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보라를 뚫고 얼어붙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내가 고민했던 것은 더 참을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었다.
명분, 실리라는 것은 사람들이 제 입맛에 맞도록 만들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것은 계산에 넣을 수도 없었다.
나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위대한 일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짓은 아니기를 원했다. 그것이 생각의 시작이었다.
지난 주말 공연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며칠 동안 시간을 들이고 밥을 굶고 비용을 썼다.
집에 돌아와 낯선 앰프의 매뉴얼을 읽고 스무 곡 남짓 악보를 완벽히 외느라 오래 집중했다.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체크하여 필기해뒀다.
공연장에 있는 메인콘솔을 카메라에 담아와서 세세한 모양을 익혔다.
엔지니어에게 공연시 내가 원하는 사운드에 대해 말하고 의견을 구했다.
일주일도 되지 않았던 베이스 줄을 새것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리더 때문에 속상해있는 다른 멤버들을 챙기느라 애썼다.
그 결과 공연의 질은 매우 좋았다.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나는 나 혼자만의 시험을 잘 치렀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밴드의 리더가 투자한 것에 비하면 가격대비 최상의 공연이었다.
며칠 후 돌아온 것은 터무니없는 액수의 연주료와 비상식적인 변명이었다.
그는 함께 연주하는 사람들을 폄하했다. 그의 언어에 치졸한 욕심이 드러나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떳떳하지 못할 때에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겁을 내면서도 잔인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그래서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겨우 나와 같은 연주자가 그 밴드를 그만두는 일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었나.
꼬리를 물고 걸려오는 동료들의 전화와 질문들에 당황스러웠다.
회유도 있고 걱정해주는 말도 있었다. 동조하거나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몇 사람들에게 급박한 전화들이 걸려온 모양이었다. 순조로울 수도 있었던 다음 공연들이 위태롭게 되었던 것이었을까. 벌써부터 들려오는 협박과 비난의 단어들. 내가 매장될지도 모른다는 공갈.
어리석은 행동은 몇 번의 반복만으로 악행이 된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말해준다는 것은 시건방진 일이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 아니냐와 같은 말도 하면 안 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나 자신에게는 매일 해야만 한다.
조금 숨을 돌리고, 충전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지금은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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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6일 화요일
2005년 12월 1일 목요일
이상했던 날이었다.
1. 잠을 자다가 꿈에서 무엇인가가 몹시 우스워 자다말고 누운채로 크게 웃어버렸다.
내 웃음소리에 내가 놀라서 그만 잠을 깨었다.
잠을 깬 것과 동시에 무엇이 우스웠던 것이었는지 잊고 말았다.
기억해내려 애써보다가 다시 잠을 잤다.
혼자 몇 년 지내다 보니 언제나 강박증이 있다.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에 나는 늘 깨어난다.
2. 시간에 쫓길 하루일 것을 예상했다. 평소보다 준비물을 많이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만 양말을 신지 않은채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마 나는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3. 잠이 덜 깬채로 오후 한 시에 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바깥은 싸늘한데 자동차 안은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늘 어둠 속을 달리다가 모처럼 너무 밝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4. 첫번째 약속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렸다. 어쩐지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때, 갑자기 한 아이가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미끄러져 다가오더니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유난히 인상 깊었다.
5. 평소같으면 전혀 연주할 일이 없었을 곡을, 전혀 그 곡을 연주할 것 같지 않았던 사람과 갑자기 공연 리허설에서 연습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었어서, 나는 그 곡을 외고 있었다. 연주하는 동안에 마치 그것이 언젠가 겪었던 일 처럼 여겨졌다. 강한 기시감이었다.
6. 특별히 나쁘게 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화가 났다거나 짜증이 났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한밤중에 다른 공연이 끝난 후, 자신을 인도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인사를 청해온 남자가 있었다. 손을 내밀길래 악수를 받아줬다. 그러자 그는 숨 쉴 틈도 없이 계속 시타르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 악기의 재질과 역사와 인도에서의 문화적인 가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몇 분은 참고 듣다가 너무 피곤하여 견딜 수 없었다. 이놈도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종일 이상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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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웃음소리에 내가 놀라서 그만 잠을 깨었다.
잠을 깬 것과 동시에 무엇이 우스웠던 것이었는지 잊고 말았다.
기억해내려 애써보다가 다시 잠을 잤다.
혼자 몇 년 지내다 보니 언제나 강박증이 있다.
알람이 울리기 5분 전에 나는 늘 깨어난다.
