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7일 토요일

밤이 길다.

 나는 평소 술을 먹지 않는데, 지난 이틀 동안 편의점에서 사 온 값싼 와인 한 병을 다 먹었다. 지금은 큰 병에 남아있던 위스키를 마저 비웠다. 어제만 하더라도 하루 종일 수 십 개의 속보가 쏟아졌다. 모든 소식을 따라가긴 해야겠는데 나는 공연 셋리스트가 몇 번 바뀌는 바람에 새로운 곡을 외우고 연습해야 했다. 유튜브 뉴스 화면이 두 세 개 띄워진 모니터를 쳐다보며 연습을 했더니 모두 외워지긴 했는데 뭘 했는지 잘 모르는 지경이 됐다.

열 네 시간 후에 내란과 군사반란범의 자격을 정지 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 결정이 된다. 그 시간 즈음 나는 리허설을 마치고 한 시간 후에 시작할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한쪽 모니터엔 국회 앞을 비춰주는 문화방송 유튜브 채널을 마냥 띄워 놓고 있다. 밤이 길고 길다.

2024년 12월 2일 월요일

빗소리

아버지 사망 신고를 했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숨졌기 때문에, 검안의가 써준 서류는 사망진단서가 아니라 시체검안서였다. 자기는 나가 있겠다고 했던 엄마는 금세 다시 돌아와 내가 공무원에게 서류들을 건네어 주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추모원에 들러서 엄마는 준비해 온 묵주와 십자가를 유골함 곁에 놓아 뒀다. 노인은, "기도를 하고 가겠다"라고 했다. 나는 노인의 흰 머리카락을 내려다 보며 우산을 받쳐 들고 서 있었다. 신음같은 빗방울 소리가 속삭이는 듯 들렸다.

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한전아트센터 공연


 두 주 만에 공연장. 일요일 낮 시간에 이렇게 차가 막힐 줄이야. 그나마 일찌감치 나온 덕분에 약속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말마다 공연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 내년 첫 주까지 매주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그 사이 유일하게 공연이 없었던 지난 주에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되었던 것이니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지난 열흘 동안 그 이전보다 더 잠을 못 자며 지냈다. 집에서 커피를 진하게 내려 마시면서 그것이 공연을 마칠 때까지 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수면부족이 아니라 통증이었다. 연주를 시작할 때부터 허리 통증이 심했다. 그나마 가벼운 악기를 가지고 갔던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공연 직후에 악기를 챙겨 차에 실을 때엔 좀 더 가벼운 베이스를 한 개 새로 살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은 악기들이 무거워진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해져 있는 것이니까 몸을 회복할 생각을 해야 맞다. 
극장을 가득 메워준 관객들의 표정이 잘 보였다.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잘 보였을 리가 없을텐데, 연주 중엔 그렇게 느껴졌다. 그 덕분에 연주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십일월이 곧 지나간다. 다음 달엔 먼 장소를 옮겨 다니며 이틀 연속으로 공연하는 일정도 있다. 잘 쉬고 몸을 낫게 하여 겨울 공연들을 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2024년 11월 19일 화요일

장례를 마쳤다.

 

13일 수요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16일 토요일에 고인을 화장하고 유골함을 안장했다.

11일 월요일에 방사선치료를 위한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었다. 노인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그 날이 나와 동생, 엄마와 아버지가 함께 시간을 보낸 마지막 날이 되었다. 빈소 옆에 담요를 깔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주고 받은 마지막 대화는 자동차의 대쉬캠에 녹음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에, 장례식장 주차장에서 나는 혼자 그것을 여러 번 들어보고 있었다. 장례를 다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일요일엔 밀린 잠을 잤다.

18일 월요일, 유골함을 놓아두고 온 장소에 가족들이 다시 모였다가 시골집에서 엄마의 짐 정리를 돕고 돌아왔다. 추모원엔 색으로 물든 나뭇잎과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유난히 파란 하늘 아래에서 센 바람을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