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청주에서 공연

 

토요일이었지만 도로 정체가 심하지 않아서 예상보다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다.

간단하게 사운드 체크를 하고 연주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리허설을 하면서 비어있는 객석을 자주 보지는 않는데, 오늘 그 장소에서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두리번거리며 공연장 내부를 보려고 했다.

앞서 진주에서 공연했던 장소와 비교되는 것이 많은 곳이었다. 건설사가 소유한 지역 민영방송사에서 겨우 십년 전에 지은 건물인데 두 주 전에 가보았던 삼십오년이 된 극장보다, 후졌다. 무슨 철학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설계, 그리고 아무도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은 운영 태도가 보였다.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느냐고 화를 낼지 모르지만, 그렇게 느꼈던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돌아와서 관련방송사에 대한 것들을 찾아 읽어보니 그 건물로부터 받았던 인상이 과연 그럴만 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뭐, 훌륭한 장소가 아니면 연주하기 싫다거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보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 정도로 해두자.

공연은 잘 마쳤다. 관객들이 아주 좋아해줘서 예정에 없었던 곡을 더 연주하기도 했다. 장소야 어쨌든 사람들이 좋아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 사람들의 기호가 까다로와지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수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청중들이고 자본과 권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 사람들 밖에 없는 거니까.

돌아올 땐 Fourplay의 삼십년 전 앨범 두 장을 죽 들으면서 운전했다. 요즘은 가지고 있던 음원들을 애플뮤직 보관함에서 지우고 시디에서 새로 무손실 음원들로 리핑하거나 다운로드 하여 다시 듣고 있는 중이다.

2023년 2월 3일 금요일

커피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에 가서 몇 년 만에 친구와 만났다.

집에서 매일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지만 외출하여 커피집에 앉아 잔에 담긴 커피를 맛보는 건 오랜만에 해보는 일이었다. 마침 새로 다운로드 하여 지하철에서 듣고 있던 음악은 1994년에 나온 데이빗 베누아와 러스 프리맨의 앨범이었다. 구십년대 후반 어느 겨울날에 나는 지금 앉아있는 커피집 길건너에 있던 레코드점에서 GRP 컴필레이션 시디를 한 장 샀었는데, 그 안에 있던 한 곡이 바로 The Benoit / Freeman Project 앨범 수록곡 중 하나였다. 그 당시엔 이 앨범을 구하지 못하여 궁금해했었다.

삼십여년이 지난 뒤 겨울 오후에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앉아서 그때 사지 못했던 음반을 이제서야 들어보고 있었다. 커피는 식기 전에 마셨다. 그리고 일몰 시간이 되기 전에 집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2023년 1월 30일 월요일

진주에서 공연

 

1월 29일에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다시 이펙터들을 새로 배열하고 페달보드 위에 연결하여 한참을 연습했다. 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순서로 꾸며 보았다. 이것들을 통과한 악기 소리가 항상 좋을 수 있도록 오래 준비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악기를 조율하고 소리를 내보는 순간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컴프레서 페달의 소리가 영 이상했다. 재빨리 노브를 조정하면 금세 해결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납득할 이유가 필요했다. 내가 집에서 시간을 들여 맞춰두었던 것이 틀렸었던 것인지, 케이블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극장에 놓인 앰프와 모니터 스피커 때문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새로 조정하는 값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을 수도 있겠다.

결국은 컴프레서의 아웃/인 노브를 대충 다시 만져서 소리는 잘 나오게 해두고 시작할 수 있었다. 나머지 페달들도 연습했던 그대로 좋은 소리를 내줬다. 어찌어찌 공연은 마쳤지만 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좀 더 공부해서 내가 원하는 소리를 항상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졌다.

공연을 삼십분 앞두고 나는 무대에서 내려가 객석 사이의 통로를 따라 맨 위에 있는 콘트롤룸에 찾아갔다. 엔지니어를 찾아 리허설을 할 때에 내가 듣고 있던 음향 상황을 설명하고 두세 가지를 다시 주문했다. 그가 빠르게 알아듣고 내가 원하는대로 해주었던 덕분에 편안한 상태에서 두 시간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이런 일도 예전엔 귀찮아서 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 가능한 최적의 상태에서 가장 좋은 소리를 내며 연주하고 싶다.


경남문화예술회관

 

진주 경남문화예술회관은 규모가 큰 장소였다. 드러머 형님의 말에 따르면 그곳엔 과거에 체육관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의 극장이 1988년에 개관되었다고 하니 공사를 시작한 1984년 전에는 운동장 같은 것이 있던 자리였나 보다.

건물은 너무 과장되어 있고 위압감이 느껴졌다. 김중업의 설계라고 하는데, 그는 건국대학교 도서관, 홍익 대학교 본관, 프랑스 대사관을 설계했다. 내가 아는 건물들은 겨우 그 정도 뿐이지만 그의 이름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 건물의 내부를 다녀보고 건물의 바깥을 한번 걸어보았다. 첫인상과 달리 건물은 복잡해 보이면서도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건축가가 하는 일이란 정말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