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31일 금요일

백업

지난 10일, 돌아가신 대통령의 안장식이 있었던 날 밤에 갑자기 컴퓨터가 혼절해버린 일이 있었다.
데스크탑위에 열려져있던 모든 창이 움직이지 않게 되더니, 맥북에서 열이 많이 났다. 팬은 미친듯 돌고, 배터리는 순식간에 방전되었다. 재시동하여 복구를 해보려고 했는데 복구불능 메세지와 함께 이내 죽어버렸다.

늘 백업해오고 있긴 했지만, 너무 바빠서 몇 달 동안은 손을 놓고 있었고, 타임머신 기능을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백업한 이후의 내 사진들, 직접 그려 스캔해놓은 악보들, 레슨자료들, 써놓은 글들... 모든 것을 잃게될까봐 잔뜩 긴장했었다.

다음날 일을 마치고 대용량 하드디스크를 몇 개 사서, 맥북의 하드디스크와 교환하고 별도의 외장케이스에 담아 간신히 모든 파일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룻밤 내내 별짓을 다해본 끝에 계획에 없던 지출을 댓가로 지불하고 건진 귀한 자료들이었다.

소도 찾고 외양간도 고치기 위해, 구입한 하드디스크를 아내의 컴퓨터에도 연결하여 백업하게 하고, 바빠서 미뤄두고 있었던 DVD 백업을 하고 맥 오에스를 재 설치했다. 원래 사용하던 그대로 시스템의 파일을 일일이 옮기고 나니 무려 여섯 시간이 걸렸다. 열 시간이 걸렸다고 해도 꼭 해야할 일이었다.

하루 하루 쌓이는 파일들은 대부분 사소하고 의미없어 보인다. 그러나 언제라도 다시 구할 수 있는 것이 있는 것이고, 잃고 나면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다. 백업해둬야하고 관리해야한다.

그런데 사람의 관계라는 것도 비슷하다. 누군가와의 관계라는 것은 수많은 나날이 쌓여 두터운 흙담처럼 굳어진다. 그런 것은 일순간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고, 한번 잃고 나면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백업해둘 수도 없다.

그런데 나는 내 컴퓨터가 그날 왜 갑자기 기절해버리고 말았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다. 그날은 DDOS인가 하는 바이러스가 윈도우즈들을 공격하느니 마느니 사람들이 부산을 떨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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