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8일 화요일

어디


 약속 없이 집 앞에 찾아 온 모친의 전화를 받고 자다가 깨어 뛰어 나가서 운전을 시작했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 그러나 모친에게는 아마도 소중한 듯한 시골집에 갔다가 평소보다 일찍 노인을 서울집에 모셔다 드렸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은 할 수 없다고 말하던 내 아버지는 저녁밥을 먹지 못할까봐 엄마에게 전화하여 언제 오느냐고 하고 있었다. 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이른 시간에 엄마를 집앞에 내려드렸고, 내 부친은 제 때에 저녁식사를 했을 것이다.

오래 운전했던 것도 아닌데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피로해졌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음식을 포장하여 가겠다고 말하고 강가의 식당에서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강바람이 저녁하늘 위에 맴돌고 있었다.

사람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요한 거라는데, 나는 여태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겨울

 

바닥을 따뜻하게 해줬더니 고양이들이 바닥에 붙어 뒹굴고 있었다. 겨울이 되었다.

열세살 짤이, 열네살 이지는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채혈을 하거나 며칠에 한 번씩은 피하수액을 맞고 있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두 마리 고양이를 위해 아내는 하루 종일 사료를 갈거나 개어서 묽게 만들어 손가락으로 떠먹이는 생활을 여섯 달째 하고 있다.

일곱살이 된 깜이는 언니들이 함께 놀아주지 못하게 된 뒤로 심심하다. 사료가 담긴 그릇 앞에서 혼자 먹고, 고양이들 근처를 어슬렁 거리다가 내 곁에 다가와 떼를 쓰기도 한다. 어른 고양이들이 아내의 침대 곁에서 잠을 자는 동안 깜이는 내 머리맡에 와서 베개를 같이 베고 잠든다.


2023년 11월 25일 토요일

아침 생방송


 23일 목요일 아침, 라디오 생방송에서 연주하기 위해 새벽에 집에서 나왔다.

다섯 시부터 오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고, 결국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그럴 줄 알았다.

아침에 일정이 있으면 힘들다. 그래도 생방송이어서 낫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늘어나거나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없을테니까.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크라잉넛이 먼저 와서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 가지고 나왔는데 한 시간 이십분 동안 운전을 하면서 다 마셔버렸다. 사운드 체크를 마친 뒤에 건물 일층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셨다. 그래도 졸음이 쏟아졌다.

이 장면은 아마 연주 시작 직전에 크라잉넛 멤버들이 왁자지껄 말하는 것을 듣고 전부 웃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나는 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십일월이 한가하리라 생각했는데 뭘 한 것도 없이 벌써 다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 열흘 전에 주문했던 가구를 배송 받고, 저녁에는 레슨을 하러 갔다가, 밤중에는 동물병원에 들러 고양이 짤이에게 먹일 약을 사왔다. 긴 하루였다.


2023년 11월 19일 일요일

새 아이폰

케이스를 씌우지 않고 몇 년을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는데, 목요일 낮에 그만 집안 화장실 타일 바닥에 아이폰을 자유낙하 시켰다. 순간의 부주의로 뒷면 유리가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박살이 나버렸다.

급한 대로 스누피 스티커를 붙였다. 새로 아이폰을 살 계획은 없었다. 뒷면 유리를 수리하는 비용을 열심히 검색했다. 칠십만원을 들여 뒷면 유리를 교환하고 싶진 않았다. 전화기를 떨어뜨려 깨버린 건 처음이었다. 채 4년도 채우지 못했는데...
그러던 중 금요일 낮에 전화기를 집어 들다가 전기가 오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한 번 더 손에서 아이폰을 떨어뜨렸다. 유리가루에 손가락이 찔린 것이었다. 피가 예쁜 빨강 빛으로 몽실 피어올랐다. 유리조각을 빼내지 못해 밤까지 고생을 했다. 유리가 박힌 것은 왼쪽 검지 손가락이고, 그 손가락은 연주할 때에 가장 혹사 당해야 하는 손가락이다.

그래서... 정말 계획에 없었지만, 아이폰 15 프로를 사게 되었다. 이번엔 비건 케이스도 같이 샀다.

마이그레이션을 마치고 여전히 따끔거리는 손가락을 불빛에 비춰보며 채혈침으로 미세한 유리조각을 한 개 더 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