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1일 목요일

섣달 그믐.

 


새벽에 깨어 계속 뒤척이다가 거의 못 잤다.

무슨 꿈을 꾸었었고 꿈 속에서 나는 아주 고된 일을 겪었었다. 밤중에 잠들기 전에 우연히 16년 전 고양이 순이의 동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의 순이는 몸집이 작은 어린 고양이였다. 순이는 화면 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그르릉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천진한 표정으로 장난을 치고 카메라에 얼굴을 가져다 대기도 했다. 그 영상을 찍고 있었을 때의 기억이 살아나 계속 내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작년에 고양이 꼼이가 세상을 떠나고, 벌써 순이가 죽은지도 5년째가 되었다. 잊고 지낼만 한데도 하루에 몇 번씩 더 이상 곁에 없는 고양이 생각이 난다.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 종일 맑지 못한 정신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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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30일 토요일

봄은 언제.

 



아직은 겨울이지만 햇빛이 밝고 기온이 영상인 날 집안에 머물러 있으니, 봄이 오는 것 같다. 영상이라고 해도 겨우 섭씨 4도 정도. 아직은 얇은 옷을 입고 외출하기는 어렵다.

치아와 잇몸을 수리하러 매주 두 번씩 치과에 가고 있고, 허리의 통증은 조금만 방심하면 찾아와서 괴롭힌다. 악기를 관리하는 일도 컴퓨터를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일도 점점 귀찮아진다. 글을 읽고 쓰는 일도 하기 싫어서 그냥 방치해두고 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이럴 때에 내가 해야 할 것과 삼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지금은 굳이 돌아보기도 알고싶지도 않다.

오늘은 갑자기 몇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아서, 긴 통화를 여러 번 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서, 모두 혼자만의 삶이라는 것을 견뎌가며 가끔씩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싶어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2021년 1월 26일 화요일

병원

 


어제 아침에 일찍 외출했다. 아버지의 병원 진료가 예약되어 있었다. 그 병원이 한산했던 적은 없었지만 이른 시간에 꽤 사람이 많고 자동차가 붐볐다. 주차를 하는데에 20여분이나 걸렸다.

아버지는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했는데, 다행히도 더 나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석 달 후에 정기적인 진료 예약만 하는 것으로 병원 일을 마칠 수 있었다.

내가 약을 사러 병원 앞을 걸어갔다가 오는데, 정문 앞에 어떤 노인이 몸의 앞 뒤로 크게 인쇄한 간판을 걸고 보도 위에서 소리 높여 말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려다가, 그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참신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그 내용은 길지만 요약하자면 '미국 바이든은 부정선거' 이며, '문재인은 박근혜를 사면할 것이 아니라 사죄를 해야 한다' 라는 것이었다. 그 곁에 있는 현수막에는 '박근혜 대통령님의 쾌유를 빌고 어쩌고...'가 써있었는데, 벌써 몇 년 동안 보여지는 그 천막은 어째서 치워지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다. 감옥에 있어야 할 전직 대통령이 그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노인이 들고 있는 문구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웃음도 났다.

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좋아서 가벼운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고양이 두 마리는 방금 들어온 나를 흘깃 보기만 하고 다시 나란히 앉아 계속 창 밖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마 새들을 구경했던 모양이었다.

오늘. 나는 치과 수술을 시작했다. 티타늄 픽스쳐가 내 턱뼈에 박혀졌다. 첫번째 수술을 마치고 간호사의 설명을 들은 후에 밖으로 나와 약국으로 향했다. 가느다란 는개비가 뿌려지고 있었다. 흐린 날씨였기 때문인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제 몇 개월 동안은 거의 죽만 먹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남아있는 수술이 여러 번이기 때문에, 아내를 귀찮게 하지 않고 내 끼니 정도는 혼자 해결할 방법을 찾기로 했는데... 기껏 생각해 낸 것은 오뚜기 스프와 죽을 여러 봉지 사가지고 온 것 뿐이었다. 

밤중에 갑자기 몸살 기운이 심해졌다. 입안의 통증 보다 근육통이 더 힘들었다. 감기는 아닌 것 같고, 아마도 치과에서 긴 시간 동안 눕혀지고 앉혀졌던 바람에 그랬던 모양이다. 어쩌다 보니 새해가 되어도 나는 줄곧 병원만 다니고 있다. 

2021년 1월 21일 목요일

비가 내렸다.


 아내가 운전을 하여 여주에 있는 그 병원에 다녀왔다. 두 달 전에 내가 구급차에 실려 갔던 병원이었다. 실손보험을 청구하는데 서류 한 장이 더 필요하다고 하여 그것을 핑계로 외출을 했다.

내가 구급대원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가서 하루 동안 입원했었던 병원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곳에서 다시 나올 때에도 나는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병원과 구급차의 천장의 모습만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차장도 낯설고 병원의 모양도 생경했는데 안으로 들어가 응급실 쪽의 천장을 바라보니 어렴풋 그때 내가 눕혀진채 실려갔었던 동선이 보였다.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이 좋았다.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내친 김에 그곳을 떠나 건대병원으로 가서 나머지 서류들을 확인하고, 보험 청구를 마쳤다. 집에 돌아오니 거의 여섯 시가 다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운전을 했다. 고양이들은 날씨가 흐렸기 때문인지 각자 따뜻한 이불 위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바깥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고양이 깜이 곁에 누워서 병원에서 교육받은 운동을 한답시고 다리를 몇 번 들어올리다가, 그만 그대로 잠시 잠을 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