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23일 일요일

순이와 쿠로.


순이는 쿠로가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문득 자신과 움직임이 다른 쿠로의 모습이 낯설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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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1일 금요일

그림 옆의 고양이.


아내의 화실 (사실... 화실 같은 것은 없지만) 에서 까만 고양이 녀석이 그림 앞에 앉아 있었다.
아내가 그려놓은 고양이 그림은 집안 여기저기에 여러 장이 있다.

까만 고양이 쿠로는 어쩌다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아내 친구의 부탁으로 맡게 되었다.
그 후로 7개월이나 함께 살았다. 이제 그쪽의 일이 잘 정리가 되어 다음 주말이면 까만 고양이는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제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축하해주고 건강하고 재미있게 잘 지내줬어서 고맙다고 쓰다듬어줬다.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다.

더 정들면 안되니까, 까만 고양이 놈이 돌아갈 때까지 절대로 더 잘해주지 말아야겠다. 조그만 것이라도 흠을 잡아 혼을 내고 윽박지르고 그래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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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6일 일요일

봄이 온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서면 조금 더운듯 하다가도 밤중이 되면 여전히 춥고 쌀쌀하다. 서른 번이 훨씬 넘게 계절을 보내왔으므로 얄미운 초봄 추위에 농락당하지 않는다. 절대로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석 달 정도, 공연을 쉬었다. 물론 쬐그만 무대는 있었지만 공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올해의 첫 공연은 교육방송의 음악프로그램 녹화로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겨우내 하고 싶었던 클럽 공연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오래 전에 분실한 뒤에 다시 구입할 기회가 없었던 Steve Kuhn의 앨범을 구하게 되어서, 조금 전 앰프를 켜고 틀어두었다. 확 하고 그리움이 생겼다. 에디 고메즈의 베이스도 정겹고 음질이 좋지 않았던 카세트 테이프로 여러번 들었던 넘버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왔다. 팻 메스니의 새 트리오 음반도 듣고 있다. 클럽에서 스탠다드를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올해에는 뭔가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몇 달을 각자의 일로 바쁘게 지냈을 멤버들도 다시 모여 연습을 시작하게 될텐데, 공연이 시작되고 연습이 이어지게 되면 또 분명히 다른 일은 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저 매일 연습하고 공연하고 자주 녹음하고 그러면 좋겠다.

아프던 왼손은 지난번에 침을 맞은 이후 깔끔하게 나았다. 이번엔 오른손의 집게 손가락이 말썽이다. 통증은 없는데 자주 붓고 움직이기 거북할 때가 있다. 마디를 꺾으면 뭔가 뻑뻑하다. 이런 것은 무슨 운동으로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 김규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겠다.

작년 말에 잔뜩 베이스줄을 사뒀는데 벌써 다 쓰고 한 세트 남았다. 우리나라는 올 가을이 오기 전에 몹시 힘든 상태가 될 것 같다. 컴퓨터도 작동하는데에 열흘 넘게 걸리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온 국민이 신나는 열차를 타고 추락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돈을 아껴야할텐데 연주 핑계 음악 핑계로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것들만 생각난다. 책가게에도 가고 싶고 음반가게에도 가고 싶고. 악기가게에도...

음악 일을 하는 주제에 뭐 그렇게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느냐고, 언젠가 선배 한 사람이 꾸짖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십여년을 빨갱이 타령을 하셨던 그 분은 지난 선거 때에 투표를 안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제 기타줄값이 오른다거나 자신의 밥벌이가 시원치않게 된다거나 하면 그때는 누구를 욕을 하실지 궁금하다. 여전히 퇴임한 분의 탓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존 스코필드와 몇 몇의 재즈 뮤지션들이 생활이 어려워 의료보험 조차 가지지 못한 연주자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벌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실은 나도 여전히 넉넉한 생활은 꿈꾸지 못하는 입장이지만, 사회가 더 어려워진다면 누군가들을 돕는 일이라도 나서야 옳지 않을까. 저녁 무렵에는 부쩍 어두운 표정의 행인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아내는 털실 미니추어 베이스가 덜 완성되었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펠트에 관련된 온갖 정보를 뒤지고 있는 중이다. 하여튼 대단한 몰입이다. 빠듯한 살림이어서 그다지 여유롭지 않은 탓에 자꾸 집안에서의 소일거리만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혼자 뜨끔해하며 미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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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5일 토요일

내비게이션.



이것은 map이라고나 할까, 연주할 음악의 순서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적었던 것이었다.

이미 자세하게 그려진 악보를 나눠줬었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여전히 알쏭달쏭 복잡하여 간단한 마디 마디들이 모두 혼동이 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모두를 불러 앉혀놓고 그 앞에서 커다랗게 그렸었다. 공연을 바로 앞둔 즈음 이런 정도의 대본읽기, 혹은 작전회의를 했다고 하면 공연날에는 아무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은 다양하다. 공연 직전 한 친구는 나에게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난다'라며 초조해했었다. 그럴 수 있다. 음악을 모두 외고 있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든 될테니 무대에 나가서 잘해보렴, 이라고 해줬다. 그 학생은 썩 잘 해냈었다.
모든 것을 자세하게도 기억하고 있었던 한 학생은 긴장했던 탓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직 연주중이었는데 그만 저 혼자 음악을 끝내고 말았다. 사소한 실수, 녹화된 영상을 다시 보니 그런 실수가 오히려 재미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중 누군가들이 정말로 음악 연주인이 되어서, 언젠가 어떤 무대에서 우연히 마주치거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작 몇 분짜리의 음악 순서는 지도를 그리듯 일러줄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거나 도울 능력이 나에겐 없다.
그저 소중한 것을 지켜가며 즐겁게 열심히 살게 되길 바라고 있다.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친구들이 인생의 map이 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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