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5일 화요일

동네


 스무해 넘게 살고 있는 이 작은 동네엔 '아파트'가 끝없이 지어지고 있고, 거주민과 자동차는 매일 불어난다. 오래된 한의원 건물 안에서 네모난 조각으로 보이는 동네 길엔 아픈 사람과 노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석 달 전에 나는 한 걸음 내딛는 것을 힘들어하면서 여기에 걸어왔었다. 이제 조금 나아서 걷고 오르내릴 수 있는 나는 이 동네에 한 사람 분을 추가하고 있는데, 때때로 아픈 사람이긴 하지만 아직 나이든 사람은 아닐거라고 억지를 써보았다.

2024년 6월 24일 월요일

이별


 오래된 차를 폐차장으로 보내는 날이었다. 갑자기 새 자동차를 구입했던 이유는 조기폐차 권고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자동차를 한 두 해 더 타고 다닐 생각이었었다.

약속한 시간에 주차장에 가서 차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을 꺼내어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뒷유리 와이퍼에 나뭇잎이 끼어 있었다. 이 계절에 노란 잎이 어디에서 날아와 저기에 끼였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동차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타고 다니며 지내온 십오년 동안의 일들이 마음 안에 끈적하게 묻어 있었다. 차 안에서 혼자 보냈던 시간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 혼자 각별하게 느꼈던 것이리라.

어떤 것이든 반드시 헤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별은 잃거나 버려지는 게 아니다. 삶 속에 그리움을 남겨주는 사소한 사건들이다.

2024년 6월 23일 일요일

인천에서 공연

'홍대앞'이라고 통칭하는 서교동 부근에서 클럽데이를 만들고 지켜왔던 분들이 기획한 아시안 팝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자신들이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일은 잘 되지 않을 리가 없다. 기획하고 운영한 분들의 수고로움이 잘 느껴졌다. 관객들도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새벽에 집에 돌아왔다가, 집안 일로 다시 운전을 해야 했다. 집에 다시 돌아오니 네 시 반이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잠들 때엔 고양이 짤이가 내 팔에 기대어 자고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났을 때엔 그 자리에 고양이 깜이가 같은 자세로 잠자고 있었다.
피로가 풀리지 않아 낮 시간 동안 축축 늘어졌다가, 오후 두 시에 첫 끼를 먹고 기운을 냈다.
관객이 만들어준 분위기 덕분에 공연을 잘 할 수 있었다. 무대에서 지켜본 바, 나는 아마 이십대였다고 하더라도 저런 에너지는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4년 6월 22일 토요일

군산에서 공연

 

오후 한 시에 군산 행사장 무대 앞에 도착했다. 작년에 와서 연주했던 자리여서 익숙했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날엔 친구들 팀과 함께 오후에 공연하고, 그 무대에서 밤중에 김창완밴드와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바닷바람에 빗물이 흩날려 얼굴에 뿌려지는 건 기분이 좋았지만 악기는 눅눅해져버렸다. 각자의 일정을 하고 한 자리에 모인 멤버들과 만나 리허설을 했다. 여섯 시에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 즈음에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그친다고 했었다. 그 예보를 믿었던 것인지 스탭들이 무대 위의 천막지붕을 치워버렸다가, 한 곡이 끝나기 전에 다시 빗방울이 떨어져서 부랴부랴 다시 천막지붕을 설치해줬다. 이미 악기는 비에 다 젖어버린 후였다. 비를 맞으며 공연했던 경험은 여러번 해보았다. 악기는 잘 말리면 된다. 시간에 잘 맞춰 연주를 마칠 수 있었다.

저녁 여덟시 반엔 김창완밴드 리허설을 하고, 아홉시부터 공연을 했다. 나는 조금 전 이미 연주를 했었기 때문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았다. 악기를 두 개 가져가서 팀에 따라 바꾸어 썼다. 우중공연이어서 너무 덥지 않고 기분도 좋았다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열 시 반에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출발했다. 다음 날 영종도에서 공연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찍 가서 잠을 많이 자고 싶었다. 차에 실은 악기 가방들을 열어두고 에어컨을 켠 채로 운전하면 집에 도착할 때 쯤 젖은 악기들이 다 마를 것을 알고 있었다. 경험에서 배운 것들은 유용하다. 집에 도착하여 습기가 사라진 악기들을 확인하고 차에 그대로 둔 채 집에 들어왔다.


