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6일 월요일

병원 응급실.


지난 밤에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서, 조금 전 친오빠와 전화를 끊은 아내를 독촉하여 아내의 본가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장인이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구급차를 부르고, 나는 따로 출발하여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새벽 한 시 반, 부친에게 발열이 있어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선별진료소로 모시고, 아내는 발열 없음으로 체크가 완료되었다. 노인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얼굴에 열꽃이 피어 있었다.

두시 오십 분. 환자는 흉부 방사선 촬영 후 계속 휠체어에 앉아 대기 중이었다. 선별진료소에서 그렇게 기다리다가 응급실 침상으로 이동했다. 보호자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 시 이십 분. 아내와 의논하여 나는 혼자 집으로 출발했다. 집에 가서 고양이들을 살피고, 아내의 옷가지와 필요한 것들을 챙겨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면 된다. 아내는 불편한 곳에서 불편하게 밤을 지낼 것이다. 우리는 각각 서로 이런 일들을 반복하여 겪고 있다.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아내는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불행한 상황들, 사람과 고양이를 돌보느라 돈과 기운을 소모하고 있는 상황이 나쁘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도 한번에 몰아서 닥쳐오지 않은 것을 고마와하는 편이 낫다고. 그것은 진심이다. 동시에 고양이가 위독했고, 노인이 위급했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네 시 오십 분. 집에 도착하여 고양이 세 마리에게 깡통 한 개를 열어서 나눠 줬다. 고양이 화장실을 청소했다. 내다 버릴 쓰레기 봉투를 한 손에 들고, 아내의 옷과 충전기 등을 챙겨 가방에 담아 다른 손에 들었다.

날이 밝았다. 긴 대기 시간. 다행히 장인어른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응급실에 도착한지 열 네 시간만에 노인은 심혈관 병동 3층 시술실로 들어갔다. 중재술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위중한 상태였어서 시술 후에 중환자실로 옮기겠다고 담당의사가 말해줬다. 중환자실에는 지금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으므로 보호자 역시 집에 가서 전화를 기다리라고 했다.

지금은 오후 네 시. 아내는 내 옆의 의자에서 졸고 있다. 상황 모니터에는 계속 '시술 중'이라고 표시되고 있다.

졸음을 이기려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문득 이제 죽고 없는 고양이 꼼이를 보고싶어했다. 지금은 가엾게 죽어버린 고양이를 그리워하고 슬퍼할 여유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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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30일 화요일

꼼이가 떠났다.

나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

오후 두 시에, 꼼이가 떠났다.
가여운 고양이는 우리의 품에서 죽었다.
이렇게 죽을줄 몰랐다. 석달 동안 꺼져가는 생명을 지켜보면서 나도 아내도 꼼이가 죽을 것 같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 것일 뿐이었다.

고양이를 화장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 나는 혼자 생각했다. 그렇게 힘겨워 하다가 숨을 멎게 될 때까지 우리는 고양이를 쓰다듬고 입 맞추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안락사를 했어야 맞았던 것이었을까. 나는 여전히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나는 숨이 멎은 고양이 꼼이의 털을 여러번 빗질해주고 있었다. 순이가 죽을 때에 엉크러진 털이 입과 몸에서 나온 진액에 굳은채 차갑게 말라붙었었다. 그것이 나는 너무 미안했었다. 꼼이는 단정하고 빛나는 흰 털을 가지고 생전에 내내 그랬던 것처럼 잘 생긴 고양이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눕혀져 있었다.

나는 무지개다리, 고양이 별과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 것으로 포장해보았자 현실은 그냥 고양이가 죽어버린 것이다. 허무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 상황을 억지로 예쁘게 꾸미는 말이 나는 싫었다.
하지만 나는 꼼이 덕분에 무척 행복해했었다. 꼼이는 아름다왔고 사랑이 많았다. 감정이 풍부하고 착했다. 순이도 꼼이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고양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데도, 4년 전에 먼저 떠났던 내 고양이 순이가 오늘 꼼이를 만나서, 반갑게 서로 몸을 부비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봤다. 제대로 상상이 되지는 않았어도, 그래도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라도 머리 속에서 꾸며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서, 그랬다.

