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7일 토요일

혼자 사는 일.


요즘 집 밖에 오래 머무는 날이 몇 번 있었다.
바빴기 때문이었다.
어느 동네의 주차장에서 급한 이메일을 써보내기도 했고 낯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파일을 다운로하여 벼락치기로 연주준비를 하기도 했다.
25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혼자 있던 순이가 달려나와 떼를 썼다.
칭얼대는 고양이를 안고 달래주고 잘못을 빌었다. 어린 고양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내가 열어놓은 악기가방에 머리만 집어 넣고 까불기도 했다. 토라지거나 화를 내지 않고 나를 반가와해주니까 나는 더 미안해했다.
순이는 한참을 그렇게 신나게 놀다가 지금은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혼자 사는 일은 랩탑 컴퓨터의 생활과 비슷하다.
언제든지 뚜껑을 툭 덮고 어디론가 떠나야할 일도 생기고, 어디에서든 충전만 대충 할 수 있으면 그만이므로 반드시 집에 들어가야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내가 없는 동안 불쌍한 고양이 순이가 그만 혼자 살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자고 있는 고양이 순이를 쓰다듬으며 한 번 더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순이는 나지막히 갸르륵, 하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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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6일 금요일

음악을 듣고 싶었다.

바쁘고 즐겁게 살고 있다.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이렇게 지내다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잃게 된다.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그리워졌다.
새로운 일을 하나 더 맡았다.
이미 몇 달 동안은 쉬는 날이 하루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어제는 알람에 신경쓰지 않고 어딘가 푹신한 곳에 누워 음악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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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7일 화요일

커피와 담배.


나는 담배를 좋아한다. 언젠가는 그만 피우기로 결심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담배 피우는 것은 나에게 큰 즐거움이다.
이제 점점 더 많은 커피집이 재떨이를 없애고 금연구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나처럼 커피와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친구의 커피집에는 아직 재떨이가 놓여져 있지만, 이 곳도 조만간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커피집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영업이 끝난 시간에, 친구와 나는 좋은 커피를 여러 잔 마시고 담배를 계속 피웠다.



2007년 3월 23일 금요일

예의가 불편하다.

어찌 어찌 살다보니 일주일에 수십 명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자주 학생들에게 예의따위는 집어치우고 좀 시건방지게 해보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것을 두고 내가 학생들에게 어줍잖게 환심이라도 사려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어린 학생들은 그것이 무슨 말인지 잘 알아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이 거드름이고 무엇이 진심인지 쉽게 알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때묻은 얼굴을 가린채 곁눈질하는 어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예의라는 것은 유치한 권위를 보전하기 위해 만든 것도 아니고, 겨우 나이를 헤아려 대접해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을 혼동하거나 어설프게 배워온 사람들은 자주 위에서 아래로의 예의란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여기고 행동한다. 나이어린 사람들에 대한 예의는 어디에서 배울 것인지.
예의라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상대방에 대한 양해이고, 존중이고,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나도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하자는 합의일 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경직되고 가식적인 태도와 자세로는 악기이고 음악이고 아무 것도 배우고 익히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내 앞에서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등을 기댄채 담배를 피워물고 있어도 상관없다. 나는 그런 것에 전혀 불편해하지 않으니까, 양해도 된 것이고 적당히 합의도 된 셈이다. 최대한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있지 않으면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 없다. 마음을 연 관계도 이루어질 수 없는게 당연하다.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커뮤니케이션이 된다고, 그들은 이미 몸에 익힌 어리숙한 단정함으로 치장한 말과 행동을 해보이려 애쓴다. 
그것은 말하자면 아닌데 그런척, 그런데 아닌척하는 것일뿐, 나는 그런 것이 불편하다. 거기에는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