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5일 토요일

여름을 보냈다.

달력에 빼곡하게 적혀있던 여름의 일정들을 다 마친 후에 거짓말처럼 해가 지면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뭔가 돌아보고 반추해볼 여유도 없이 다시 새로운 일정들로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던 올해의 여름은 가파른 물길에 떠내려온듯 지나가버렸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틈도 없이 시작되었던 지방순회공연의 일정들은 다른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보면서 끝나버렸다.

아프도록 따갑던 햇빛을 받으며 고속도로를 달리고 기차에 몸을 싣고 돌아다녔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퍼즐을 맞추듯 변칙적으로 짜놓은 개인 일정들을 위해 분주했다.

땀에 젖은 악기들을 하나씩 닦고 볕이 드는 곳에는 잔뜩 빨래를 널어두었다. 전염병으로 여름을 고생스럽게 보냈던 집안의 고양이들은 모두 병을 이기고 살아주어서, 한 마리씩 햇볕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늘어지게 잠이 들었다.
고양이들을 돌보고 매일 집안 소독을 하느라 그만 볼살이 쏙빠져버린 아내는 크게 놀랐던 마음에 안심하지 못하고 외출도 하는 일 없이 꼬박 한 달을 보냈다.

정말 더웠던 어느날 운전중에 랜덤으로 플레이해두고 있던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In The U.S.A.를 듣게 되었다. 그 당시 그가 거의 전 미국인들의 우상처럼 되었던 이유는 그의 노랫말이 미국노동자계급의 마음속에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습게도 레이건과 미국 공화당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추켜세우며 정치에 이용했었다. 그들에게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메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겠지. 알량한 애국심 고취에 사용한 셈이었다. 그리고 람보의 시대가 80년대를 지배해버렸었다. 이십 몇 년 전의 강대국의 사정을 내 나라의 현실과 연결하여 반추하게 될줄은, 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악기를 등에 메고 굵은 땀을 흘리며 연주하러 다니는 젊은이들 중에는 전직대통령들의 죽음 따위가 음악인생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지 모른다. 
김대중 정부가 시작되기 전에는 클럽이라는 곳에서 자유롭게 연주를 할 수도 없었다. 공연허가를 받지 않으면 고작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된 업태를 가지고서는 작은 연주회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이 고작, 십여년 흘렀을 뿐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도 되고, 거짓과 기만이 능력은 아니라는 것이 상식이라고 여겨도 되었던 시대가 지난 십여년이었다. 그 시대를 맛보았던 세대들은 정치인들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자유를 숨쉰다. 무임승차해버린 낡은 세대들에게도 나름의 자격이 있을텐데, 하물며 젊은이들이야.

록페스티벌의 생기넘치는 관객들, 야외무대와 실내의 공연장에서 눈을 마주칠 수 있었던 젊은이들... 그들의 반짝이던 눈빛들이 올 여름을 기억하게 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가을은 짧을테고 곧 찬 바람이 불텐데, 외투 속에서 웅크리지 않을 수 있는 겨울을 맞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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