2024년 6월 21일 금요일

헌 차, 새 차

 

2009년부터 15년 동안 운전했던 오래된 차를 마지막으로 운행하던 중에 인젝션 점검 경고등이 켜지더니 언덕을 올라갈 힘을 내지 못하는 증상이 생겼다. 긴 세월 미리 정비하고 몇 개의 부품을 새로 교체하긴 했었지만 고장은 없었다. 아마 서너 달 전이었다면 경고등 같은 것은 보이지 않도록 정비를 했을 것이다. 새로 자동차를 구입하고 그것을 받을 날이 가까와지면서 엔진오일도 교환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었다.

새로 구입한 자동차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15년 전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새 차를 받으면 그날부터 장거리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전에 매뉴얼을 PDF파일로 다운로드 해서 공부를 해놓았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자의적인 해석, 한정된 자기 경험 안에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 영상들을 끝까지 참고 보긴 어려웠다. 그런 것을 보고는 새로 배우기 어렵다. 제조사에서 만든 매뉴얼을 열심히 읽는 것이 제일 좋다. 15년 전에 차를 살 때엔 PDF 파일 같은 것으로 매뉴얼을 볼 수 없었다. 자동차와 함께 따라 온 매뉴얼 책을 운전할 때 가지고 다니며 읽었었다.
그 덕분에 차를 받아서 가져올 때 판매원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어디에 어떤 기능을 작동시키는 버튼이 있는지도 이미 외우고 있어서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처음 운전해보는 하이브리드 방식이었지만, 운전해보니 원래 내 운전습관에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다.
오전에 차를 가져와서, 오래된 차와 나란히 주차해 놓고 짐을 옮겨 실었다. 애플카플레이를 연결하고 몇 가지 로그인 절차를 마치고 나서 그대로 군산으로 출발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기능들을 하나씩 써보면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2024년 6월 18일 화요일

이탈리아 방식

이 만년필을 쓴지 한 달째 되었는데, 트림 링의 도금이 닳아서 벗겨져 있는 것을 알았다. 손가락이 닿는 부분이 다 벗겨졌고 맞은 편도 마찬가지인 상태다. 처음 사본 이탈리아 펜은 처음 쓸 때부터 일관되게 웃겼다. 잔뜩 멋을 부렸는데 허술한 것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금색 칠이 완전히 지워져 허옇게 드러난 트림 링을 만져보면서 제일 웃겼던 건 이제서야 잉크가 잘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 웃긴 일도 생겼다. 이 펜과 함께 상자에 담겨 따라온 그 브랜드의 잉크 뚜껑을 열어보았더니, 하얀 곰팡이가 피어 둥둥 떠 있었다. 도금이 벗겨지고 잉크엔 곰팡이가 핀 채로 유통되었다니, 나의 이탈리아 만년필 인상은 아주 나빠졌다. 품질관리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밖에.
플라스틱 스푼으로 조심조심 곰팡이를 걷어내어 버리고, 잉크는 그대로 쓰기로 했다. 그대신 다른 펜에는 넣지 않고 한군데에서 나온 펜에만 담아 쓸 생각이다.


 

2024년 6월 17일 월요일

ASVINE 만년필

2주 전에 주문했던 만년필이 도착했다. 할인하고 있는 중국 쇼핑몰에서 싼 가격에 구입했던 것이다. 가죽 파우치도 함께 도착했는데 가죽의 품질과 만듦새를 들여다 보기도 전에 고약한 화학물질 냄새가 풍겨서 햇볕이 드는 곳에 지퍼를 열어 놓아두었다.

만년필은 가볍고 예뻤으나, 중결링부터 캡의 윗쪽까지 세로로 날카로운 것에 긁혀서 난 흠집이 있었다. 품질관리를 잘 해줄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흠이 있는 물건을 받은 건 유쾌하지 않지만, 나는 이런 정도의 물건은 그냥 쓴다.

만년필은 예상했던대로 훌륭하다. 값이 싸서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펜이다. 가볍고 잘 써진다.

여섯배 쯤 더 비싼 펠리칸 펜과 나란히 놓아 보았다. ASVINE이라는 브랜드는 펜을 정말 잘 만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V126은 P20보다 더 부드럽게 잘 써지고 소재의 느낌도 더 좋다. 이런 브랜드가 좋은 재료를 써서 고급펜을 만든다고 해도 잘 만들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베껴온 모양이 아니라 그들만의 생각과 디자인이 있어야 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보니, 우리에게 좋은 국산 만년필이 없다는 게 많이 아쉬웠다.
파우치에서 나는 냄새는 쉬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 가죽세정제로 여러번 문질러 닦고 오래된 Pot Pourri를 파우치 안에 담아 더 햇빛을 쬐도록 해놓았다.




