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1일 월요일

겨울

 


엄마를 모시고 시골집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바깥은 추웠다. 나는 요즘 부쩍 더 추위를 느껴서 몸이 덜덜 떨렸다.

갑자기 산 위에서 검은 개 한 마리가 내려왔다. 그 개는 사람들을 슬쩍 쳐다보더니 개의치 않고 무슨 약속이라도 있다는 듯 성큼 성큼 걸어서 지나갔다. 목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 집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잠시 마실을 나온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멀찍이 있어서 다가가 인사를 할 겨를이 없었다. 흰 눈 위에 낯선 개의 발자국이 가지런히 찍혀 있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다.

통증 때문에 허리에 파스를 자주 붙여야 한다. 아내가 그것을 도와주다가 밝게 불을 켜고 내 허리를 살펴보더니 멍이 들어있다고 알려줬다. 계속 통증을 느끼는 오른쪽 허리 부분을 나 혼자 주먹으로 심하게 문질러댔더니 그만 멍이 든 모양이었다. 멍든 피부 보다 통증을 느끼는 안쪽이 더 거북하여 나는 오늘도 혼자 여러 번 그곳을 문질러 댔다. 

무엇이라도 해야 하고, 하고싶은데, 아무 것도 못하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무기력해지는 기분을 그대로 두기 싫어서 볼일이 없어도 자꾸 움직이려고 하고 있다. 낮에 보았던 무심한 개처럼, 사람들은 아랑곳 없이 겨울이 심드렁하게 지나가고 있다.

2021년 1월 6일 수요일

눈이 많이 내렸다.


이틀 전에는 병원에 가서 진료를 하고, 내과에서 권해준대로 간염 예방접종을 했다. 통증이 조금 없어진 것 같아서 운전을 조금 오래 했더니, 집에 돌아와 그만 바닥에 누워버리게 되었었다.
큰 눈이 내렸다. 도로에 눈이 가득 쌓였다. 뉴스를 보니 도로가 많이 막히고 차량이 눈길 위에서 미끄러지고 있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는 그 사이 밖에 나가서 눈을 치우고 있었다. 외투를 입고 나가 보았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쌓인 눈 위에서 놀고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나온 어떤 젊은 남자는 기껏 다른 사람이 치워 놓은 눈을 아이에게 뿌리고 던지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내가 다가가서 그 사람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알려줬다. 그는 얼버무리는 투로 대답은 하였지만 별로 알아들은 눈치는 아니었다. 사실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내일 아침 일찍 다른 과 진료를 위해 병원에 또 가야 한다. 아침이 되어 도로 상황을 본 후 필요하다면 지하철을 이용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고양이 깜이가 방 구석에 저런 자세로 앉아서, 나와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앞에 다가가 앉아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나는 겨우 그런 정도의 동작도 아직은 쉽게 하지 못하고 있다.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고양이도 우스웠고, 허리 통증 때문에 간단한 움직임도 느리게 하고 있는 내 모습도 우스웠다.

2021년 1월 3일 일요일

아직 낫지는 않았다.


나는 아직 다 낫지 않았다. 먹어야 할 약들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나는 병원에서 약 봉지에 적어준 지시에 따라 매일 두 번, 세 번씩 약을 먹고 있다. 이제 몇 번의 진료를 마치고 나면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아도 좋을 수 있도록, 시간에 맞춰 약을 잘 챙겨 먹고 있다.

어쩌면 COVID19 감염병으로 이렇게 공연도 못하고 일이 없을 때에 아팠던 것이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에 병원에 누워있게 되었다면 훨씬 더 나빴을 것이다. 물론 쓰러지거나 입원하는 일이 처음부터 없었어야 제일 좋았겠지만.

새해가 밝았다. 이런 모양으로 새해를 맞게 될줄은 몰랐다. 판데믹이 지금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봄이 오기 전에 내 몸이 다 낫고, 여름이 지날 즈음에는 감염병 때문에 겪는 이 난리도 끝나면 좋겠다.

2020년 12월 30일 수요일

Deep Purple, Whoosh!


