 턴테이블을 돌리며 들어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LP를 들어보지 못한 주제인데도 나는 쉽게 동의했다.

Gerry Mulligan 바리톤 색소폰, 피아노
Art Farmer 트럼펫, 플루겔혼
Bob Brookmeyer 트럼본
Jim Hall 기타
Bill Crow 베이스
Dave Bailey 드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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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24일 금요일

죽고싶을때.

작년이었던가, 전화를 걸어서 자살을 하겠다고 말했던 친구가 있었다. 내가 조언을 해줬다.
주말에 폭설이 내린다고 하니까, 주중에 죽으라고.
눈내리는 날 시체를 치워야 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야 할 것 아니냐고... 끝까지 말하기 전에 전화가 툭 끊어졌었다.

결과를 말하자면 그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적어도 마지막에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던 12월 말 까지는. 아마 오늘까지도 살아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죽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그렇게 살아갈 것 같다. 자신을 죽일뻔했던 위기를 딛고 남의 도움없이도 잘 버텨냈었으니까.

FxxxxT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생각이 나서 써둔다. (관련된 내용은 하나도 없어요.)

정말 죽을 정도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은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제법 많다.
혹시 지금 이 시간,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은게 있다. 정말 무섭게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을 만나면, 몸이 반응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더 빠르게 죽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느껴본 사람은 안다. 그런 상황에 몰리게 되면 필사적으로 살으려 애쓰게 된다. 숨이 쉬어지지 않고, 정말 죽음이 눈 앞에 보이게 된다.
그래서, 시쳇말로 정말 존나게 고통스러웠던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살고싶다! 라는 욕망이 생긴다. 그래서 죽지 않으려고, 이렇게 힘들어도 어떻게든 살아남아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일부러 의식하며 숨을 쉰다. 그렇게 자고, 그렇게 돌아다니고, 그렇게 힘든 날들을 보내다가보면 잇몸이 주저 앉기도 하고 단단한 어금니에 금이 가기도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까지 힘들어본적이 없거든, 그냥 죽어보는 것도 좋다. 정말로 목숨을 끊으면 큰일이니까 권장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유서 따위를 써보든가, 간접체험을 해보든가, 여러가지 문학적 상상을 해보던가....... 분명한 사실은 어떤 쪽이든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죽고싶을 정도로 아픈 상태라면 (조금은 매정한 말이긴 하지만) 아직 덜 아파본 상태라고 해주고 싶다. 그 정도 증세라면 아직도 기운이 남았으니까, 기운을 내주세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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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19일 일요일

스페이스 공감 공연.



이틀 공연을 했다. 두번째 날 공연이 녹화되었다.
이 모습은 첫날의 장면이었다.
첫날 보다 이튿날의 연주가 기분이 좋았다.

힘들고 즐겁지 않은 공연을 하고 나면 묘하게도 투지라든가 오기 같은 것이 생긴다.
그런데 즐겁게 연주하고 기분 좋은 공연을 마치고 나면, 집에 돌아올 때에 마음은 더 무겁고 길은 더 멀게 느껴진다.

이 공연을 하고 있던 그 이틀 동안 일본에서는 리차드 보나의 공연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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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씩 이런 짓을.

이 글을 쓰기 직전 기억해낸 것인데, 작년 이맘때에도 술에 만취되어 기절한 적이 있었다.
일 년에 한번씩 심하게 겪고, 몸조심을 하다가, 열 두어 달 정도 지나면 또 잊어먹고, 다시 만용을 부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나보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지난 밤, 공연 시작 전 와인을 돌려 마셨는데, 기분 좋았다. 공연을 잘 마치고 개운한 맘에 남은 와인을 더 마시고... 자리를 옮겨 또 마시고, 마시다가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만든 폭탄주를 들이 부었다. 내가 미쳤지. 일년치의 술을 냅다 부어댔던 결과 결국 대리운전하는 분을 불러 집에 간신히 돌아왔다.
전혀 머리도 안 아프고 적당히 취한 채로 뒤끝이 나쁘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복통이었다.
그동안 위장이 많이 상했는지, 아주 작은 음식물까지 남김없이 다 게워냈다. 역류하는 산 때문에 식도가 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할 정도였다. (상당히 겁은 많다...)
토하고, 또 토하고, 뭔가 마시면 다시 토하고... 이 짓을 다음날 저녁까지 계속하다가 이제 겨우 회복이 된 것 같다.
어쩌다 한번 긴장을 풀면 이렇게 되어 버리고, 어쩌다 한번 대책없이 마시고 나면 가슴 속에 슬픔처럼 술자국이 남는다.
나는 이대로 맛이 가버린 삼십대 사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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