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6일 일요일

봄이 온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서면 조금 더운듯 하다가도 밤중이 되면 여전히 춥고 쌀쌀하다. 서른 번이 훨씬 넘게 계절을 보내왔으므로 얄미운 초봄 추위에 농락당하지 않는다. 절대로 감기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석 달 정도, 공연을 쉬었다. 물론 쬐그만 무대는 있었지만 공연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올해의 첫 공연은 교육방송의 음악프로그램 녹화로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겨우내 하고 싶었던 클럽 공연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오래 전에 분실한 뒤에 다시 구입할 기회가 없었던 Steve Kuhn의 앨범을 구하게 되어서, 조금 전 앰프를 켜고 틀어두었다. 확 하고 그리움이 생겼다. 에디 고메즈의 베이스도 정겹고 음질이 좋지 않았던 카세트 테이프로 여러번 들었던 넘버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왔다. 팻 메스니의 새 트리오 음반도 듣고 있다. 클럽에서 스탠다드를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올해에는 뭔가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몇 달을 각자의 일로 바쁘게 지냈을 멤버들도 다시 모여 연습을 시작하게 될텐데, 공연이 시작되고 연습이 이어지게 되면 또 분명히 다른 일은 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그저 매일 연습하고 공연하고 자주 녹음하고 그러면 좋겠다.

아프던 왼손은 지난번에 침을 맞은 이후 깔끔하게 나았다. 이번엔 오른손의 집게 손가락이 말썽이다. 통증은 없는데 자주 붓고 움직이기 거북할 때가 있다. 마디를 꺾으면 뭔가 뻑뻑하다. 이런 것은 무슨 운동으로 치유가 가능한 것인지, 김규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봐야겠다.

작년 말에 잔뜩 베이스줄을 사뒀는데 벌써 다 쓰고 한 세트 남았다. 우리나라는 올 가을이 오기 전에 몹시 힘든 상태가 될 것 같다. 컴퓨터도 작동하는데에 열흘 넘게 걸리는 사람들이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온 국민이 신나는 열차를 타고 추락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돈을 아껴야할텐데 연주 핑계 음악 핑계로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것들만 생각난다. 책가게에도 가고 싶고 음반가게에도 가고 싶고. 악기가게에도...

음악 일을 하는 주제에 뭐 그렇게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느냐고, 언젠가 선배 한 사람이 꾸짖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십여년을 빨갱이 타령을 하셨던 그 분은 지난 선거 때에 투표를 안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이제 기타줄값이 오른다거나 자신의 밥벌이가 시원치않게 된다거나 하면 그때는 누구를 욕을 하실지 궁금하다. 여전히 퇴임한 분의 탓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존 스코필드와 몇 몇의 재즈 뮤지션들이 생활이 어려워 의료보험 조차 가지지 못한 연주자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벌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실은 나도 여전히 넉넉한 생활은 꿈꾸지 못하는 입장이지만, 사회가 더 어려워진다면 누군가들을 돕는 일이라도 나서야 옳지 않을까. 저녁 무렵에는 부쩍 어두운 표정의 행인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아내는 털실 미니추어 베이스가 덜 완성되었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펠트에 관련된 온갖 정보를 뒤지고 있는 중이다. 하여튼 대단한 몰입이다. 빠듯한 살림이어서 그다지 여유롭지 않은 탓에 자꾸 집안에서의 소일거리만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혼자 뜨끔해하며 미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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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5일 토요일

내비게이션.



이것은 map이라고나 할까, 연주할 음악의 순서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적었던 것이었다.

