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7일 금요일

여름이 가고 있다.


자전거 페달에 끈을 달았다.
그날 반나절 달려본 것을 마지막으로, 그후로는 계속 비가 왔다.


지금 내리는 비가 다 그치고 나면 이제 곧 바람이 불고 선선해질 것 같은데.
땀흘리고 햇볕에 그을리며 달려보던 올해의 여름에게도 인사를 해야할 때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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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6일 목요일

고양이의 어린시절


집에서 제일 작은 고양이 (...라고 해도 다 큰지 오래된 고양이이지만) 이지가 이동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
상자가 눈에 보이면 우선 들어가보는 녀석들이니까.

이 이동장은 벌써 만 여덟살이 넘은 고양이 순이의 것이다. 이 사진 때문에 생각이 나서 어린시절 순이가 이 안에 들어가 있는 장면을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이 블로그의 8~9년 전 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함께 집안에서 부딪히며 살고, 함께 나이를 먹고 있다가 가끔 서로가 몇 살이 되었나 생각해보면 놀란다. 집안의 큰 언니 고양이는 아내 계산에 따르면 열 여섯 살, 그 기준으로 따지면 순이는 열 살.


어린 시절 순이 고양이의 귀엽게 나온 사진을 찾지 못한 대신에 음흉하고 사악해보이는 어린이 순이의 사진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양이들의 어린시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표정에는 그 고양이의 성격이 잘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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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13일 월요일

미사리


낮에는 햇빛이 쨍쨍하여 일을 마치는대로 자전거를 타야지, 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웬걸 집에 돌아오던 시간에 동네엔 비가 퍼붓고 습도는 백 퍼센트.
눅눅해져있는 자전거와 악기들을 번갈아 보면서, 그냥 손질하고 닦는 짓이라도 할까 망설이다가 그만 잠시 잠들었다.
밤 열 한시에 송 형님 전화. 하늘에 별이 보인다는 말씀을 듣고 눈 비비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나왔다. 한참 달리고 있는데, 마침 그 시간이 전기절약을 위해 가로등을 꺼두는 시간이었는지... 몇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일제히 불빛이 꺼지고 있었다. 마치 이 시간에 왜 기어나오느냐는 훈계를 듣는 기분이었다.
평소 들러서 차 한 잔 마시던 가게는 오늘따라 일찍 문을 닫기로 했어서 그곳에서도 앉자마자 불이 모두 꺼졌다. 주인의 배려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는 있었다.

뭐 먹어둔 것이 없어서 배가 고팠다. 강변의 차도쪽으로 나아가 음식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불켜둔 냉면집을 발견, 신나하며 들어가보았더니 냉면은 낮 시간에만 먹을 수 있다고. 아, 그런게 어디있어. 심야에 각종 국수류를 먹을 권리를 보장하라...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었어서 그냥 국밥 한 그릇. 고기류는 잘 먹지 않는 탓에 빈 국밥 그릇에는 인심좋게 듬뿍 넣어주신 고기점들이 그득하게 남았다.


밥을 먹고 있었던 식당은 미사리의 라이브 클럽 부근이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클럽은 십오년 전 나도 일했던 그 곳. 금요일 밤에 이 길의 대부분 업소들은 모두 불이 꺼져있고, 을씨년스럽게 새어나오는 그 동네에서 노래 잘하는 가수의 음성이 들렸다.
한참 성업중이었던 당시의 미사리 시절, 나는 이 길에서 세 군데의 클럽을 초저녁에 '돌고', 일산까지 악바리처럼 달려 두 군데에서 더 일한 다음 지금 국밥을 먹고 있을 이 시간 즈음에는 화정의 한 무대에서 마지막 연주를 마친 다음 늘 졸음 운전을 하며 집에 왔었다.
딱, 그 기억만 남아있다.
좋은 사람들, 함께 일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신 분의 얼굴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만, 숱한 욕망과 과잉된 자존감의 아귀다툼들은 다 잊고 말았다.

텅 빈 미사리의 넓은 길을 달려 팔당대교를 향해 가고 있을 즈음에, 다니던 라이브 클럽에서는 익숙하지만 듣고 싶지 않은 노래의 반주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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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8일 수요일

올 여름의 사치


십 년이 넘게, 나는 휴가를 가져보거나 놀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다거나, 운동을 한다며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사치로 여기고 지냈다.
그 결과 휴가라는 이름을 붙인 시간을 마련한 적은 없지만 결국은 피곤해서 쉬어야했고, 만성 스트레스로 괴팍한 성격을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당연히 운동으로 땀을 흘린 것 보다는 몸살과 위경련으로 식은땀을 흘린 횟수가 더 많았다.

올 여름의 사치는 어느 공연장 대기실에서 상훈씨의 기습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자전거 이야기에 늘 시큰둥한 반응이었던 내가 그날 아주 솔깃하게 상훈씨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의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상훈이라는 인물이 아무래도 남을 설득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어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 날 부터 시작되어서, 자전거에 대하여 검색하고 읽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3주 만에, 아내의 손목을 잡고 끌다시피하며 함께 자전거 가게에 가서 아내 것 까지 두 대를 덜컥 사왔고, 그날 밤 일을 마친 직후 부터 야간 라이딩을 시작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비가 종일 내렸던 며칠을 제외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쏘다녔다.
밤중에는 보통 이런 모습을 하고 출몰하여, 불꺼진 남양주 도로를 벗어나 한강의 다리 갯수를 세어보며 돌아다녔다.

강을 건너다니며 잠시 쉬기도 했고,


집에 돌아올 때 즈음이면 해가 떠오르는데, 서울에서 동쪽으로 달리며 보이는 일출 장면에 눈을 빼앗겨 녹조 가득한 강물에 몸을 담글뻔 하기도 했다.

올 여름의 사치는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몇 주 만에 몸의 컨디션이 항상 좋아진 상태가 되었다. 보상을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체중도 조금 줄고 뱃살도 제법 없어졌다. 뭐 이런 재미있는 것이 다 있었냐며 계속 좋아하고 있는 가운데, 악기 연습 시간은 당연히 줄어들었다. 어서 겨울이 와주지 않으면 나는 다시 베이스 초보자가 될 지도 모른다.

악기 연습을 게을리했던 대신에,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할 때에 더없이 몸이 가벼워졌다. 피로해서 픽 쓰러져 잠드는 일은 점점 없어졌고, 조금 격하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 후 깊이 단잠을 자는 일이 많아졌다.

핑계를 더 길게 쓸 수도 있으나 군색하고 궁색해지므로... 아무튼 위와 같은 타당한 핑계로 한 달 반 만에 덜커덕, 이번엔 로드 자전거를 사버렸다.


이렇게 되어버려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이십여 킬로미터 산책을 하기도 하고,


체감 기온 40도라는 요즘의 날씨에, 대낮에 어지러워하며 돌아다니기도 하는 생활을 하고 있게 되었다.
이것이 올 여름의 이변이고 나의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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