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7일 토요일

내 고양이.


깊은 밤이 되면 나는 혼자 한 쪽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잦다.
가능한 소란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 방문을 닫아두고 창문도 닫는다. (사실은 요즘 추우니까)
다른 사람과 고양이들은 집안의 다른 곳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고 잠을 자고 있다.
다만 고양이 순이는 나와 함께 방에서 밤 시간을 보낸다. 내 곁에서 졸다가, 일부러 가까이 다가와 참견을 하다가, 장난을 걸다가, 다시 근처에 누워 잠을 청하더라도 늘 함께 있어준다. 음악소리가 거슬리면 구석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을 잔다. 몸을 길게 펴고 편하게 자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인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있는 것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좀 미련해보이기도 한다.

커피를 만들어 놓으면 적당히 식을 즈음 발로 찍어 먹어보거나 한다. 요즘은 대담하게 컵에 머리를 박고 훌쩍 훌쩍 마시기도 한다.
기타를 치고 있을 때에 무릎 위에 올라와 앉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순이야, 하고 부르면 눈을 마주치며 그르릉 소리를 낸다.
나와 함께 지내는 몇 년 동안 고양이 순이는 하루도 어김없이 내 곁에 함께 있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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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어둠 속에서 iPod과 맥을 연결하기 위해 커넥터를 꽂았더니 잠시 밝아졌다. 작은 화면 위에 피크가 있었어서 예뻐보였다.

좋은 오디오를 사놓고도 마음껏 들어본 적이 없다.
언제나 한밤중이 되어서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 음량을 마음대로 크게 할 수가 없다. 결국은 헤드폰을 쓰거나 컴퓨터 앞에서 작은 음량의 모니터 스피커를 켜두거나 해야하는 사정이다.
팻 메스니 그룹의 The Way Up 같은 음반을 처음 부터 끝까지 적당히 큰 음량으로 주욱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아파트의 10층에 살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제법 방음 공사를 해놓았다는 건물인데도 심야시간 집안의 어떤 벽 쪽에서는 이웃집의 대화마저도 들을 수 있다. 벽에 귀를 대면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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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환자들의 하룻밤.


감기 기운이 가득했는데 며칠 불량한 수면을 취했던 것이 좋지 않았다.
이 정도의 기온에 두꺼운 옷을 입는 것도 거추장스러워서 부실하게 입고 다녔던 것도 나빴다.
감기 몸살 때문에 힘이 빠졌다.

밤중에 나는 어린 고양이의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큰 고양이들에게 두들겨 맞아서 생긴 상처인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피부 안쪽에 염증이 생긴 것 같았다.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가서야 피부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종양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갑작스런 일이었지만 24시간 동물병원이 그나마 있었다는 것에 고마와했다.


혈액검사를 하도록 허락하고 수술을 위해 입원을 시켰다. 이 꼬마 고양이가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신경이 많이 쓰였다. 고양이를 병원에 둔 채로 돌아오는 길에 맥이 풀렸었는지 몸살이 심해졌다. 환절기마다 감기로 고생을 했다가 올해엔 그럭 저럭 넘어가는 것 같았어서 너무 방심했었던 탓이다.

아내가 죽을 만들어줘서 겨우 배를 채우고 일하러 나갈 수 있었다. 밤중에 일을 마치고 고양이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아내는 주기적인 통증이 심하여 힘들어하고 있었고 나는 감기 몸살에, 어린 고양이는 4cm가 넘는 피부종양 수술을 마친 뒤 기운이 빠진채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 고양이 녀석은 병원의 의사 앞에서는 힘 없이 축 늘어진채로 불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동차에 데리고 올라타자마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평을 하는 정도였다.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그것이 심한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아예 욕설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동차 안에서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운전하기에 위험할 정도였다. 아내는 안간힘을 쓰며 꼬맹이를 달래려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우리는 꼬마 고양이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양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뒤이어 아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새로운 소식을 말해줬다.
"얘가 아무래도 오줌을 누고 있는듯한 기분인데... "
자동차를 잠시 세우고 실내등을 켰다. 뒤를 돌아보았더니 과연 졸졸졸 아내의 바지 위에 오줌을 누고 있는 중이었다.
꽤 많은 양의 오줌을 누고있던 어린 고양이의 얼굴에는 긴장과 갈등이 해결되는 다양한 표정이 지나가고 있었다.
생리욕구를 해결하자 금세 다시 수술을 마치고 하루를 굶은 어린 고양이로 돌아와 축 늘어져서 금세 졸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그 난리를 떨었던 것을 우리 두 사람은 알아들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꼬마 고양이는 두 손으로 어떻게든 머리에 씌어진 기구를 벗겨내려 애를 쓰다가, 화를 내며 고양이 화장실에 가서 한 번 구르고는 그 꼴을 한 채로 졸졸졸 뛰어가 밥그릇을 찾았다. 내일 아침까지는 더 굶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으므로 밥그릇을 빼앗았다. 솜에 물을 적셔 조금 먹도록 한 다음, 더 뛰어다니다가 수술한 상처가 덧나기라도 할까봐 고양이 이동장 안에 넣어주었다. 그 안에서 얌전히 있을 꼬맹이 고양이가 아니겠지만, 어쨌든.

다른 고양이들은 그들대로 감정이 상한 녀석, 일상이 깨어져 뭔가 불안한 녀석, 어린 놈이 아파하는 것 같아 걱정해주는 녀석으로 나뉘어 집안을 정신없게 했다. 그리고 아내는  통증으로 고생을 하고 나는 감기 몸살이었다. 아내는 고양이 이동장을 끌어다놓고 제일 심한 환자인 꼬맹이를 지켜보랴 다른 고양이들 돌봐주랴 고생스러웠던 밤을 보냈다.

이쯤되면 좀 누워서 엄살을 부리며 몸살을 앓고도 싶긴 한데, 종일 죽만 먹었더니 배도 고프고 잠들어버리기엔 시간이 아까왔다. 이런 저런 환자들의 만 하루가 지났다. 꼬맹이 고양이는 곧 건강해질테고 나머지 고양이들의 기분도 이내 풀어지면 좋겠다. 나는 내일 낮이 되도록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이제야 고양이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집안은 새근 새근 조용한 숨소리로 가득하다.

꼬마 고양이.


꼬마 고양이가 수술을 받은지 며칠이 지났다.
목에 갓을 두른채 지내려니 장난을 좋아하는 꼬마 고양이는 매일 따분하다.


머지않아 실밥을 풀고 상처가 아물면 다시 집안을 폭주하며 뛰어 놀 것이다.
귀여운 고양이가 어서 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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