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행복해하는 고양이.


고양이 이지가 자주 기분 좋아하며 논다.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엇인가에 즐거워져서 혼자 장난에 몰두하기도 한다.

어디까지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었던 올 한 해 동안, 고양이 이지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잘 먹고 잘 노는 것은 몇 안되는 행복한 일이었다. 우리는 이지를 볼 때 마다 껴안고 입 맞춰주며 고마와했다.

동물병원에 갔다가 주먹만한 어린이 고양이가 철장에 갇혀 있는 것을 보고 다가갔었다. 어린 고양이가 눈을 크게 뜨고 가늘게 울며 두 앞발로 내 손가락을 꼭 쥐었었다. 집에 돌아온 후 계속 손가락 끝에 남은 고양이의 온기가 마음에 남아서, 아내와 함께 동물병원에 다시 찾아가 입양을 했었다. 고양이 이지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때로부터 벌써 십 년. 세월은 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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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6일 화요일

음악


아침에 병원에 다녀와서 세 시가 다 되어 첫 끼를 먹었다.
일찍 일어났더니 잠이 모자라 두어 시간 낮잠을 잤다.

저녁에 학교 학생들의 정기공연, 졸업공연이 있었다. 서교동까지 가는 길에 자동차가 빼곡했다.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엔 울긋불긋 낯선 간판들이 가득했다.
학생들의 연주를 주의 깊게 보았다. 나는 지난 주 작은 공연을 제대로 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자신들이 공들여 준비한 음악들을 한 곡 씩 연주하는 학생들의 표정에는 강한 자의식이 보였다. 대부분은 과잉된 기분으로 보였지만, 그 사이에 시선을 멈출만한 미래의 연주자들도 있었다.



공연장에서 십여분 걸어서 오늘 약속되어 있던 녹음실에 도착했다. 스무 살 많으신 음악선배 형님은 벌써 도착하셔서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얼마 전 그 분의 노래 두 곡을 녹음했다. 오늘 녹음을 끝으로 이제 후반 작업만 남았고 아마도 새해 초에 음원이 나올 것 같다.

깊은 밤 동네에 돌아오니 입김이 보였다.
이제 겨울은 시작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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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3일 토요일

멍하게 하루를.


사진 속의 검은 고양이 깜이의 모습은 며칠 전 아침에 찍은 것이다.
베란다에 햇볕이 드는 시간에 나왔다가, 그늘이 지면 다시 방에 들어간다.
대부분 햇볕을 쬐며 드러누워 자고 있지만 가끔은 저렇게 강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토요일이었던 오늘, 하루 종일 나도 책상 앞에서 뭔가 멍한 채로 있었다. 계속 악기를 들고 정해둔 루틴대로 연습을 하기는 했는데 특별한 생각은 없었다.
어제 저녁에 친구들과 공연을 했다. 그 공연을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연습을 많이 했었다. 아이디어도 많았다. 그런데, 어제 나는 연주를 잘 하지 못했다. 한 번 제대로 되지 않은 다음에는 모든 것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거의 곡 마다 틀렸고 나 때문에 음악이 끝나지 못하고 더 이어지기도 했다.

새벽까지 내가 망쳐버린 공연 생각에 열중하다가 자고 일어난 뒤로는 그만 정신이 멍해졌다.
무엇이 가장 문제였고 어떤 것에서 내가 잘못 판단했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어제 오전에 괜히 네크의 트러스로드와 브릿지를 조정했기 때문이었을까, 줄의 게이지를 바꿨던 것이 나빴던 것일까, 앰프를 잘 못 조작했던 탓이었을까 등등... 어딘가 기운이 빠져서 종일 축 늘어져 있었다.

다시 깊은 밤. 고양이 깜이는 한참 동안 놀아달라고 조르다가, 이제는 잠을 자러 가자고 투정을 부리고 있다. 저 고양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것인가. 다른 고양이들은 아내의 방에 모여 각자 자리를 잡고 쿨쿨 자고 있다.
나는 고양이의 성화를 받아주는 체 하며 이제 일부러라도 편안하게 자고 일어나 일요일 만큼은 덜 멍청하게 보내려고 한다. 망쳐버린 공연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가까운 시일 안에 내 스스로 그 기억을 만회할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

음악을 랜덤으로 틀어보았더니 한참 동안 템포가 빠른 피아노 곡이 재생되고 있다. 모두 꺼두고, 오늘은 좀 깊이 잠들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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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8일 월요일

뮤지션과 음악팬

뮤지션과 음악팬

10월에 Sting 이 한국에 와서 공연을 했다. 그 날은 서초동 집회가 한참이었던 토요일이었고, 같은 날 나는 밴드 공연을 하느라 정읍에 다녀왔었다. 그의 홈페이지를 보니 지난 일요일 필라델피아 공연을 끝으로 올해의 투어를 마무리한 모양이었다. 내년 1월에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다시 미국 투어 일정이 적혀있었다.