 

2024년 6월 15일 토요일

가평, 자라섬에서

 


공연을 시작하기 직전에 노을 지는 하늘을 보다가 무대 위에서 소리를 낼 준비를 마친 악기들을 보았다. 행사를 꾸민 스탭들이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이 지역엔 오전까지 비가 왔었다.

집에서 이곳까지는 50여킬로미터로, 고속도로를 지난 후 나머지 절반은 구불거리는 국도를 달려야 한다. 갈 때엔 다른 길에 정체가 있었는지 내비게이션은 391번 지방도로를 안내해줬다. 강을 따라 천천히 운전하여 한 시간만에 도착했다. 비 개인 하늘은 높고 지루했다. 동양하루살이들이 애써 날며 제 소명을 다 하고 있었다. 앞 순서에서 사람들은 큰 소리로 연주하고 노래를 하였지만 폭 좁은 물 건너 낮은 산은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평온해 보일 뿐, 그 산자락, 옆 산마루에 온통 골프장이 있는 걸 알지만.

마지막 곡 끝 무렵에 무대 위에서 폭죽을 다발로 터뜨리는 바람에 중간에 연주가 멎을 뻔 했다. 굉음 때문에 소리가 순간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지상 몇 미터에서 날고 있었을 동양하루살이들이 벼락을 맞은 듯 죽어 빗방울처럼 떨어졌다.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화약을 계획대로 써버린 후 그는 뿌듯해했을까. 누구인지 몰라도 그는 오후에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온종일 땀흘렸을 스탭들에게 미안해 해야 할거라고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왔다.

2024년 6월 9일 일요일

남한산성 아트홀 공연

 

알람을 맞춰 놓으나 마나, 두 시간 일찍 일어나서 집안 일을 하다가 약속 시간 한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집에서 가까운 장소였고 삼십여분 걸리는 거리였다. 운전하는 도중에 이대표님으로 부터 언제 도착할 예정인지 묻는 전화를 받았다. "혹시 다른 분들이 이미 다 오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들으며 서로 웃었다. 계산했던대로 리허설 시간 삼십분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지만, 나 혼자 지각을 한 셈이 되었다.

오전까지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차분하고 고요한 기분이었는데 오후부터는 햇빛이 내리 쬐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눈이 침침한 것처럼 느껴져서 안경을 쓰고 공연을 했다. 가까운 거리여서 운전을 조금만 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안경을 쓰고 연주한 덕분이었는지, 두 시간 십오분 연주를 마친 후에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최근 몇 달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제부터 안경을 쓰고 연주하기로 했다.

지난 주에 대구에서 공연하는 중에 바닥에 붙여진 셋리스트를 읽을 수 없어 눈을 찌푸리고 애를 썼었다. 이번엔 안경 덕분에 눈이 편해져서 다른 감각기관까지 잘 작동했던 것이었을까, 모든 소리가 섬세하게 잘 들렸다. 오육년 전에 갑자기 운전하는 데에 너무 몸이 지치고 힘들어졌었다. 그것이 시력이 나빠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힘들어하며 다녔었다. 그러다가 안경을 사서 쓰기 시작했더니 다시 운전하기가 수월해졌었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도 둔한걸까, 했었다. 이제와서, 할 수 없지, 뭐.


2024년 6월 1일 토요일

대구 문화예술회관 공연


 오후 한 시가 되기 전에 공연장에 도착했다. 무대 뒤에서 의자를 찾아 가져와 앰프 앞에 앉아서 혼자 연습을 했다. 손을 풀고 리허설 시간에 연습해보기로 했던 곡들을 쳐보았다. 한 시간 연습을 하고 차에서 쉬고 있었다. 의자에 앉으면 다리는 편하지만 등과 허리는 아직 아프구나, 하면서 시트를 젖히고 누웠다.

오후 세 시에 리허설을 한 시간 하고 나서는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공연 도중에 점점 아프기 시작했다. 악기 무게 때문에 두 시간이 넘을 즈음엔 내 체력이 모자라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연을 마치고 나서 다시 자동차에 앉아 쉽게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 전과 다르게 너무 지치고 힘이 들어서 중간에 한 번 쉬기도 하고, 속도를 내지 못하고 달렸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끌러 정리를 하지도 못한 채로 길게 뻗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