이미 자세하게 그려진 악보를 나눠줬었지만 어떤 학생에게는 여전히 알쏭달쏭 복잡하여 간단한 마디 마디들이 모두 혼동이 되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모두를 불러 앉혀놓고 그 앞에서 커다랗게 그렸었다. 공연을 바로 앞둔 즈음 이런 정도의 대본읽기, 혹은 작전회의를 했다고 하면 공연날에는 아무 문제없이 연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은 다양하다. 공연 직전 한 친구는 나에게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난다'라며 초조해했었다. 그럴 수 있다. 음악을 모두 외고 있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든 될테니 무대에 나가서 잘해보렴, 이라고 해줬다. 그 학생은 썩 잘 해냈었다.
모든 것을 자세하게도 기억하고 있었던 한 학생은 긴장했던 탓이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직 연주중이었는데 그만 저 혼자 음악을 끝내고 말았다. 사소한 실수, 녹화된 영상을 다시 보니 그런 실수가 오히려 재미있었다.

나는 이 사람들중 누군가들이 정말로 음악 연주인이 되어서, 언젠가 어떤 무대에서 우연히 마주치거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고작 몇 분짜리의 음악 순서는 지도를 그리듯 일러줄 수 있지만 어떻게 해야 미래를 그려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거나 도울 능력이 나에겐 없다.
그저 소중한 것을 지켜가며 즐겁게 열심히 살게 되길 바라고 있다.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친구들이 인생의 map이 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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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4일 금요일

고양이와 아내의 인형들.


아내가 만든 인형들이 여러개가 되었다.
함께 살고 있는 우리 고양이들을 모델로 하여 태어난 인형들도 있다.
아내는 모델이 되어줬던 우리집 고양이들과 새로 만든 인형들을 나란히 앉혀두고 사진을 찍어뒀다.

반응이 각자 달랐던 것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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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11일 화요일

취미.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그것을 취미趣味 라고 한다... 라고 국어사전에 적혀있다. 말의 의미를 처음부터 이상하게 정의해둔 덕분에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이상하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영어사전에 적혀있는 뜻풀이가 나는 더 바른 의미라고 여겨진다. 영영사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즐거움을 위해 여가 시간에 규칙적으로 (regularly) 하는 활동.' regularly를 규칙적으로...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가의 문제는 조금 복잡하겠지만. (그래도 '정연하게'라고 하는 것 보다는 낫다.)

취미라는 것은 결국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짧게 말하면 될 일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전문적일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질을 재어보기 보다는 정말 즐거워서 열중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고 생각되어져야 맞지 않을까. 그런 생각의 시작이 필요하다.

지난 주에는 '취미일뿐인데 이런 것까지 꼭 해야하나요'라고 말했던 학생 하나를 붙잡아 앉혀두고 으르렁거리며 한참 동안 혼줄을 내었다. 태만, 무책임, 그런 주제에 이죽거리기, 거기에다 돼먹지 않은 삶의 태도를 일찍부터 체득하고 있었다. 결국 그 녀석은 학원을 그만뒀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꽤 오래 부모의 돈을 받아 음악학원을 다녔던 모양이었는데 그 학생의 본래의 취미란 시간죽이기였을 뿐이었으므로, 아마도 다른 어떤 곳에 또 '취미'를 붙여 다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취미라는 것이 결과와 질에 책임지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로만 통용된다면 그런 사회는 저급해지기 쉽다. 좋아서 하는 일조차 저급할진대 밥벌이를 위해서 하는 일은 보다 더 나을 것인가를 생각해봐주면 좋겠다. 개념과 가치가 엉망인 탓에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 조차 취미보다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에 있어서 보다 가볍고 한 걸음 물러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좋아서 즐기며 하는 일이므로 대충, 대강이 되어도 괜찮다고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이 전문專門 이라는 것일까. 돈을 벌어오는 일이 전문인가, 그것은 그저 생업일 뿐이다. 정말 좋아서 열중할 수 있지 않으면 전문적이라는 것도 되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깊이 관련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곳의 언론 - 기자라는 분들은 혹시 취미로 기자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본업에 종사하고 있어도 월급을 받아 생활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묻고 싶다. 물론 국어사전의 의미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몹시 저질이다. 여기는 대체로 저급한 취미의 사회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