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포항에서.

 

십여일만에 아침에 눈을 뜨고 뉴스를 보는 대신 음악을 틀었다. 아직 긴 과정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탄핵 의결로 내란 우두머리의 직무라도 멈추어 놓았으니 다행이다. 오늘은 끝날 때까지 음악만 생각하고, 집에 돌아갈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흐린 하늘에 바람이 불고 주차장엔 낙엽이 쌓여 있었다. 쓸쓸한 늦가을 오후 같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손을 녹이고 있었다. 여섯 시간 쯤 잤는데 뭔가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와 오늘은 다른 세상이었다. 아주 작은 차이이지만.
일부러 혼자 일찍 무대에 가서 한 시간 쯤 사운드 체크를 하고 개인 연습을 했다. 리허설은 이십여분 만에 끝났다. 나는 낯선 장소에서는 잘 자지 못하는 편인데, 지난 밤엔 아주 잘 잤다. 어제 연주할 때에 왼쪽 손목과 오른쪽 두 번째 손가락에 통증이 심했었다. 오늘은 일부러 충분히 손가락을 풀고 손목에 신경 쓰며 연습을 했다. 공연장 안에 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한 잔을 더 사서 조금 마시다가, 차 안에 놓아두고 돌아왔다. 더 먹고 싶었지만 공연 중에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연주하는 데 아무 불편이 없었다. 어제보다 나았고 지난 주와 비교하면 훨씬 좋았다. 아마 한 시간 동안 손을 풀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탄핵이 가결된 이후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나 음악을 들었던 덕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두 시간 공연을 마친 후 세 시간 이십 분 운전하여 집에 돌아왔다. 운전하면서 Joe Sample의 1997년 앨범과 Jim Hall 의 1978년도 라이브를 들었다.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음악 관련 기사를 읽어보는 일상이 한참만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만, 주차할 곳이 없어서 또 빙빙 돌다가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악기들을 차 안에 그대로 둔 채 집에 들어와서 자고 있던 고양이들을 깨워 껴안고 뒹굴었다.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탄핵. 공연장에서.

 

호텔 앞 바닷가에서 잠깐 산책을 하고 싶어서 나갔다가 얼른 다시 차로 돌아왔다. 너무 추워했던 이유는 아마 먹은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장승포에서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데친 문어와 숭늉을 먹고 몸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산비탈에 있는 공연장도 추웠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은 견딜만 했다. 리허설을 마쳤을 때 국회에서는 탄핵소추안 표결을 시작했다.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공연장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여의도에 일찍부터 나가 있다고 하는 조카에게는 '탄핵지원금'과 함께 메세지도 보냈다.
그리고 분장실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것을 실황중계로 보았다.

겸손은 힘들다 니트 옷, 아주 좋다.

그리고 공연. 물론 사십여분 연주하는 것이어서 덜 피곤했던 것이었겠지만, 지난 주 무대에서 느꼈던 극심한 피로감은 없었다. 하루 전에 여섯 시간 넘게 운전을 했는데도. 탄핵 가결 소식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볍게 공연을 하고, 일곱시 반에 포항으로 출발했다. 내일은 포항에서 두 시간짜리 공연을 할 예정이다.



2024년 12월 13일 금요일

거제도

여섯 시간 이십 분 운전하여 거제도 숙소에 도착했다. 영상인 기온이어서 옷을 가볍게 입고 왔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닷바람을 맞으며 추워서 깜짝 놀랐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사와서 호텔방에 앉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내일 공연을 하는데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면서 뉴스만 듣고 보았다. 라면을 먹고 나서 차에서 악기를 꺼내어 가지고 와 침대에 걸터 앉아 한참 연습을 했다.

새벽에 이제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드러누웠을 때, 그제서야 내가 집에 인이어 이어폰을 두고 그냥 와버린 것을 알았다. 그것을 잊고 안 가져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이틀 동안 빌려 쓸 인이어를 부탁해 봐야겠다.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식구들

 

하마터면 끔찍한 일을 겪을 뻔했던 일주일을 보내며 매일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지난 한 두 달이 일 년쯤 지나간 것처럼 여겨졌다. 그 사이 아내의 생일이 지나갔고 자동차 점검을 받았고 오랜만에 안국동, 계동에 가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도 했다. 내일은 주말 공연을 위해 거제도로 간다.

내 집의 식구들, 고양이 이지는 부쩍 식욕이 생겨서 뭐든지 집어 먹는 바람에 아내가 예민해졌다. 잘 먹으면 좋은 일이지만 겨우 당뇨를 이겨낸 이후에 다시 건강을 해칠까봐 우리는 걱정하고 있다. 실제로 체중도 늘었다. 정작 자기가 먹어야 하는 사료는 손가락으로 먹여줘야 하는데 먹지 말아야 하는 다른 고양이 밥은 몰래 잘도 먹고 다니는 것이다.

짤이는 심근비대증으로 급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이뇨제로 처치를 하고 나서는 신장수치가 올라가 전보다 세심하게 돌보고 있다. 아내는 고양이를 위한 산소방을 대여했다.

나이 많은 두 고양이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편안해진 표정으로 햇빛을 쬐고 있었다. 내일부터 이삼일 집을 비우는데, 낯선 곳 숙소 침대에 누우면 집에 있는 고양이들이 생각난다. 지금처럼 불안한 시국엔 더 그렇겠지.

한밤중에 깜이가 다가와 치대기 시작했다. 한참 안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놓았더니 그대로 내 발을 베고 누워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