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식구들

 

하마터면 끔찍한 일을 겪을 뻔했던 일주일을 보내며 매일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지난 한 두 달이 일 년쯤 지나간 것처럼 여겨졌다. 그 사이 아내의 생일이 지나갔고 자동차 점검을 받았고 오랜만에 안국동, 계동에 가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도 했다. 내일은 주말 공연을 위해 거제도로 간다.

내 집의 식구들, 고양이 이지는 부쩍 식욕이 생겨서 뭐든지 집어 먹는 바람에 아내가 예민해졌다. 잘 먹으면 좋은 일이지만 겨우 당뇨를 이겨낸 이후에 다시 건강을 해칠까봐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체중도 늘었다. 정작 자기가 먹어야 하는 사료는 손가락으로 먹여줘야 하는데 먹지 말아야 하는 다른 고양이 밥은 몰래 잘도 먹고 다니는 것이다.

짤이는 심근비대증으로 급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이뇨제로 처치를 하고 나서는 신장수치가 올라가 전보다 세심하게 돌보고 있다. 아내는 고양이를 위한 산소방을 대여했다.

나이 많은 두 고양이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편안해진 표정으로 햇빛을 쬐고 있었다. 내일부터 이삼일 집을 비우는데, 낯선 곳 숙소 침대에 누우면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지금처럼 불안한 시국엔 더 그렇겠지.

한밤중에 깜이가 다가와 치대기 시작했다. 한참 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더니 그대로 내 발을 베고 누워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2024년 12월 7일 토요일

의정부 공연

 

아버지 사망신고를 한 다음 날 밤에 난데 없는 비상계엄령 사태. 그리고 이 날 내란범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탄핵소추안 의결이 있었다. 거의 밤 새워 뉴스를 보고, 낮에 일어나 또 뉴스를 듣고, 리허설을 마친 후에도 실황 중계를 켜두고 탄핵소추안이 폐기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몸이 무겁고 지쳐있었던 것은 잠이 모자라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난히 연주하기 힘들었다.

다음 탄핵 표결은 일주일 후이다. 그 날에도 나는 공연을 하고 있어야 한다. 오늘과 다른 기분으로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는 기분으로 생각했다.



밤이 길다.

 나는 평소 술을 먹지 않는데, 지난 이틀 동안 편의점에서 사 온 값싼 와인 한 병을 다 먹었다. 지금은 큰 병에 남아있던 위스키를 마저 비웠다. 어제만 하더라도 하루 종일 수 십 개의 속보가 쏟아졌다. 모든 소식을 따라가긴 해야겠는데 나는 공연 셋리스트가 몇 번 바뀌는 바람에 새로운 곡을 외우고 연습해야 했다. 유튜브 뉴스 화면이 두 세 개 띄워진 모니터를 쳐다보며 연습을 했더니 모두 외워지긴 했는데 뭘 했는지 잘 모르는 지경이 됐다.

열 네 시간 후에 내란과 군사반란범의 자격을 정지 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이 된다. 그 시간 즈음 나는 리허설을 마치고 한 시간 후에 시작할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한쪽 모니터엔 국회 앞을 비춰주는 문화방송 유튜브 채널을 마냥 띄워 놓고 있다. 밤이 길고 길다.

2024년 12월 2일 월요일

빗소리

아버지 사망 신고를 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숨졌기 때문에, 검안의가 써준 서류는 사망진단서가 아니라 시체검안서였다. 자기는 나가 있겠다고 했던 엄마는 금세 다시 돌아와 내가 공무원에게 서류들을 건네어 주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추모원에 들러서 엄마는 준비해 온 묵주와 십자가를 유골함 곁에 놓아 뒀다. 노인은, "기도를 하고 가겠다"라고 했다. 나는 노인의 흰 머리카락을 내려다 보며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 신음같은 빗방울 소리가 속삭이는 듯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