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5일 목요일

그것은 네가 할 일.


어릴 적에 어떤 기타 연주자가 자신의 기타에 줄을 갈아 끼우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악기라는 것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그가 악기를 매만지며 조심스럽게 느릿느릿 새줄을 감고 있던 모습이 꽤 인상깊었었다.
감동이라고 말해도 좋을 어떤 느낌이 그 장면 안에 있었던 것 같았다.
줄을 다 감은 뒤 그가 새줄을 튕겼던 순간의 그 소리가 상쾌했었다.

나중에 내가 내 악기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 줄을 새로 감는 순간이 되면 괜히 나 혼자 엄숙해지곤 했었다. 자주 악기를 닦거나 손질을 했고 줄을 갈아 끼우는 일은 진지했다.

그런데 자신의 기타에 줄을 끼우는 것도 귀찮아서 버릇처럼 남에게 시키는 이들을 보게 되었다. 무대에 오르기 전 튜닝조차 남에게 떠맡기는 기타 연주자를 봤다.
그런 행동은 음악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권위를 위해서일 것이다.
너무 바빠서라면 줄을 갈아주거나 튜닝을 해주는 사람을 고용하면 좋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좀 덜 된 사람들이 아닌가, 했다.

그런 연주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겉멋이다.
내실은 없다.
그런 주제에 시기심은 제일 많다.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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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9월 1일 일요일

즐거운가.


혼자 외로운 연습시간을 보낸 후 새로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또 만나고, 다시 함께 긴 시간 연습을 하고, 고민하고 기다리다가 무대에 오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를 바드득 갈며 참아야 할 일도 많다.
그런데 그래도 즐거운가, 하고 가끔씩 나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잘 모르겠는걸, 하다가도 연주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래도 즐겁다.
이것이 병이라면 큰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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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31일 수요일

여름밤.


어디엔가 들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해본지 오래였다.
하지만 여름밤 더위가 너무 지독했다. 깡통음료를 들고 거리에 서있는 것이 힘들었다.
사막에서 물을 찾듯 들렀던 한 카페 벽에는 자전거가 걸려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자전거를 좋아했었다.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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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 22일 월요일

Charlie Haden

찰리 헤이든의 이름을 맨 처음 알았던 것은 팻 메스니와 오넷 콜맨의 앨범 Song X 를 듣게 되었을 때였다.
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이라고 하면 이제는 누구라도 The Beyond The Missouri Sky 를 떠올리겠지만, 내 기억 속에 찰리 헤이든과 팻 메스니가 깊은 인상을 남겨줬던 연주는 Song X 앨범에 있는 Mob Job 이라는 곡이었다.

극단으로 치닫는 것 같은 오넷 콜맨과 많은 음반을 내왔던 찰리 헤이든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과의 어떤 연주에서는 어쩌면 그렇게 절제된 베이스 연주를 할 수 있는지 놀라울 때가 있다. 마치 언제 어디서라도 금세 다른 어떤 음악이 되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는 정말로 '더 많은 음'을 쳐야 할 이유가 없는 타입의 연주자일지도 모른다.

찰리 헤이든의 연주는 항상 함께 연주하고 있는 솔로 연주자의 연주를 더 빛나게 해준다고 느껴왔다. 정해진 화음을 벗어나거나 페달톤으로 단음만을 지속시켜줄 때에도, 그의 베이스에 엉겨붙는 다른 사람들의 연주는 어쨌든 한껏 더 빛이 난다.
연주자의 연주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인성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아직 찰리 헤이든의 성품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말이다.

잘 다듬어진 편곡의 현악기들과 함께, 피아노와 보컬 모두 일품인 Shirley Horn 의 목소리로 Folks Who Live On The Hill 을 들었을 때에 너무 좋아 그 자리에서 열 번은 다시 들었다. 찰리 헤이든의 앨범 The Art Of The Song 에 실려있는 곡이다.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오래된 노래이고 가사가 아름답다. 지금까지 몇 사람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어봤었는데 셜리 혼의 노래가 제일 훌륭하게 들렸다. 감동적이었다. 어딘가 마음에 와서 철퍼덕 붙어 버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이유는 노래의 편곡 때문일 수도 있고, 셜리 혼의 음색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찰리 헤이든의 해석이 담겨있는 연주 덕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가수의 목소리를 더 듣기 좋게 해주는 노래 반주를 하는 베이스 연주자,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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