꼼이에 대하여 뭔가 더 적어놓고 싶었는데, 지금은 무엇을 쓰지도 읽지도 못하겠다.
내일도 비가 내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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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7일 토요일

무력감.


꼼이의 상태가 점점 더 나쁘다.
세번째 수혈은 효과가 없었다.
이제 너무 비틀거려서 똑바로 걷지 못한다. 화장실에 들어가 오줌을 누는 것도 힘겨워 한다.

사료를 먹이고는 있지만 그것이 고양이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약도 먹이고 있지만 그 약으로 꼼이의 빈혈을 막아줄 수가 없다.
점점 더 빠르게 이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아내가 수의사 선생님과 지난 번에 안락사에 대한 대화도 했었다고, 오늘 나에게 처음 말했다.
이성적인 척, 합리적인 척 한다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할 상황에 대해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꼼이는 베란다 구석에서 편안히 눕지도 못한채로 있었다. 새벽에 사료를 먹인 후 이동장 위를 천으로 덮어줬더니 그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침까지 그 안에서 자고 있기를 바랐는데 잠시 후 확인해보니 다시 작은 방에 있는 붉은 캐비넷 아래에 숨어들어가 있었다.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루를 더 살더라도 고양이가 덜 아프게 해줄 방법은 없을까, 그 생각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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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6일 금요일

몸이 안 좋았다.


고양이 꼼이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나쁘다.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 틀림 없다.
꼼이는 이틀 전부터 자꾸 방구석에 있는 붉은색 캐비넷 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집에서 가장 어두운 곳을 찾아 다니다가 발견한 곳이 거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했다. 4년 전 고양이 순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똑같이 그 캐비넷 밑으로 숨어들어가 나오지 않으려 했었기 때문이다.

구석진 곳에서 나와 몇 걸음 걷더니 그 자리에 다시 누워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눕고싶어서가 아니라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서 그런 것이었다. 나는 꼼이를 부축하여 물그릇이 있는 곳까지 옮겨주고 조금 뒤로 물러나서 지켜 본다. 꼼이는 비틀거리며 느리게 걸어가 이번에는 베란다의 제일 끝 구석에 가서 누웠다. 나는 새 그릇에 물을 따라서 그 자리에도 한 개 가져다 놓았다.
지금은 다시 나에게 다가오더니 이마로 내 다리를 건드리고 얼굴을 부볐다. 고맙다는 뜻인지 아니면 혹시 기운이 좀 생겨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앉아서 꼼이를 안고 쓰다듬어줬다. 고양이는 다시 엉금 엉금 기어서 또 붉은색 캐비넷 아래로 들어갔다.

기온이 조금 떨어지고 비가 내렸다.
어쩐지 내 몸이 조금 안 좋다. 추위를 느껴서 집에 돌아올 때에 자동차 시트의 열선을 켰다.

오전에 아내가 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세번째 수혈을 받도록 했다.
어제 나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곧 동물병원으로 가서 수혈을 마친 고양이를 데리고 오기로 했었다.

밤 아홉시에 병원에 도착하니 꼼이는 우리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꼼이는 집에 돌아오는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움직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와 물을 많이 마시더니 고양이는 그대로 드러누워 자고싶어했다. 거의 여덟 시간 동안 병원에 있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꼼이의 발바닥이 모두 차가왔다. 물을 많이 먹은 후에 피가 섞인 오줌을 누었다.

나는 잠들었다가 땀을 흘리고 깨었다. 곁에 고양이 깜이가 나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 자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꼼이를 확인했다. 고양이가 너무 오래 굶은 상태였다. 계속 더 자고싶어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조금이라도 사료를 먹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털을 빗겨주고 사료를 조금 먹였다. 그제서야 차가왔던 발바닥도 따뜻해지고 코에 붉은 기운이 조금 돌아와 있었다. 수혈했던 것이 이제야 몸에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는지 다른 이유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첫번째 수혈을 받았을 때처럼 활발하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고양이 꼼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수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혈이 반복되면 그 효과도 떨어지고 부작용의 위험은 더 생긴다고 수의사가 말해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