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고장나버렸다.
이미 몇 주 전 부터 자주 켜지지 않는 증상을 앓더니 완전히 켜지지 않게 되어버렸다.
가벼운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들고, 건전지가 필요없었던 옛적 똑딱이 카메라를 그리워했다.
전지의 힘이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것, 집적회로 기판과 단순한 광학기계. 언제까지나 외부 동력 없이 제 기능을 다 해주는 것은 옛날 기계들이었던가.
늘 시험지 공책과 연필을 두고 지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는데 이제는 눈만 뜨면 잠자고 있는 컴퓨터를 깨워야한다. 주말에는 컴퓨터를 들고 일하러 갔어야했는데 그만 깜박 잊고 파워어댑터를 챙기지 않았었다. 일 년이 넘도록 혹사시켜오고 있는 맥북은 충전지의 힘으로 무려 세 시간이 넘도록 업무를 도와줬다. 어휴, 다행이군, 이라고 했지만 도중에 멈춰버릴까봐 얼마나 신경이 쓰였는지.
고장나버린 카메라야 뭐 수리를 하던가 하면 될일이고... 컴퓨터의 충전지도 여벌로 한 개 더 사두면 그만이다. 그런데 전기가 없어도 되었던 물건들을 자주 그리워한다.
2008년 8월 11일 월요일
묘한 꿈.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전부 믿지 못하겠다.
어떤 것은 아득한 옛일처럼 기억하지만 불과 몇 년 전의 일인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문득 떠오르면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사실은 선잠을 자다가 꿈을 꾼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낯선 공연장에서 연주를 하는 도중에 기시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내가 정말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머리 속에서 멋대로 만들어낸 기억인지 잘 모르겠다.
깨어나서 뭉기적거리며 일어나기 직전에, 꿈에서 베이스를 질질 끌고 걸어다녔다. 가방도 케이스도 없이 악기를 땅에 끌며 걷고 있었는데, 왜 그랬던 것인지는 당연히 모른다. 어쨌든 꿈속에서 다리가 아프도록 그렇게 돌아다녔다....는 느낌이 들었다. 끌고 걸어가면서 실실 웃었던 것도 같다. 혹시 나는 장차 미치거나 그러는걸까.
오늘은 유난히 일하러 가기 싫은 기분이 들었다.
꾀병이라도 부릴까 고민했었다.
.
고양이가 아끼는 것.
함께 살고 있는 막내 고양이는 유난히 높은 회전의자에 집착하고 있다. 끈, 줄을 가지고 노는 것을 즐긴다거나 담요를 입에 문채 질질 끌고 다닌다거나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마치 '이건 내거.'라고 말하는 듯 차지하고 앉아서는 기분 좋아하고 있다.
의자 위로 펄쩍 뛰어오르면 그 관성으로 의자가 잠시 회전을 하는데, 녀석은 그 놀이를 즐기다가 드디어 의자와 함께 큰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지만 반나절 동안은 의자 곁에 있기 싫어하고 있었다.
아내가 고양이의 젖은 털을 말려주고 한참을 빗질을 해줬더니 다시 그 의자 위로 뛰어 올라가 개운하다는듯 구르며 까불고 있었다고 했다.
.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