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4일 수요일

리코딩


 명절 연휴 전날에는 의뢰를 받은 베이스 녹음을 집에서 했다. 데모를 여러 번 들어보고 연습을 많이 해보았다. 머리 속에서 정리가 끝난 뒤에 일부러 스튜디오에 출근하듯 방문을 닫고 앉아서 점심은 먹지 않고 밤까지 작업하여 일을 마쳤다.

완성된 음원을 보내고 나서 연휴 동안에는 언제라도 수정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녹음을 이어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연락이 오지 않아서 나 혼자 다른 악기로 재녹음을 해보기도 했다. 녹음에 썼던 베이스를 치고 있으면 그 사이에 줄이 닳아서 음색이 달라질까봐 줄을 풀어놓고 기다렸다. 휴일이 끝날 무렵, 다행히도 내가 보낸 베이스 트랙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 음악의 믹싱을 마쳤다는 소식을 전달 받았다.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녹음실에서는 짧은 시간 집중하여야 해서 일을 마치면 몸이 지치곤 했는데, 집에서 녹음해야 할 때엔 '됐다'라는 연락을 받을 때까지 긴 시간 강박을 느끼는 것 같다.

Recording 은 '리코딩'으로 발음하는 것이 맞지만 오래도록 우리말 표기는 '레코딩'이었다. 영어 발음이야 어떻거나 간에 레코딩으로 쓰고 말하는 것이 철자를 떠올리기도 편한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최근 우리말 사전에 등재된 외래어 '레코딩'에는 "'리코딩'의 비표준어"라는 설명이 붙어있었다. 놀랍게도 '리코딩' 항목이 따로 생겨있었다.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3년 10월 1일 일요일

준비

 

악기들을 하나씩 손질하고 새줄을 감고 있다. 한꺼번에 많이 사놓았던 스트링들이 다 떨어졌다. 이제 남은 것이 없어서 다시 사려고 하는데 내가 늘 사용하던 것이 품절이다. 검색을 해보아도 찾을 수 없거나 어쩌다 파는 곳을 발견하면 터무니없이 비싸다. 한 두 해 사이에 값이 많이 올랐다. 하는 수 없이 같은 게이지로 다른 회사 제품을 골라보아야 좋겠다.

오래 쓰고 있는 재즈베이스를 오랜만에 닦고 점검했다. 이 악기를 메인으로 삼아 함께 다닌지 열 여덟해가 되었다. 많은 연주를 이 악기로 했다. 그 사이에 플렛이 많이 소모되었다. 줄이 닿는 부분마다 닳아 없어져서 움푹 패여있었다. 새줄을 감았는데도 예전보다 덜 밝은 소리가 나는 것 같다. 플렛 때문일거라고 추측하고 있다.

올해 가장 바쁠 시월이 시작됐다. 운전도 많이 할 것이고 하루 이틀 외국에 다녀올 일도 있다. 모두 잘 해내고 나면 겨울이 되고, 나는 또 시간이 참 빠르다며 푸념을 하겠지.

2023년 9월 27일 수요일

가을

 

무릎 사이를 지나는 바람이 춥게 느껴지는 새벽에, 가을이 왔구나 했다.

세월은 빠르고 자연은 참 무심하다. 토요일 공연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고 있었다. 밴드 리더님과 만나서 그의 노래들을 함께 연주하며 지내온 지 햇수로 십팔년째 되었다. 긴 시간인데 무슨 계절이 한번 바뀐 듯 지나갔다. 듣고있던 음악을 끄고, 서버에 남아있는 식은 커피를 컵에 따라와 벌컥 마셨다.

2023년 9월 26일 화요일

고양이와 병원에

 

열네살 고양이 이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정기 진료를 받았다.

이지는 이제 혈당수치가 안정적이 되어서 하루 이틀 인슐린 주사를 놓아주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며칠 기력이 없어보여 몇 가지 검사를 추가로 하고, 피하수액을 조금 맞추었다. 진료를 마친 뒤에 곧 집에 갈 것을 알고있는 이지는 얌전하게 케이지 안에 앉아 있었다. 이지를 돌보기 위해 아내는 올 여름 전체를 집에서 보냈다. 넉 달 동안 아팠던 쪽은 고양이이고 고생을 한 쪽은 아내였다. 기대했던 것처럼 빠르게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이지의 성격처럼 조용히 느리게 낫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된 고양이 짤이가 이지의 곁에 슬그머니 다가가 함께 있어줬다. 이지는 까만 고양이가 다가오면 우선 꿀밤을 때려주고 보지만 짤이에겐 친절하다. 종이상자 안에 두 고양이의 숨소리가 빙빙 돌고 있었다. 나는 곁에 엎드려 팔을 뻗어 고양이들을 쓰다듬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