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13일 금요일

반복되는 넥 교정.

올 여름에 장마가 길었다.
매일 악기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야외에서의 공연이 많지 않았었기 때문에 방심을 했다.
다른 악기들은 무사히 고온다습한 여름을 보냈고, 모두 멀쩡했다.
언제나 신경 쓰이게 하는 재즈베이스의 넥은 올해도 그만 비틀어져버렸다.
이미 트러스로드도 많이 돌려놓은 상태이다.
MTD를 사용하게 되어 이것을 가지고 다닐 빈도가 줄었다. 한 번 마음 먹고 휘어진 넥을 펴보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책상에 물려 놓을 수 있는 바이스를 구입하기로 했다. 그것이 쉽지 않았다. 공구를 사겠다고 마음 먹고 준비를 했다가 여러가지 사정이 생겨 그만뒀다.
그 다음 생각했던 것은 이런 무식한 방법이었다.
나무 의자에 넥의 양쪽을 책으로 받쳐 높이를 맞춰뒀다. 가죽 띠와 천으로 만든 끈들을 사용하여 넥의 가운데를 꽁꽁 묶었다. 제법 바깥으로 휨이 생길 정도로 묶은 다음 아예 생수병 여섯 개 묶음을 그 위에 얹어놓았다. 교정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저 상태로 나흘 동안 놓아뒀다.

그런데도 결과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더 센 힘으로 눌러놓았어야 좋았던 것일까 고민도 했지만, 그러려면 결국 공구들이 필요할 것 같았고, 사실은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처음부터 제대로 될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언제나 사용하던 방법을 선택했다.
사실 내가 할줄 아는 방법이라고는 가습을 해주는 것 뿐이었다.
이번에는 작은 화장실에 악기와 가습기를 함께 넣어두고 문을 닫아버렸다.

가끔씩 욕실 문을 열고 가습기에 물을 채워넣고 있으면 고양이들이 다가와서, '참 별짓을 다 하고 있다'라는 표정을 하며 킁킁 거리다가 나가버리고는 했다.
이 상태로 다시 나흘을 세워두고, 오늘 하루는 가습기를 꺼둔 상태로 종일 세워두었다.

밤에 집에 돌아와 넥을 살펴보았다. 과연 다시 좋은 상태로 돌아와있었다.
역시 관리를 자주 해주는 방법이 제일 좋은 것이었는가 보다.
오래 써왔으니까 더 이상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막 굴리며 사용했었다.
습도를 맞춰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관리인 것 같았다.

넥을 조립하고 다시 줄을 감은 다음 브릿지의 높이 등도 예전의 상태로 다시 조정했다.
새삼 신기해할 일도 아니지만 프렛보드의 모든 부분이 고르게 돌아왔다.
이 상태로 계속 유지가 되어주면 좋겠다.



2013년 9월 8일 일요일

이곳은 밀림.

사람들은 정말.

그럴줄 알았지만 참 노골적이다.

약탈, 가로채기, 잔인한 이기심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은 아마 자기가 이 밀림에서의 생존을 위해 합당한 수렵, 채집을 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나는 열등하여 늘 빼앗기지만, 그래도 부족함은 없다.


2013년 9월 7일 토요일

악기 재활.



오늘까지 약속했던 음악작업, 밤을 새워 모두 완성했다. 파일들을 보내주고 지난 일주일 동안의 달력을 봤더니 어지럽다. 일만 했다.
난 이제 쉬고 놀아도 된다…지만 당장은 잠을 자고 싶다.

그런데 사흘간 꽁꽁 묶은채 교정중이었던 악기의 네크가 계속 신경 쓰인다.

악기조립을 할 것이냐 자버릴 것이냐. 그보다 오늘 아무 것도 안먹었잖아.

동시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는걸까.



2013년 9월 4일 수요일

헤밍웨이.

좋아하는 영화가 생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영화 Starlet은 작년에 나왔고 나는 올해 봄이 다 되어서야 보았다.
인형들이 나오는 코메디를 만들던 뉴욕출신 감독의 손에서 이런 인디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드리 헤밍웨이는 마리엘 헤밍웨이의 딸이므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증손녀가 된다. 이 집안 인물들은 모두 대단하다.

작가 헤밍웨이는 All Thinking Men are Atheist. 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그 말에 평생 동조해왔다.

일요일마다 휴일이 된 것이 우리와 상관도 없었을 콘스탄틴의 칙령 때문이 아니라 신의 뜻이라고 믿고 있더라도 아주 나쁜 일은 아니다. 동정녀에서 태어났던 로마의 신들이 그리이스 신화와 수메르의 미신에서도 이미 있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성경은 여전히 인쇄될 것이다.
아동청소년의 보호를 생각한다면 미성년자에게 읽히지 않아야할 내용이 가득한 구약과, 진술들이 서로 맞지 않아 엉성한 알리바이 투성이인 신약의 내용들은 그 과정의 잔혹함을 지우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인류가 가꿔온 귀한 문학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 필요한 것이 단지 합리적 사고와 사랑, 그리고 그것에만 기초한 철학이었으면 좋겠다. 종교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