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3일 화요일

게임 보이.


이른 아침, 좀처럼 이 시간에 외출을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오랜만에 아침 안개를 휘저으며 비몽사몽 집을 나섰다.

새로 일을 시작한 장소에 악기들을 설치해야 하는 일 때문이었다.
함께 차를 타고 가기로 약속한 드러머 친구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중에 기이한 소리가 나서 돌아보았다. 그것은 바로 저 아이가 게임을 하며 입으로 웅얼거리고 있던 소리였다.

작은 아이는 게임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대사와 외마디 소리,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음향 효과와 심지어 가상의 소품들이 내는 소리들을 모두 입과 손과 발로 내주고 있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그 아이가 얼마나 실감나게 소리를 내고 있었는지, 나는 그것을 구경하며 함께 열중하고 있었다.
분명히 심부름과 관련된 것임이 틀림없었을 오른쪽의 검정 비닐봉투는 이 아이에게 아무런 참견도 못한채 주저앉아 있었다.

아이를 구경하면서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한 잔을 꺼내어 마시고 났을 즈음 나는 비로소 잠이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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