2. 시간에 쫓길 하루일 것을 예상했다. 평소보다 준비물을 많이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만 양말을 신지 않은채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마 나는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3. 잠이 덜 깬채로 오후 한 시에 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바깥은 싸늘한데 자동차 안은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늘 어둠 속을 달리다가 모처럼 너무 밝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4. 첫번째 약속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렸다. 어쩐지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때, 갑자기 한 아이가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미끄러져 다가오더니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모습이 예뻐 보였다. 유난히 인상 깊었다.
5. 평소같으면 전혀 연주할 일이 없었을 곡을, 전혀 그 곡을 연주할 것 같지 않았던 사람과 갑자기 공연 리허설에서 연습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었어서, 나는 그 곡을 외고 있었다. 연주하는 동안에 마치 그것이 언젠가 겪었던 일 처럼 여겨졌다. 강한 기시감이었다.
6. 특별히 나쁘게 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화가 났다거나 짜증이 났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한밤중에 다른 공연이 끝난 후, 자신을 인도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인사를 청해온 남자가 있었다. 손을 내밀길래 악수를 받아줬다. 그러자 그는 숨 쉴 틈도 없이 계속 시타르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 악기의 재질과 역사와 인도에서의 문화적인 가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몇 분은 참고 듣다가 너무 피곤하여 견딜 수 없었다. 이놈도 죽여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종일 이상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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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30일 수요일
벌써 12월이다. 빠르다.
세월이 잘도 지나간다.
이번 주에는,
월요일에는 두 건의 레슨 약속이 있다.
화요일에 공연 연습이 있다.
수요일에는 공연 연습 후에 이동해야 한다. 김광석 밴드의 공연 연습이다.
목요일에는 공연 리허설 후에 이동하여 다른쪽 공연 연습을 해야 한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김목경 밴드 공연이 있다.
일요일에는 강원도 태백에서 김광석 밴드와 공연이 있다.
매일 평균 90킬로미터를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 내내 운전을 했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는 새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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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에는,
월요일에는 두 건의 레슨 약속이 있다.
화요일에 공연 연습이 있다.
수요일에는 공연 연습 후에 이동해야 한다. 김광석 밴드의 공연 연습이다.
목요일에는 공연 리허설 후에 이동하여 다른쪽 공연 연습을 해야 한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김목경 밴드 공연이 있다.
일요일에는 강원도 태백에서 김광석 밴드와 공연이 있다.
매일 평균 90킬로미터를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 내내 운전을 했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는 새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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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9일 화요일
고작 피눈물인가.
부모가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 어릴적에 영세를 받았던 나에게 아직도 종교적인 경험의 기억은 남아 있다.
지금은 더 이상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언젠가 우연히 어느 성당에 들어가 미사에 참여했어야 할 일이 생겼었다. 함께 동행했던 친구가 남들이 하는 일을 따라하느라고 자신있게 영성체를 받아 먹는 것을 보았다. 그는 영세를 받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영성체를 받아 먹는 것을 보는 순간 멈칫했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전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나와 상관 없는 일 아니었나. 내가 무슨, 그 친구를 가로막고 서서 영성체는 아무나 받아 먹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얼마 전에는 일 때문에 부득이 어느 교회의 예배시간에 끝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갑자기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성당의 그것과 닮은 밀가루 조각들을 들고 와서 한 사람씩 나눠주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손톱만한 플라스틱 컵에 포도주를 담아와서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도 보았다. 근거도 이유도 없는 허식이었다.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천주교회에서의 영성체는 우스꽝스럽지 않은 것일까. 어쩌면 양쪽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절에서 우담바라가 피었다며 법석을 떤다.
인도의 전설에서 여래나전륜성왕이라는 존재가 나타날 때 피어난다는 꽃이 우담바라라고 들었다. 그것의 실체가 사실은 잠자리 알이거나, 아니면 무슨 곰팡이이거나 간에, 사람들의 불심을 자극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설화로 사람들의 마음에 옮겨 다니는 것 자체는 고운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붓다의 계시인양 광고를 하고 등을 판매하고 신자들에게 돈을 걷는 것을 보면 속이 메슥거린다. 원래 사찰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 그렇기는 했다. 사주를 보고 중매를 서주며 등값을 걷어 테니스장을 만드는 일 아니었던가.
지금 미국의 어느 베트남계 성당에 있는 마리아상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 소식을 듣고 그곳에 사람들이 줄지어 모이고 있다고 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성모상의 눈에서 붉은 액체가 흐르고 있으니 구경거리이긴 하겠다.
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잔향이 이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그래... 고작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체현이 시멘트 조각상에서 피눈물을 나게 만드는 것이란 말인가.
기껏 종교라는 것이, 고작 그런 것인가.
약을 파는 것이 낫지 않겠나.
고작, 고작 피눈물인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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