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6일 일요일

사람들.



나라고 하는 사람에게도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면 남에게 조금 잘 보이고 싶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든 최소한 나쁜 인상은 주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보면 나는 인상을 쓰고 으르렁거릴 때가 있다.
어제 그랬었다.
결과만 보자면 인상을 쓰고 대충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후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리허설 준비 중 소리가 나지 않고 있는 앰프를 조치해달라고 했더니 그냥 DI 박스로 대충 하면 안되겠느냐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정말로 화가 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요식행위로 앰프와 캐비넷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면 음향업체의 스탭이라기엔 너무 무책임한 대응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은 못된 인상을 하고 언성을 높여 말했고, 결국은 공연에 임박하여 새 앰프를 가져오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했다. 그러나 리허설을 할 때에는 앰프의 사운드를 들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손해를 본 쪽은 그들이다. 시간과 비용을 더 들였어야 했고, 같은 일을 반복해야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많다. 또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려면 다른 일을 하던가, 놀고 먹는게 낫지 않느냐, 따위의 한가한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일을 하다보면 언제나 나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을 바로잡을 것인지 아니면 대충 뭉개고 지나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가정해두며 사는 것이 좀 싫다. 어떻게 해서라도 바로잡고 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좀 해주면 좋겠다.

그런 반면에 공연장에서 잊지 못할 좋은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어떤 스탭들은 스턴트맨들처럼 분주히 움직이며 '완벽하게' 무대를 준비해준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아무 것도 굳이 주문할 일이 없다.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고 대개의 경우 공연의 질도 좋아진다.
그런 분들을 관찰해보면 특별히 조직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개인이 그 분야의 뛰어난 실력자들인 것도 아니다. 업계에서 가장 비싼 임금을 받는 사람들도 아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 그곳에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그 일을 즐겁게 한다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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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5일 토요일

보나의 새 음반.


리차드 보나의 새 음반이 나왔다.
제목은 TIKI이고 몇 개의 클립을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아직 아마존의 판매목록에는 올라오지 않았다. 지난번의 DVD와 함께 주문하고 싶어서 자주 아마존 사이트를 열어보고 있다.
그는 지금 러시아에서 공연 중이고,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연주와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스페인, 슬로바시아, 헝가리, 체코와 라트비아, 네덜란드, 스웨덴과 폴란드, 프랑스에서 다음 달까지 공연을 계속 한다.
그의 일정표가 맞다면, 11월 14일에 슬로바키아의 바빌론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바로 다음날인 15일에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공연을 한다. 그런식으로 올해 말까지 공연이 계속된다. 대단한 정력이라고 생각했다. 자라섬에 왔을 때에도 한국 공연을 마친 바로 다음 날 그는 뉴욕에서 공연을 했었다.

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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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9일 토요일

대화.


며칠 전 새벽, 편의점 점원이 뜬금없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음악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나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내 생각에는), 짧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예'
'잔돈입니다'
'고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장면이 어쩐지 자꾸 기억이 났다. 그 질문이 좀 많이 이상했다.
점원분은 뭔가 따분해하면서도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의 목소리와 말투였다.
아마 늘 내가 귀에 이어폰을 꽂은채 계산대 앞에 서있는 것이 보기에 거슬렸나보다 싶기도 하고. 혹시 내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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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6일 수요일

순이는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


고양이 순이가 잠들어 있었다.
불편할텐데 혹시 커피냄새를 좋아해서 저렇게 다가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정이 들어서 곁에 있고 싶어하는 것인지를 생각하다가... 쓰다듬어 주면서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외장하드 디스크가 따뜻해서 순이는 주머니 난로처럼 외장하드를 사용하는 중이었나보다.

문을 열면 선뜻, 추운 냄새가 난다.
고양이 순이와 만난 것도 한 해가 지났다. 순이의 나이도 한 살.
그리고 나에게는 온전히 혼자 지나보내는 세 번째 가을.
코를 풀면 끈적한 테스토스테론 덩어리가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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