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장마

 


아주 긴 장마가 지나가고 있다.

태풍 '장미'도 남쪽에서 다가오는 중이라고 했다.

비가 끝이 없을 것처럼 내리고 있다.

눅눅해진 바닥에 고양이들이 더워하며 드러누워 있었다. 에어컨을 켜줬더니 고양이 이지가 편한 모습으로 낮잠을 잤다.


낮에 떡볶이를 먹었다. 요즘 며칠 동안 하루에 한 끼를 먹고 있다. 배가 고파지면 고구마를 먹거나 우유를 마셨다.


밤중에 심야 극장에 다녀왔다. 점심 이후 먹은 것이 없어서 극장에서 파는 소세지 빵을 먹었다. 집에 돌아오니 주차할 자리가 없었다. 빙빙 집 주변을 돌다가 지하 2층에 핸드브레이크를 풀어두고 주차했다. 전화번호를 자동차의 앞 유리에 올려뒀다.

집안이 습했다. 비는 다시 쏟아지고 있었다.

2020년 7월 23일 목요일

흐리고 비.

 


잔뜩 흐리고 비가 내렸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일에 관련된 생각들로 새벽에 잠을 깬 후 계속 깨어 있었다.

그리고, 순이가 죽은지 네 해가 되었다. 이제 곁에 고양이 꼼이도 없는 장마철을 보낸다.

어릴 적 부터 어떤 우연이 반복되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 관심을 기울였던 것에 접근하는 경험을 해왔다. 올해에 모든 공연들이 취소되고 더 이상의 음악 일정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더니 악기를 쥐고 무엇을 연습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린 시절 음악에 빠져들었을 때의 곡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임시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두고 반복하여 들었다.

며칠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그 음악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찾게 되기도 하고 악기를 점검하려고 렌치를 찾다가 엉뚱한 곳에서 오래된 CD를 찾게 되기도 했다. 그런 것이 사소한 것을 다시 배우게 하고 나에게 동기를 주기도 한다.

손톱을 깎고 오래 그냥 세워져 있었던 악기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풀기 위해 연습을 시작했다. 
조용했던 집안에 악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고양이 깜이가 내 얼굴을 올려다 보며 표정을 살폈다. 마주 앉아 잠시 쓰다듬어줬다. 고양이는 금세 골골 소리를 내며 드러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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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2일 수요일

비가 내린다.


순이가 떠난지 네 해가 되는 날이었다.
꼼이가 단짝이었던 순이를 따라 가버린지 겨우 이십여일이 지났다.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닫고 집안을 청소하는데, 구석마다 떠나고 없는 고양이 두 마리가 마치 조금 전까지 드러눕거나 뛰어 놀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제 실없는 농담으로 웃고 아무 음악이나 틀어두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고양이들을 보고싶어도 하고 가끔 아무 것도 없는 곳을 향해 없어진 고양이의 이름도 불러 보았다.
같이 있을 동안에 힘주어 행복하려고 하고, 헤어진 후에는 적당히 슬퍼한 후 오래 그리워하면 되는 일이다. 오늘은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2020년 7월 11일 토요일

세브란스 병원.


지난 새벽에 아내를 위해 병원에 갔다가 딴지 총수가 모친상을 치르고 있는 장례식장까지 갔었다.
사실은 나 혼자 들렀다가 집에 가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종일 부친의 병간호만 하느라 심심했던 아내가 따라 왔다. 장례식장 로비에 있는 화장실에 들러 볼일만 보고, 나는 아내에게 그냥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무엇을 구실삼아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나 혼자였다면 모를까, 아는 사이도 아닌 사람의 모친상에서 아내의 시선 앞에 내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벤치에 앉아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알람소리를 들은 고양이 깜이가 깨워줘서 일어났다. 나는 이제 세 마리만 남은 고양이들에게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서둘러 다시 병원으로 갔다. 오늘 아내의 부친은 퇴원하시게 되었다.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며칠 사이에 많이 회복을 하셨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올 때에 차가 많이 막혔다. 토요일 오후 경기도 외곽 도로는 지독하게 막혔다. 사람들이 과연 전염병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다가, 반대로 그 전염병 때문에 일부러 자가운전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고양이들이 한참만에 다시 만나는 아내를 일제히 반겨줬다. 나는 서둘러 청소를 하고 커피를 새로 내려 놓았다.
오랜만에 식탁에 마주 앉아 늦은 점심 한끼를 먹었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고양이 깜이가 얼른 달려와 내 곁에 베개를 함께 베고 누웠다.

평화로운 순간은 언제나 짧다. 지금은 이 고요함을 고마와하며 한숨 자고 일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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