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Parkland

Parkland는 존 핏츠제럴드 케네디가 총을 맞은 날의 일을 그리고 있다. 달라스에서 총을 맞고 파크랜드 병원으로 옮겨진 뒤 죽은 그가, 결국 관에 담겨져 비행기에 실리는 장면들을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하고 있다.
암살범으로 붙잡힌 오스왈드는 이틀 후에 잭 루비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총에 맞은 오스왈드가 급히 옮겨졌던 병원도 바로 파크랜드 병원. 이틀 전 대통령을 살리려 안간힘을 쓰던 의료진들이 같은 방에서 총상을 입은 암살범을 소생시키려 다급하게 움직이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결국 모두 죽었지만.

상황도 시대도 다르고 이유와 결과도 다르지만 대통령의 죽음이 있던 날을 우리도 겪었다. 독재자 말고, 정상적으로 선출되었던 대통령의 죽음.

오래 묵은 비밀문서들이 공개되고 오십여년 동안 수도 없이 쏟아진 자료들이 걸러지면서 케네디에 대한 진실도 드러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케네디는 인기가 높다. 겨우 3년간 대통령을 하면서 무슨 업적을 남기거나 했던 것도 아니고 그럴만한 시간이 주어지지도 못했던 젊은 대통령에 대한 호감에는 다분히 만들어진 감성들이 존재한다. 비극적으로 죽음으로써 오래 추앙받게된 셈이다.

레이건도 총격을 받았었는데 살아났었다. 레이건 같은 인간이 클린턴과 함께 미국인들에게 인기있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사실 대통령으로서는 뭐 하나 해놓은 것이 없는 케네디를 추억하는 미국인들의 감상은 어떻게 보아도 쇼비지니스 같이 여겨진다. 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아버지의 막대한 재산과 인맥의 도움 위에 짧은 생애 동안 줄곧 건강과도 싸워야했던 그는, 어쨌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거의 모든 서사를 두루 갖추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 케네디와는 완전히 다른 배경으로 고생 끝에 ’합법적으로’ 당선된 후 임기 동안 일만 했던 이곳의 그 대통령은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죽은 이후에도 꺼내어져 욕보여지고 부관참시를 당하는 중이다. 결국 사람들이란 이미지와 미디어에 종속되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오직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나쁜짓을 일삼다가 술과 여자를 곁에 두고 총 맞아 죽은 독재자는 오히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는다.
대중이란 로맨스와 공포심을 버무려 요리되는 식재료와 같다. 잘 버무려두면 사후에도 동상이 세워질 수 있는 나라, 끝내준다. 호감을 얻지 못하면 죽음을 당한 이후에도 조롱을 받는다. 대단하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케네디는 아버지의 재력과 정치인맥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최전방에 배치받아 참전했다. 그의 형은 그 전쟁에서 죽었다. 영화 Parkland는 다큐멘터리 처럼 담담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가운데 그 시대의 미국인들이 케네디에게 보였던 애정의 시선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영화 보다 더 좋은 영화는 ’그때 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부럽다. 물론 다수의 지지와 애정을 받았던, 혹은 받을만한 지도자를 많이 경험해온 센 나라와, 대부분 독재와 부정으로 점철된 지배자만 겪어본 신생 공화국을 쉽게 비교할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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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 뉴욕이라는 곳에 갔던 날, 나에게는 JFK 공항 화장실에서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보기 드물게 더럽던 화장실, 청소하는 사람 중에는 한 사람도 백인이 없고 ... 어느 동양인에게 무례하게 굴던 흑인의 몸수색은 불친절하고 모욕적이었다. 나는 그 기분을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