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11일 일요일

무지개


공연장에 가는 길에, 하늘에 무지개가 떠있었다.
나는 경쾌하게 앞질러 가는 상훈씨의 차를 쫓느라 주변을 살펴볼 정신이 없었다.
날씨 좋은 주말 - 어떤 다수의 분들에게는 연휴의 첫날 - 공연장에 도착했더니 초록색 나뭇잎들이 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다.
조금 더 격렬한 선곡이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 시원한 공연을 했다.

선명한 무지개의 아래쪽에 함께 촬영된 검은 물체는.... 역시, U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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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 앰프

베이스 앰프는 저음이 풍부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다른 악기의 소리를 잡아먹게 하지 않으려면 그 저음을 절제해줘야 한다.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은 무대의 경우일 수록 낮은 주파수의 음들이 회오리바람처럼 공간을 휘감기 쉽다. 이런 경우 앰프의 저음쪽 이퀄라이저를 조금 줄여주면 해결될 수 있다. 

똑같은 헤드앰프라고 해도 어떤 크기의 캐비넷이 연결되어있는지, 앰프 주변의 다른 사물은 어떤 상황인지, 입력될 악기가 패시브인지에 따라 조작법은 다양하게 달라진다. 아주 민감하게 신경을 써주지 않으면 밴드 전체의 사운드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 부분이므로 그 책임은 베이스 연주자의 몫이 된다. 

어제의 공연에서는 모니터 스피커의 콘트롤을 맡아주셨던 엔지니어와 충분히 의견을 나눴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무대 위에서는 엔지니어와 스탭들을 신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연주자들은 엔지니어가 자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잊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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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8일 목요일

病.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사흘 째의 날.
아침 부터 온몸이 무겁고 관절마다 통증이 심했다.
머리에도 고통, 목에도 고통, 숨이 가빴다.
엄지 손가락은 많이 좋아졌었는데, 그만 방심하여 악기를 들어 올리다가 다시 삐끗하고 말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약속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약속을 해두고는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해야 한다. 길고 긴 하루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짐을 챙기려는데 '아직 덜 마친' 일감들이 있었다.
혼자만의 일이라면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달렸겠지만, 어린 학생들과의 약속이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이 떨리고 식은땀은 흥건한채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다시 계단을 한 개씩 꾹꾹 밟으며 집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부모님이 그렇게 반대를 했을 때에 나는 몰래 몰래 밤에 돌아다니며 연주자가 되고 싶어했다.
어느날 차비가 모자라 이태원의 길바닥에 앉아 첫 버스를 기다리면서 생각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음악의 일만 하고 살 수 있다면 그까짓 것 괜찮다, 라고.
지금 바쁘게, 쉴틈없이 음악의 일만 하고 살고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병이야 귀찮은 것이지만 뭐 그까짓 것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내 일을 하겠다고 종일 도로를 기어다니고 있는 동안에, 아내는 먼 길을 지하철을 갈아타며 어르신들을 찾아가 꽃을 드리느라 하루를 보냈다. 밤 늦은 시간에 어머니로 부터 고맙다, 는 전화를 받았다. (물론 나는 혼만 났다.) 나는 아파서 흐느적거리고 고양이들은 심심하여 난동을 부렸다. 아내는 피곤에 절어 털실처럼 힘없이 늘어져버렸다. 많이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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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특별한 생각을 해낸다고 해도 달리 도리가 없으므로,
시간이 흐르는 방향으로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일.
무슨 애를 써본다고 해도 늙어지는 것이고 죽어지는 것이니까,
어렵고 긴 여행이라고 해도 결국 흘러가야한다는 것이니까,
등을 떠밀려 흐느적거리며 걷진 않겠다는 정도.
겨우 그 정도의 다짐.

감기 몸살로 며칠 동안 고생을 하고 있었더니
어금니가 아프다. 아마 운전을 오래 하면서 이를 꽉 물고 다녔었나보다.
엄지 손가락을 다쳤는데 쉽게 낫지 않는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다. 많이 부었다가 점점 가라앉으면서 오히려 통증이 심하다.

새벽에 신기한 꿈을 꾸고 일어났다.
분명히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킬 때에는 꿈의 전부를 기억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기억해낼 수가 없다.
목이 부어서 침을 삼키기가 힘들다. 우유를 꺼내어 한 잔 마셨더니 갑자기 몸이 더 춥고 떨린다.
어느 분이 방송의 HD 화면을 캡쳐해주신 덕분에 공연했던 것의 일부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생각이 많아져서 어지럽거나, 아니면 열이 많이 나서 빙빙 도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텐데,
어찌된 일인지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