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까만 고양이

 

얘는 까만 고양이이니까 깜이라고 부르자고, 내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버렸다. 고양이 깜이는 일곱 해 전 오늘, 집앞에서 우리를 만나 냅다 따라들어와 그 뒤로 함께 살게 되었다.

깜이를 만난 날

고양이는 습관처럼 하는 짓이겠지만, 어쩐지 해마다 이 즈음이 되면 창밖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깜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장소가 우리와 만났던 그 지점인 것 같아서 그 모습을 보며 숨죽여 웃을 때가 있다. 과연 그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어서인지는 내가 알 수 없겠지만.

그 해엔 내 고양이 순이가 떠났던 것 외에도 내 주변에 어려운 일들이 많았었다. 그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다 지나온 다음에야 알았다. 상실, 우울, 비관과 같은 감정을 낙엽처럼 털어내며 몇 해를 살아오는 동안에 고양이 깜이가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도 깜이는 굳이 내 발 아래에 자리를 잡고 누워 가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내일 아침엔 칠년 전을 기념하며 맛있는 간식이라도 내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목포에서 공연

 

토요일 오후 네 시 반에 집에서 목포로 출발했다. 처음엔 내비게이션이 네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고 알려주더니 점점 시간이 늘어났다. 다섯 시간 사십분이 지나서야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이른 시간에 공연장에 갔다. 미리 악기 소리를 내어보고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인사를 할 때 열흘 전 광주에서 연주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땐 안양, 광주에서 어떻게 연주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피로했었다. 일부러 하루 전에 공연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잘 자둔 덕분에 이번엔 좋은 상태로 연주할 수 있었다.
다시 집에 돌아올 때엔 겨우 네 시간 쯤이야 쉬지 않고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젠 밤 운전이 예전처럼 수월하지 않다고 느꼈다. 집에 도착할 즈음엔 이상하게 팔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더 고단해졌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았는데, 자동차 왼쪽 앞 타이어에 큰 못이 박혀 바퀴가 납작해져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못을 박은채로 달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나에겐 이런 일이 유난히 자주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2023년 11월 8일 수요일

길 위의 고양이들

 

쌀쌀해진 날씨였지만 한낮 햇살은 따뜻했다. 식당에서 나왔더니 어린 고양이들이 볕을 쬐며 뒹굴고 있었다. 방해할까봐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고양이들을 보고 있었다. 이제 곧 추워질텐데,  길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고양이들에게 코 앞에 닥친 계절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광주에서 공연

 

14:30 광주 예술의 전당 대극장에 도착했다. 어제 안양에서 연주할 때 마이크로 신스 페달을 다시 조정할 필요를 느꼈다. 마침 리더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오전에 문자 메세지를 보냈었다. 악기를 설치하고 페달보드 앞에 앉아서 리허설 전까지 새로 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며칠 사이 내가 지나온 일정들이 꿈을 꾼 것처럼 여겨졌다. 공연 직전에 커텐 뒤에 서서 어깨와 무릎을 돌려보았다. 관절마다 끔찍한 소리가 나고 있어서 얼른 그만 두었다.

하루 전보다는 나은 상태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것으로 올해 가장 바빴던 시월의 일정을 다 끝냈다. 

20:40, 모든 것을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렸기 때문인지 계속 졸음이 쏟아졌다. 양쪽 종아리엔 자꾸 쥐가 났다. 휴게소에 몇 번 멈춰서 시트를 젖히고 쉬기를 반복해야 했다.

30일 1:28, 집에 도착했다. 보통 이 시간에 아파트 주차장엔 자리가 없어서 이중주차를 하여야 했는데, 지하주차장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이번 일정은 마지막까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기운이 없어서 악기들은 그대로 차 안에 두고 가방 두 개, 신발 주머니, 편의점에서 구입한 것들이 담긴 비닐백만 들고 집에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