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8일 토요일

아내가 뭔가 만든다.



아내는 어느날부터 갑자기 털실, 털실, 실이 필요하다...라며 혼잣말을 했다.
며칠 후에는 실과 바늘이 배달되더니 하얀 고양이를 한 마리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집안에 있는 고양이들을 모델로 하여 차례대로 인형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자루에 담긴 털실이 배달되어오더니, 샴 고양이 순이의 인형과 얼굴도 한 개씩 생겼다. 자석을 넣어서 냉장고 따위에 붙일 수 있도록 만든 모양이다.

그리고 오늘은 또 이런 것을 만들고 있었나보다. 아직은 미완성.
내 악기의 미니어처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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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6일 목요일

음악 듣기.

며칠 만에 다시 찾은 경천형님의 가게에서 리차드 보나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Ekwa Mato라는 곡인데, 순간 몇 년 전 살인적으로 더웠던 그 해의 여름날이 생각났다. 아스팔트 위에 온몸이 녹아내리는듯 하여 발을 끌면 뒤꿈치가 조금씩 땅에 달라붙는 것 같았던 여름이었다. 좁은 집에 돌아와 고양이 순이를 에어콘 곁에 앉히고 찬 물을 퍼마시며 그 음반을 들었었다. 
경천 형은, 몇 년 전 부터 내가 그렇게 자주 보나의 음악을 이야기했었는데 이제서야 (뒤늦게) 하루에도 몇 번씩 듣고 계신다고 했다. 기억을 못하시고 나에게 신이 나서 설명하고 알려주려고 했다. 카메룬이 어떻고 아프리카의 음계가 어떻고... 나는 어휴, 그거 다 제가 말씀드렸던 거잖아요, 라고 했다.

꼭 일 년 전에 The Bad Plus의 Film을 듣고 깜짝 놀라서 하루 종일 들으며 흥얼거렸었다. 그 곡을 당시에는 얼굴도 몰랐던 아내에게 보내주고는 좋은 곡 아니냐고 감상을 강요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일터로 출발했을 때에 랜덤으로 설정해둔 아이팟에서 이 곡이 흘러나왔다. 그 음악 때문에 컴퓨터 화면을 사이에 두고 먼 곳에서 서로 대화를 나눴던 시절이 생각났다.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들린 후에는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모양으로 기억속에 심어지는가보다.

경천 형님과 블루스를 듣고, 버디 가이의 쇼를 구경하고, 모던 재즈 쿼텟을 들었다. 젊은 잭 부르스와 에릭 클랩튼을 들었고, 한 마디 두 마디씩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비행콕이 상을 받은 음반의 곡이 끝나갈 무렵 맥주병은 모두 비워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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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기.


졸음이 오길래 시계를 보았더니 벌써 아침이었다. 그런데 왜 바깥은 아직 어두운가 했더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대로 눈이 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 때문에 방금 전 하려던 일을 또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무엇이든 잊어먹어서야 정말 큰일이다.

점점 더 두꺼워지는 수첩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나는 결국 녹음기를 들고 다녀야겠다.
카메라를 연결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연결케이블을 쥐고 외장하드 디스크에 꽂는다던가 '물을 한 잔 마셔야겠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걸어가서는 칫솔을 들고 양치질을 시작한다던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상 속의 멍청함이 꼭 나쁜 작용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별로 마주치기 싫은 사람을 불쑥 만났을때 잘 기억이 안나서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돌아선다던가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도저히 표정을 숨기는 재주가 없는 탓에 좋고 싫은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생각없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야 아차, 그 사람이었군, 하더라도 뭐 웃고 미소지었던 것이 다행 아닌가, 하였다. 상대방으로서는 과연 이상한 녀석이로군, 하겠지만.

녹음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는 아이디어도 조금 더 생각해보니 효율적이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녹음된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또 수첩이 필요할테고, 그렇게 되어지면 수첩을 손에 들고 내가 뭘 쓰려고 했더라... 하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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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5일 수요일

모두 웃어보였다.

해가 바뀐 후 처음 한 자리에 멤버들이 모였다.
불과 한 두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세상의 모양도 변했다.
여름까지의 일정을 점검도 했고, 무엇보다도 푸른 하늘에서 눈송이 한 개가 툭 떨어지듯,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진 결혼발표도 있었다.

돌아가신 막내 형님의 이야기도 커피콩을 가는 소리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연주하는 사람들의 손가락들도 모두 잔잔한 현실세계의 한 장면일 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을 평화로운 공기 속에 앉아 있었다.
사진 한 장 찍어둘까요, 라며 매니저님에게 카메라를 건네어 부탁을 드렸다.
조용한 실내에 문득 아저씨의 느릿한 한 마디.

'여어~ 우리, 웃으며 찍자.'
그래서 모두 소리없이 웃어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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