유튜브에 스팅의 한국공연, 일본공연 영상들이 여러 개 올려져 있었다. 모두 관객이 찍은 것들이므로 앵글이 조금 불안정하고 사운드가 곱지는 않았지만, 직접 보지 못한 공연의 모습을 구경하기에 충분했다.
올 해의 스팅 투어에도 그룹 폴리스 (The Police) 시절의 곡들이 많았다. 셋리스트의 절반은 'The Police Cover'로 채워졌다. 'Message In A Bottle'로 시작하는 무대의 모습은 거친 영상으로 보아도 멋있었다. '51년생이니 이제 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꾸준한 운동으로 다듬어진 다부진 몸에 '57년 프레시젼 베이스를 걸치고 무대에 등장하는 스팅은 여전한 록스타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 명의 기타리스트 중 어린 연주자는 '85년생인 Rufus Miller 로, 3년 전 스팅의 앨범 '57TH & 9TH' 에 참여한 이후 계속 투어 활동을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무대 가운데에 밴드 마스터인 스팅을 두고 서로 나란히 서있는 Dominic Miller 의 아들이다. 도미닉 밀러의 딸은 기타 치며 노래하는 문신 많은 가수 Misty Miller 이다.

도미닉 밀러가 스팅을 만나 함께 하기 시작했던 것은 1991년 부터이다. 이제 28년이 다 되었다.  1985년 스팅의 첫 솔로음반 부터 함께 했던 Kenny Kirkland 가 세상을 떠나버린 '98년까지, 도미닉 밀러와 케니 커클랜드는 각각 스팅 밴드의 록과 재즈 스타일의 양쪽 축이었다. '96년에 올림픽 공원에서 그 두 사람이 스팅과 함께 무대위에 있었던 공연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야외공연 도중에 둔촌동 일대의 아파트 주민들이 항의하는 바람에 PA 시스템의 볼륨을 줄였어야 했던 그 공연이었다. 당연히 무대 앞의 사운드도 매끄럽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 상관 없었던 강한 음악적 경험이었다.

폴리스는 '84년까지 활동했고, 스팅의 솔로 앨범이 나오면서 일 년 쉬었다가 '86년에 한 번 더 활동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해체했다. 약 9년 남짓 기간 동안에 정말 많은 명곡들을 남겼다. 도미닉 밀러는 그 후 폴리스의 활동기간의 세 배 정도를 스팅과 함께 해왔다.
그런데 아직도 가끔은 유튜브나 해외 게시판 등에서, '어째서 폴리스의 곡을 연주할 때에 도미닉 밀러는 앤디 서머즈처럼 하지 못하는가' 라는 댓글을 본다. 아마 그런 음악팬들에게 연주자라는 인격체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세션 연주자란 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각인된 명곡들을 충실하게 재연해야하는 피고용인일 뿐이라는 느낌일까.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스팅의 솔로 작업들은 도미닉 밀러 마음대로 연주하더라도, 폴리스 곡들 만큼은 앤디 서머즈를 공부했어야 했다, 라는 식의 글들은 이십 년 전에도 볼 수 있었다.

올해의 스팅 투어에 Shane Sager 라는 하모니카 연주자가 참여했다. 나는 유튜브에서 그가 스팅과 함께 Fields of Gold 를 연습하는 장면을 구경한 적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Englishman In New York' 의 인트로와 간주를 훌륭하게 연주했는데, 그가 불과 몇 달 전까지는 블루스 하프만 연주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다. 스팅의 요구로 석 달만에 12음계 하모니카를 연습해야 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투어에서 여러 곡에 하모니카 연주를 곁들이며 좋은 음악을 들려줬다.

그런데 아무도 스팅에게 하모니카는 집어치우고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색소폰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음악팬들은 한 사람의 뮤지션을 솔로 가수와 록밴드 멤버 시절의 록스타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는 편곡이 가능한 곡이 따로 있고, 훼손하면 안되는 경전과 같은 음악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Hired Gun 들의 처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팬들은 스팅이 이제 더 이상 폴리스 시절처럼 피크로 펜더 재즈 베이스를 튕기며 무대 위에서 높이 뛰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폴리스 시절의 곡들은 조금씩 템포가 느려졌고, 그의 보컬은 힘을 빼는 대신 그윽해졌다. 그의 베이스 라인은 더 단순해졌으나 견고해졌고, 엄지손가락으로 연주하는 베이스의 음색은 점점 더 아름다와졌다. 훌륭한 뮤지션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행복은 그런 것을 목격하는 것에서 더 많이 얻어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