오래 전에 하드록 음악이 팝 음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빌보드라던가 라디오의 순위 차트에 하드록 밴드들의 이름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는 이제 흘러가버렸다.

나는 그 시대에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록커들의 이름과 음악들은 레코드의 포장을 뜯던 소리, 새 카세트 테이프에서 나는 플라스틱 냄새와 함께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올해에 옛 하드록 뮤지션들이 발매한 음반들 중, 나는 여름에 나온 Deep Purple의 앨범 Whoosh!가 좋았다. 이미 오월에 나는 그분들이 새 앨범에 실릴 곡을 합주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었다. 그 영상에는 이언 길런의 보컬은 없었기 때문에 아직 어떤 노래가 나올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혼란해지고 있던 학교의 일정과 함께, 밴드의 공연 마저도 하나 둘 취소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점점 기운이 빠지고 있었다. 1954년생인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를 제외하고 모두 일흔이 넘은 멤버들의 합주 영상을 몇 번씩 다시 보면서 나는 합주실과 공연장의 무대를 그리워했었나 보다.

딥 퍼플의 새 앨범 Whoosh!를 틀어놓고 느꼈던 기분은 반갑다는 것이었다. 그 밴드의 옛날 느낌이 그 음악에 담겨 있었다. 좋은 음반을 많이 만든 캐나다인 프로듀서가 영국인 노인 음악인들을 미국의 내쉬빌로 불러 녹음했다.* 스티브 모스와 돈 에이리의 사운드가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도 정겨웠다. 50여년 동안 활동해온 베테랑들이 자신들의 연주를 즐기며 만들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비닐 포장을 뜯거나 카세트 테이프를 다시 뒤집어 재생하는 일은 없지만, 이 앨범은 나의 어릴 적, 하드록이 팝이었던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줬다.

첫 곡 Throw My Bones는 '이언 길런이 보컬인 딥 퍼플 노래'의 전형 같았다. 네 번째 곡 Nothing At All은 재미있었다. 스티브 모스는 정말 다양한 것을 잘 하는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곡 No Need to Shout의 인트로는 오르간 사운드였는데, 그것을 듣는 누구라도 고인이 된 존 로드를 추억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프로그레시브 느낌이 섞인 열 번째 곡 Remission Possible도 좋았다. 그리고 열두 번째 곡이 시작될 때에, 나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반갑고 즐거웠다. And The Address 라는 연주곡인데, 이 음악은 딥 퍼플의 1968년 데뷔 앨범 Shades of Deep Purple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곡이었다. 이 연주곡은 리치 블랙모어와 존 로드가 아직 딥 퍼플이 완전히 꾸려지기 전에 만들었던 곡이었고, 밴드가 구성된 뒤 가장 처음 완성된 곡이었다. 52년만에 다시 녹음된 새 버젼에서, 원곡을 연주했던 멤버는 이제 이언 페이스 한 분 밖에 없다.

중학생 시절에 나는 딥 퍼플의 앨범 Fireball, Machine Head와 Stormbringer를 카세트 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다. In Rock, Burn, 그리고 라이브 앨범과 표지가 조악했던 이상한 부트렉은 LP로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들을 내가 어디에서 구입했었는지를 기억한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태어난 이후에 나왔던 음악들이었지만 이미 그 당시 딥 퍼플은 해체한 것과 다름 없었기 때문에, 마치 아주 오래 전 밴드의 음악처럼 여겨졌었다. 그래서 '84년에 그들이 (잠시) 다시 모여 Perfect Strangers 를 발표했을 때에 나는 꽤 기뻐했었다.

2020년에 딥 퍼플이 선물해준 앨범 Whoosh! 는 내 취향으로는 매우 좋았다. 삼 년 전에 그들이 같은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했던 InFinite 앨범 보다 훨씬 좋았다.

나는 여전히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일부러 옛날 하드록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할 때가 있다. 분명히 다른 음악들 보다 소란스런 사운드일텐데, 그것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글을 쓴 김에 오늘은 이 앨범을 틀어두고 누워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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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ve Morse는 미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