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1일 월요일

여유가 없다.


공연이 끝난 후 악기들을 챙기고 있을 때에 서두르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
공연을 하기 위해서 악기들을 꺼내고 있을 때에 그렇게 하는 것 처럼 차근 차근, 느릿 느릿, 여유를 부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위에서 내 악기를 바삐 챙기지 않고 게으름을 부린다거나, 사정이 있어서 뒤늦게 무대로 뛰어가본다거나 하면 이미 다른 장비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불이 꺼지고 텅 비어있는 무대 위에 내 물건들이 여기 저기 황량하게 버려져있게 된다. 뭔가를 잃어버리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곡을 마친 후 악기를 스탠드에 세워두고 무대에서 내려오는체 하며 앰프 뒤에 잠시 서있다가,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관객들이 떠나기 시작할 때에 슬그머니 무대로 다시 나간다. 그리고 재빨리 내 짐을 꾸린다.

요즘 자주 뭔가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해서 물건을 간수하는데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악기관리용 소형 공구들을 이제 다 잃어버린 것 같다. 나는 왜 늘 뭔가를 잃어버리며 다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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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도 곁에서.


고양이 순이는 깊은 새벽에도 매일 내 곁에 와서 자리를 지키느라 고생을 한다.
나는 그것이 고생스러워 보인다. 순이를 살며시 안아서 편안한 자리에 눕혀놓으면, 순이는 다시 일어나 그루밍을 하고 물 몇 모금 마신 후에 다시 내 곁에 찾아와 굳이 불편한 모습을 하고 졸기 시작한다. 미안하고, 안스럽고, 고맙다.

곁에 다가와 함께 있으려고 하는 것은 순이와 내가 둘이만 살 때에도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순이가 앉은 자세에서 졸고 있는 기술이 늘었다는 정도이다.
나는 순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다시 조용히 안아서 푹신하고 넓은 의자 위에 눕혀주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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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30일 일요일

과천 공연.


심야공연이었다.
비가 내렸어서 축축했고 습하면서 서늘했다.
밤을 지나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도록 객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관객들도 즐거워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공연 외의 몇 가지 단상.
1.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사람들은 즐거운 음악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좋은 공연이 너무 부족할 뿐.
2. 사람들은 몹시 심심하다. 주말에 잠을 좀 덜 자더라도 놀 것이 필요하다. 술집이나 축구같은 것들 말고도.
3. 점점 공연기획자들 보다 관객들의 수준이 더 높아지고 있다.
4. 각 지역의 해병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저씨들은 비공식 치안기관일지도 모른다. 부디 그들이 멀쩡한 돼지를 찢어 죽인다거나 성조기를 떠받드는 요상한 시위 따위는 그만두시고 지역 봉사만 해주시면 좋겠다. 그보다 좋은 것은, 군인이 아니면서 군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좋겠다.
5. 어쨌든 뭐니 뭐니해도 사람들은, 즐거운 것들이 많이 필요하다. 사실 즐거우려고 사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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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9일 토요일

가르침.


그날 밤의 공연 후 멤버들 전부가 심한 이명에 시달렸다고 들었다. 단지 음량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밤 상훈씨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의 연주 이후의 다른 팀들의 사운드는 훨씬 잘 정리될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의 공연이 개관 첫날의 것이었으니 극장으로서는 좋은 테스트가 되었었나보다. 역시 음량만의 이유가 아니라 세세한 음질 콘트롤의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큰 소리에 익숙해져있는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을만큼 귀를 아프게 했던 무대위의 사운드였다면 소리의 크기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대 위는 언제나 고요해야한다.' 광석형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었다. 새삼, 그 형님에게서 배운 것이 많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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