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영화 버드맨이 좋았다.




박자, 코드, 잡다한 스케일 이름과 남이 써놓은 교재에 충실하면 음악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까.
영화 ‘위플래쉬 Whiplash’ 는 그렇게 믿고 있는 분들에게는 정말 재미있을 영화다. 1985년생 젊은 감독의 순수하고 영리한 각본과 연출이 훌륭하다. 고교밴드 시절의 경험이 모티브가 되었다더니 과연 실감나고 재미있는 성장영화이고, 동화이고, 무협지스러운 흥행 영화였다. 가르치는 것 없이 사람을 몰아붙이고 윽박지르는 괴팍한 스승 밑에서 철사장, 응익공, 번등술을 밤낮 없이 수련하면 어느덧 무예를 갖추게 된다는 교훈을 주는 영화이기도 했다. 버디 리치를 수도 없이 듣고 카피하고 손에서 흐르는 피가 드럼과 심벌즈에 튀도록 연습하면 재즈 드러머가 될 수 있다니, 희망적인 메세지 아닌가.


위플래쉬를 재미있게 보고 난 후에, 정말로 재즈 드럼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면 마이클 키튼이 주연을 맡은 ‘버드맨’을 보면 좋다.
영화가 주인공 리건 톰슨의 내면으로 들어갈 때 마다, 냉정한 현실의 반대쪽으로 가라앉을 때 마다, 안토니오 산체스 Antonio Sánchez 의 솔로 드럼이 시종일관 흐른다. 음악은 주인공이 직면할 수 밖에 없는 바깥세상에 노출될 때에는 클래시컬 피스들로 바뀌고 있다. 영화적인 다른 장치 없이 단지 음악만으로 이냐리투 감독은 장면들을 대비시킨다.

위플래쉬는 이미 크게 흥행했다고 들었다. 그럴만 하지. 액션영화거든. 그래서 노파심도 들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오는 동안에 나는 드문 드문 영화 속의 플렛처 선생과 비슷한 언행을 일삼는 선생님들을 목격했다. 주인공인 앤드루 처럼 음악을 대하는 학생들도 많이 보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 좋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음악은 무공을 닦는 일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좋은 연주와 훌륭한 음악은 숙련된 기술과 욕망으로만 되어지지는 않는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Miles Teller는 실제로 드러머이기도 하고 색소폰과 피아노를 배웠다고 했다. 고교시절 록 밴드를 했었고, 이 영화에서 90% 이상의 연주를 직접 해냈다고 한다. 영화를 위하여 Whiplash와 Caravan을 하루에 4시간씩 4주 동안 연습한 덕분에 그 두 곡을 모두 외워버릴 수 있었단다. 하기 쉽다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이란 그렇게 숙련될 수 있다.

버드맨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안토니오 산체스에게 영화에 쓰일 드럼연주를 부탁하면서 아무런 참고자료 없이 대본만 줬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멕시코 출신이다.) 다른 악기가 하나도 없이 드럼 솔로로만 꾸며진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얼마나 멜로디컬하고 음악적인지 나는 잘 설명할 재주가 없다. 영화가 흐르는 동안 주인공의 심박과 호흡이 드럼 사운드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면 너무 과장하는걸까. 장면에 따라 드럼 사운드의 리버브와 패닝이 달라지고 있는데 평범하고 담백한 덕분에 오히려 여운이 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아름답다.

영화에는 드럼은 커녕 스틱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네어 드럼 위에 튀어서 말라붙은 핏자국 따위도 보여지지 않고, 드럼을 집어 던지는 장면도 없다. 그냥 음악은 들려지고 있을 뿐.
드러머 분들과 음악 좋아하는 분들은 이 영화음악 음반도 꼭 들어보시길 추천.

** 부러운 것 : 좋은 영상을 만드는 감독들은 언제나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안목이 있다. 어떤 악기가 등장하더라도 배우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연기가 자연스럽고 멋지다. 한국영화에는 언제쯤 제대로 코드를 잡을 줄 아는 배우들과 음악을 음악답게 사용할 줄 아는 감독들이 등장할 수 있을까.

** 우드스톡 세대를 부모로 둔 좋은 연주자들의 음악적 배경은 쟝르나 스타일에 갇혀 있는 법이 없다. 안토니오 산체스의 연주에서도 언제나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 너무 야박하긴 하지만, 위플래쉬는 결국 스타벅스 재즈앨범의 영상물 버젼일지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스포일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