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22일 토요일

비디오만 보았다.


하드디스크에 담아 두고 시간 많을때에 보려했던 비디오들.
오늘은 새벽 내내 가능한 '스탠다드'에 가까운 것들을 듣고 싶어서 감잎차를 잔뜩 끓여두고 몇 시간을 감상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조 헨더슨, 스탠리 클락, 칙 코리아, 빌 에반스 트리오, 다이아나 크롤을 구경하고, 팻 메스니 트리오를 봤다.
팻 메스니의 것은 두 편의 비디오였는데, 30여년 전의 라이브와 몇 년 전의 트리오 투어였다.
맨 처음 내가 친구로부터 알게되어 Bright Size Life를 듣게 되었던 이후 벌써 15년이 흘렀는데, 팻 메스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대단하기만 하다.

날이 새도록 대가들의 연주를 '편안히' 구경했다.
이런 비디오들을 보고 난 뒤의 나쁜점이라면, 연습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싶고... 아침운동도 다 귀찮고, 조금 우울하여 잠도 잘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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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20일 목요일

꼰대

친구사이라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하는 일은 떼를 쓰는 것이다.

삼십여년을 알아온, 가장 오래된 친구녀석이 돼먹지 않은 꼰대로 되어지고 있는 것은 최악이었다.
무례한 언행을 일삼으면서 가책이 없고 빈약한 감각으로 남을 폄하하기를 즐기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도 친구라며 감싸고 돌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더 돼먹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무례함을 덮어주고 비열한 짓을 눈감아주는 것이 우정이라면 그건 똥이다.
그래서 졸지에 친구는 똥이 되고 말았다. 다음 날, 다른 밤이 되면 또 다른 이들에게 엉겨붙어 술과 고기를 먹고 도로위에 달라붙을, 그는 똥이 되었다.
술에 취해 친구의 가게 마룻바닥에 침을 배앝는 녀석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가책도 부끄러움도 없는 것은 술을 핑계삼은 못된 응석이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라고 생각하고 웃옷을 들고 돌아서 나왔다. 녀석은 당연히 내가 태워다줄것으로 알고 주차장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뒷자리의 차문을 열으려했다.
난 돈 오천원을 주며 택시를 타라고 해주고 집에 와버렸다.


2006년 4월 19일 수요일

긴 하루.


여유롭고 편안한 공연이었다.
즐겁게 연주했다.

그런데 공연을 마치고나서 자꾸만 소용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멍청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계속 아침에 들었던 크리스찬 맥브라이드와 리차드 보나, 빅터 베일리의 프레이즈들이 떠올라 마음을 괴롭혔다.

편안한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을 먹고 잡담을 나누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여전히 낯설긴 하지만 덜 어색하다.
적당히 맥주를 마시고 집에 돌아와 창문을 여는데 번개가 쳤다.
지금 비가 쏟아진다.
내일 민방위훈련소집은, 못가기로 했다.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서 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
술기운이 사라지기전에 이불에 머리를 파묻고 자야지.

2006년 4월 18일 화요일

얕은 진창.


공연을 하루 앞두고 공연연습을 하던 중에, 의문이 들었다.
며칠전부터 갑자기 무기력한 기분이 계속되고있다.
그것은 예고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만도 아니고 외부에서의 기운이나 영향 때문도 아니고...
그냥, 이유없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뭐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연습도중에, 도대체 왜 이렇게 '아무 기분도' 생기지 않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밥 잘먹고(잠은 조금 못잤지만), 비교적 좋은 컨디션으로 집을 나섰건만, 한달여만에 만나는 산울림 세션 멤버들과도 반갑게 인사했고... 그런데도 연습을 시작하기 직전까지 뭔가 의욕도 없고 기분은 자꾸 가라앉았다.
연주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라거나 내일 공연에 지장이 있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지만, 좋은 기분을 관장하는 호르몬의 분비에 이상이라도 생긴 것 처럼 힘이 빠졌다.

어느 여름 비내리던 날, 혼자 목적지 없이 차를 몰고 마냥 달리다가 어느 시골길의 언덕에서 진창에 빠진 적이 있었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위기를 탈출하려고 애썼겠지만, 그때의 나는 모든게 귀찮고 다 성가셔서 무엇을 해볼 의욕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어떻게 해보고 싶지가 않았다.
외진 길이어서 지나다니는 차들도 없겠다, 에라, 젠장, 될대로 되라지, 하며 시동을 끄고 의자를 뒤로 젖힌채 눈을 감고 자동차 지붕에 툭툭 떨어지던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잠깐 잠이 들었었는데, 너무 조용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
깨어보니 비는 멎었고 이제 막 해는 지려고 하는데 하늘은 몹시 맑아서 저녁놀이 시뻘겋게 이글거렸다.
나는 오줌이 마려웠는데, 진흙탕에 내려서서 방뇨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가려던 길을 향해 페달을 밟는 대신 기어를 바꿔 적당히 후진을 해봤더니 스르르 차가 움직여졌다. 비가 멎은 후 바퀴가 빠졌던 땅의 상태가 조금 좋아졌던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처음부터 후진을 했었으면 되었을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몸을 돌려 후진을 계속해서 그 길을 빠져나왔다. 상체를 비튼채 좁은 길을 후진으로 빠져나온탓에 결국은 오래 참지 못하고 아스팔트길을 만나자마자 길옆 나무에 노상방뇨를 하고 말았지만, 그리고 조금 지저분한 얘기이긴 하지만... 그순간 내가 봤던 하늘은 맑았고 풀냄새는 싱그러웠다. 방금 비워진 방광의 느낌은 홀가분하기 그지 없었고 진창에 빠졌던 바퀴의 진흙은 바짝 말라서 발로 툭툭 치면 조금씩 떨어져나갔다. 갑자기 배도 고파졌고, '무엇이든 좋으니 뭔가를 하고 싶어졌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 슬럼프에 빠졌다거나 할 때에, 적당히 그냥 내버려두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지가 고단하지만 계속 연주를 하고있고 또 다른 팀들의 연습과 공연들도 기다리고 있다. 고양이는 무릎에 올라와 새근거리며 졸고... 내일 아침에는 내가 만들 엉터리 샐러드도 먹을 수 있다. 함께 어울리는 동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뿐인데다가 약속없이 찾아가도 (최소한) 뭐라고 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뭐 이정도면 의욕이 없느니 기분이 어떻느니하는 것도 그냥 순간의 투정일뿐인지도...

그냥 다 내버려두고, 적당히 비워두자. 그렇게하는게 4월에 겪는 무기력증의 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