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7일 일요일

손가락.


주사쇼크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적이 있었다. 이것을 핑계로 주사를 맞거나 침을 맞는 일을 두려워한다고 우겨보았자 그다지 동정을 해줄 사람도 없을 것 같아서 그 때의 일을 핑계삼아본 적은 없다.
어쨌든 무엇인가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있거나 부정적인 정보가 머리 속에 심어져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병원과 동물병원들을 기본적으로 불신하는 쪽인가보다. 사실은 무서워하는 것이겠지만...

결국 몸이 아프면 병원에 의지하여야만 하니까 신뢰하든 말든 병원에는 가는 수 밖에 없다. 전과자들이 모여있는 다음 정부에서 의료보험 민영화를 해버린다고 하니 이젠 아프면 개인은 몰락할 가능성도 생겼다. 조금 아플 때에 수리를 잘 받아둬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손가락의 통증은 없어졌는데 마비 증세가 있는 것 처럼 손가락이 무겁고 둔했다. 그것을 극복해보겠다고 조금 심하게 연습을 하다가 결국 또 한 번 찌릿함을 느꼈는데, 그날 저녁 부터 아파왔다.
그리하여 다시 침을 놓아주는 곳에 다녀왔다.

기왕 시간을 내어 다녀오는 김에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발목에도 침을 맞았다.
덕분에 통증도 없어지고 좋지 않은 증상도 호전되었다.
이번에는 별로 겁을 먹지 않았는데, 손톱 근처에 침을 지긋이 돌려 꽂아줄 때엔 정말 싫은 느낌이었다. 이건 고문할 때에 사용하는 방법 아닐까요, 라고 물으려다가 더 고약한 곳에 놓아줄까봐 얌전히 있었다.

밤이 깊었다. 그런데 이번엔 오른쪽 손이 뻐근해온다. 팔목도 저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펜을 잡고 쓰는 일을 장시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손가락만은 몇 십 년 더 멀쩡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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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6일 토요일

부담.


꿈을 꾸고 선잠을 깼다. 시계를 보았더니 잠든지 겨우 한 시간 남짓.
부담감이 있다. 일어나서 하드디스크의 정리할 것들을 정리하고 백업시디를 구워놓고, 악보를 출력하고, 음악 파일들을 가지런히 정돈했다.

일찍 나가야할 것이어서 다시 누워 조금이라도 더 자두려고 누웠다. 아이팟에는 음악을 흐르게 해두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채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툭 하고 한쪽 귀에서 이어폰이 빠져나갔다. 눈을 떠보니 꼬마 고양이가 이어폰의 케이블을 손에 쥐고 장난을 하고 있었다. 빼앗아서 다시 한쪽 귀에 꽂고 고양이를 멀리 밀어놓았다. 잠자코 있을 것처럼 얌전해보이길래 다시 눈을 감으면 이내 다시 달려와 귀에 꽂힌 이어폰을 뽑아내고 케이블을 감고 물어뜯었다. 세 번 네 번 실랑이를 벌이다가 나는 잠들기를 포기하고 다시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결국 다시 일어났더니 몸은 더 피곤했다. 퍼져서 잘 때엔 열 시간도 잘 수 있는데, 다음날 뭔가 약속들이 있으면 잠을 못잘 때가 많다. 그래서 집밖에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피곤해보이고 부어있는 얼굴만 구경하게 된다. 알람을 맞추어두었던 시각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나는 오늘 못잘 것이다.

물 한 잔 마시고,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악기를 가지러 다른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바닥에 고양이가 보였다.
이 녀석은 아이팟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여전히 한쪽 손에는 이어폰의 케이블이 쥐어진채로. 나를 깨워놓고 자신은 잠들기... 샴고양이 순이에게 여러번 당했던 일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귀엽기만한 고양이. 저렇게 잠든 모습이 더 귀여워 보여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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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 추가.

어쩌다보니, 두 개의 맥북이 되어버렸다.
거의 새것인 맥북과 내 것을 번갈아 만지고 있다보니 내 컴퓨터의 트랙패드는 닳고 닳아 맨질맨질해져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채 일 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쉽게 닳아버렸다. 

아내의 큰 (그리고 비싼) 맥북을 열고 만져보았는데, 내것보다 오래되었는데도 심하게 닳아있지는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꼬, 생각하며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살펴봤다. 그럼 그렇지. 연주를 하느라 언제나 오른쪽의 두 개의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있었던 것이구나. 플라스틱 표면이 맨질거려질만 한 것이었다.

몇 개의 외장하드를 정리하고, 백업할 것들을 모아 DVD와 CD에 담았다. 다른 맥북에는 난데없이 이것을 보내온 사람이 급히 개인파일을 지워보겠다고, 난잡하게 삭제해버린 폴더의 찌꺼기가 담겨있었다. 포맷을 하고 새로 맥오에스 레오파드를 설치했다. 빌어쓰고 있었던 것이든 아니었든간에, 장터에 내다 팔거나 심지어 걸인에게 버리는셈 치고 줘버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되어먹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다. 못되어먹은 짓을 자신의 내세울만한 개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행동은 으례 그렇게 나타난다.

여자들의 우정이라는 것에 대하여 몇 달 전에 써둔적이 있었는데, 나는 이런 것에 씁쓸해하기도 하고 괘씸해하기도 하는 것에 반해 아내는 언제나 담담하다. 나로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아량이 있는 것인지 타인에 대한 관용이 지나치다. 그래서 늘 나는 나쁜 녀석이 되고 아내는 뭔가 인격이 갖춰진 것 처럼 여겨질 때가 있어서 나는 억울해했다. 사실, 느끼는 것은 똑같지 않겠는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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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21일 월요일

눈 내리던 아침.


이른 아침에 선잠을 깨었더니 가는 눈가루가 불고 있었다.
하늘이 흐릿하여 기분이 좋아져서 오랜만에 창문을 열고 방충망도 열었다. 고양이들을 위해 일년중 거의 열어본적이 없다.

찬 공기도 기분좋고 살짝 얼어있는 강을 보며 담배를 한 대 피우는 것도 좋았다.
원래는 모래사장으로 테두리를 삼았었을 강가는 해가 바뀔수록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단단해져간다. 주민들을 위해 이것 저것 만들어 놓고 있다는 취지인가본데, 내버려두면서 주민을 위해줄 묘안을 떠올릴 공무원들은 적어도 경기도에는 없는가보다.
운하 어쩌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는 인간들의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지금 보이는 곳도 마구 더럽혀질텐데, 산으로 에워싸인 곳을 찾아 이사를 가버린다면 모를까 그런 꼴을 잠자코 보고 있을 도리는 없을거야, 따위의 생각도 했다.
곧 다시 잠들 수 있을줄 알았더니 꼼지락거리며 컴퓨터를 만지느라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팟을 손에 쥔채 다시 잠을 청했다. 어쩐지 이런 날엔 일하러 가기는 몹시 싫고 놀러가고 싶은 마음만 생긴다. 곧 나가야할 시간, 어디로 도망쳐 놀러나갈까. 일이고 뭐고 그만두고 커피나 마시자고, 친구나 꾀어내볼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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