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1일 일요일

올해의 마지막 공연

 

나는 지난 군산 공연을 마치고 스태프들에게 내 악기를 맡겼다. 그 덕분에 하루 전에 제주에 올 때에 가방 한 개만 들고 다닐 수 있었다. 페달보드에서 컴프레서 한 개만 떼어 내어 새로 건전지를 넣어 가져왔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악기의 네크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멤버들이 비행기를 타고 날고 있을 무렵 나는 준비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잠깐 쉴 수 있었다.

올해엔 모든 공연에서 이펙터 순서를 바꿔가며 페달보드를 사용했다. 오늘은 발 앞이 텅 비어있으니 옛적 언젠가로 돌아가 연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맨 처음에 클럽에서 연주할 때엔 아무 것도 연결한 것 없이 악기의 노브들만 가지고 음색을 바꿔가며 연주했었는데, 그 때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시월에 일본에서 연주할 때엔 컴프레서 조차 없이 연주 했었다. 그 땐 소리가 좋지 않아 두 배로 힘들었었다. 오늘은 내 악기의 소리도, 음향도 모두 좋았다. 두 시간 십분 동안 소리를 즐기며 연주할 수 있었다. 드라이브 페달을 가져오지 않은 대신에 공연 뒷부분은 피크로 연주했다.

한 해의 끝날에, 한 해의 끝 공연을 잘 마쳤다. 올해에 분주하게 많이 다녔다. 모든 일정을 아무런 오류 없이 잘 마칠 수 있어서 약간 뿌듯했고, 무대에서 악기를 챙겨 공항으로 향하는 승합차에 탈 무렵부터 어쩐지 몸이 으슬거리고 아프기 시작하여 기분이 안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하여 다음날까지 오한과 몸살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해열제를 먹고 더운물 안에 들어가 곰곰 생각해보니 앞의 이틀 동안 나는 감기에 걸릴 만한 짓을 했던 것 같다. 모든 일정을 마친 후에 긴장이 풀어져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아파서 끙끙거리며 신음을 내며 바가에 뒹굴고 있었다. 간신히 몸을 가누면서 그래도 모든 일을 마친 뒤에 아파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23년 12월 30일 토요일

제주에서

 

아내가 사진을 보내줬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더니 정말 내가 사는 동네에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고양이들은 잠깐 베란다에 나와 눈 구경을 하다가, 이내 따뜻한 곳을 찾아 집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호텔에서 나왔을 때 제주의 기온은 영상 13도. 나는 외투를 벗어 팔에 끼우고 공연장까지 걷기로 했다. 반팔 셔츠만 입었는데 땀이 났다. 이십여 분 걷다가 길가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이십여 분 걸었더니 공연장에 도착해버렸다.
이것도 집에 돌아온 다음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날 반팔 셔츠를 입고 걷다가 그늘을 만나면 선뜩했던 것이 전부 감기몸살을 제대로 앓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눈에 익은 이름이 적힌 차량들이 보였다. 우리 밴드의 공연 전반을 책임져 주는 이 팀은 제주도가 본거지이다. 그동안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할 때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하여 긴 시간 차량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하였다고 들었다. 이번엔 그분들의 '홈타운'에서 공연하는 것이어서 어쩐지 스태프들 모두 여유롭고 기운이 넘쳐 보였다. 한 해 동안 최선을 다 해준 그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들은 오히려 밴드 멤버들에게 선물을 준비해줬다.




2023년 12월 29일 금요일

제주로 출발

 

아침에 혼자 제주로 출발했다. 공항에 도착할 즈음 비행기 이륙시간이 미뤄졌다는 알림을 받았다. 시간이 생겨서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탑승구 앞 간이 식당에서 어묵 우동을 사 먹었다. 식당에서는 질 낮은 음원의 수준 낮은 가요를 무선 스피커로 찢어질 듯 틀어 놓아서 음식을 먹는 내내 괴로웠다. 화장실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천장에 달린 스피커로 매우 나쁜 음질의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피로해져서 탑승구 앞 의자에 털썩 앉아 있었다.

호텔 객실엔 마음에 드는 조명과 책상이 있었는데, 탁상용 조명이 고장이 나 있었다. 그것을 교환해주러 왔던 직원은 굳이 문 앞에서 구두를 벗고 방 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이 불편하여 신발을 벗지 않아도 좋다고 세 번 말했지만, 그는 '아닙니다'를 두 번 말하고, 세 번째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를 불편하게 한 것 같아 더 말하지는 않았다.

하루 먼저 왔으니 푹 쉬고 다음 날 활기있게 움직이려 했는데, 어쩐지 잠들었다가 추워서 깨어났다. 더운물로 씻고 새벽에 다시 잠들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지만 그 때 쯤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던 것 같다.


2023년 12월 24일 일요일

군산에서 공연.


 군산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악기를 설치했다. 사운드체크를 할 때에 음향 담당 스태프가 내 악기에서 전기 소음이 나고 있다고 알려줬다. 나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염민열에게 도움을 청했다. 민열이가 기타를 내려 놓고 다가와 내 악기들을 점검해줬다. 전기적 잡음의 원인을 그는 금세 찾아 냈다. 나는 문제가 있는 페달을 빼어 버리고 연주하기로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스태프가 잡음이 나고 있다고 말해주기 전까지 그것을 듣지 못했다. 웅크리고 앉아 캐비넷에 귀를 대고서야 겨우 알았다. 내 오른쪽 귀가 높은 주파수를 잘 듣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양쪽 귀 모두 그런 것 같았다.

이번엔 곡 순서 때문에 악기를 두 번 번갈아 사용했다. 첫 곡을 시작할 때 소리가 이상하여 한 번 더 당황했다. 리허설 때에 잡음 문제를 해결하느라 이것 저것 해보다가 앰프의 Bright 버튼을 눌러놓았던 모양이었다. 그나마 그것을 빠르게 발견하여 연주를 하면서 뒤돌아 슬쩍 버튼을 오프 시켜 놓을 수 있었다.
두 시간 공연을 마치고 주차장에서 자동차 시동을 건 다음 잠깐 눈을 감고 쉬어야 했다. 집으로 출발할 때에 다시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중간에 한 번 차를 멈추고 찬 바람을 쐬며 걷다가 다시 운전했다. 이제 올해의 일정은 주말에 있을 제주도 공연 하나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