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14일 목요일

좋은 소리를 들었다.



이 극장에서의 앰프 사운드는 신기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관리가 잘 되어있긴 했지만 평범한 EDEN 앰프와 캐비넷이었다. 
야외무대에서 전원을 연결하고 소리를 내보았을 때,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나는 놀랐었다.
왜냐면 하루 전날 연습실에서는 그 앰프의 소리가 그다지 만족스럽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시작될 저녁 무렵에는 낮보다 조금 더 건조해졌고 기온도 내려갔었다. 무대위의 고음부분이 조금 더 명확해졌었고 상대적으로 듣기 싫을 수 있는 저음쪽의 무엇인가가 날아가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의 구조가 반듯하지 않은 건축물이었고 무대 뒤로 진짜 숲과 산이 있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다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야외에서 들었던 가장 산뜻한 베이스 앰프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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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리허설.

그곳의 했빛은 얄밉게도 내려쬐어서 그 뜨거운 오후의 햇살만 놓고 보자면 마치 태양은 영원히 초신성이 되지 않을 것 처럼 여겨졌다.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현지의 스탭들은 뙤약볕 아래에서 아무 말 없이 능숙한 동작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큰 야외극장은 너무 조용하고 고즈넉하여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가끔씩 케이블을 던지거나 스피커를 옮기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서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던 땀방울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는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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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왔던 순이.


고양이 순이를 집에 남겨두고 내가 외국에 가있었던 동안의 모습이다.
순이에게 많이 설명을 해두고 떠나왔던 것이었지만,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마음이 컸었나보다.

나는 집을 떠나있으면 반나절만 지나도 순이를 보고 싶어한다. 그것을 고양이 순이에게 말하며 이해를 부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여행에서 돌아와 순이를 껴안고 한참을 사과했다. 순이는 금세 마음이 풀렸는지 집안을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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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채로 외국의 식당에서.


불과 몇 개월전의 뉴욕에서는 대상없이 막연한 무엇인가를 그리워했었다.
그곳의 차가운 바람과 기온은 혼자 감상에 빠져드는 것을 방해했었다.
너무 추웠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와서 길을 걷다가 이 식당에 들어가 앉았던 그 오후에는 따뜻한 바람과 고요한 냄새들이 가득한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런 날씨라면 당연히 내일의 약속보다는 엊그제의 추억을 되씹게 된다. 한껏 고즈넉하고 무기력해졌었다.

불과 몇 개월전의 막연한 그리움이란 것은 결핍을 부정하려는 앙탈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지금은 현재하는 대상을 자주 보고싶어하고 있게 되었다. 집에 두고온 내 고양이 순이가 그리워졌다. 하지만 이제 전보다 덜 걱정할 수 있었다. 순이를 돌봐주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턱을 고인채 한참을 있다가, 곧 음식이 나오면 갑자기 곁에 그녀가 나타나 '어서 먹어'라고 말해주는 상상을 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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