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26일 토요일

고양이 순이.


나도 내멋대로인 나만의 기분의 주기가 있지만, 고양이의 기분상태는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다. 함께 살다보니 적당히 행동을 예측해 볼 뿐, 고양이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일은 아직 쉽지 않다.
밤중에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문을 나서는데 고양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 표정을 찡그리며 원망하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내가 언제나 밖이 어두워지면 나가버리니 순이는 이번에도 내가 외출하는줄 알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이내 다시 집에 들어왔을때, 고양이의 당황하는 얼굴과 마주쳤다. (그 표정을 정말 사진 찍어두고 싶었다.) 서로 멈칫, 그 자세로 잠시 정적.
분명히 내가 집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뭔가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이 녀석, 종이봉투들을 몇 개 끌어다놓고 신나게 놀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 내가 금세 돌아올줄을 몰랐던게지. 몹시 당혹스러워하더니 냉장고 위에 올라가 몸을 핥기 시작했다.
그렇군.... 역시 사람이든 고양이든간에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닌거야. 내가 늘 집을 나선 뒤에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의 눈빛을 기억하며 측은해했었는데, 속고 살았던 건지도 몰라.

따뜻해진 앰프 위에 올라가 나를 올려다 보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다시 혼자 남게 된 것인 줄로 알고 했던 행동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미안했다.
나는 순이를 한참 쓰다듬어 줬다.


2006년 8월 24일 목요일

악기 손질

처서가 지나고 있다. 반드시 절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조금 덜 덥고 습도도 낮아졌다.
아직도 음력으로는 7월이다.
경험상 이렇게 계절이 지나갈 때에 한 번 쯤 네크를 바로 잡아주면 마음 편한 가을,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네크를 분리해서 줄감개도 닦고 몸뚱이도 슥슥 닦아줬다.
귀찮아서 하지 않았던 레몬오일도 발라줬고, 약간 뒤로 누워있던 네크의 상태도 잡아놓았다.
새 줄을 감고, (고양이 순이의 방해를 적절히 막아내면서) 튜닝을 마치고 튕겨보니 기분이 상쾌해지는 그 느낌.


이틀 전에 김락건과 통화하게 되었는데, 전에 이야기했던 그 스테인레스 줄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줄을 기다리다가 도착하지 않아서 대신 다다리오에 적응하고 있었다.
스테인레스 이야기를 듣고 또 솔깃해져서, 궁금해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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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며칠 전의 쌍무지개를 못봤단 말야?"
눈을 뒀다 뭐하고 있느냐는 표정으로, 동생이 물었다.
당연히 볼 수가 없었지, 잠들어 있던 시간인데. 계속 밤하늘만 보고 살았더니 해가 떠있는 풍경을 까먹을 지경이다.
사람들이 말하길 그 날 서울에서도 두 개의 무지개가 한동안 하늘에 떠있었다고 했다.


2006년 8월 22일 화요일

Spain Again

미셀 카밀로 Michel Camilo의 모습을 볼때마다 상상을 해보는 것이 있다. 존 파티투치, 칙 코리아와 함께 양아치 분위기 물씬 풍기는 모양의 정장을 입혀서 나란히 거리에 세워두면 영락없이 마피아의 무리처럼 보일 것 같다는 것.

얼마 전에 친구의 커피 가게에 들렀을때, 그가 음반들을 뒤적거리면서 나에게 이 앨범에 대해 물었었다.
그런데 나는 올해에 미셀 카밀로와 토마티토 Tomatito의 두 번째 앨범이 나왔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베이스가 없는 음반들은 우선순위 아래로 미뤄 두고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가 물어보았던 앨범은 이것이었다.

그날 밤에 일부러 운율을 맞춘 것처럼 이름붙인 미셀 카밀로와 토마티토의 두 번째 시리즈 Spain Again과 키스 자렛의 두 장짜리 재즈 거장들에 대한 헌정음반을 알게 되어 당장 구매했다.


스페인 어겐 앨범은 행복한 소리들을 모두 모아 꾹꾹 눌러 담은 듯이 알차다. 악기라고는 기타와 피아노 두 개 밖에 없지만 전혀 빈틈이 없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얘기인가)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피아졸라 Astor Piazolla 특집이라도 꾸민 듯, 피아졸라의 곡이 세 곡 담겨있다. 당연히 'Libertango'가 들어가 있고, 'Fuga y misterio' 와 'Adiós Nonino'가 함께 들어있다. 그리고 스탠다드로 'Stella By Starlight'도 있고, 칙 코리아의 'La Fiesta'도 연주해줬다.(A key로 연주한 이유는 기타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리고 팻 메스니에게 헌정하는 곡이라고 하는 'A los nietos'가 있다. 평소에 칙 코리아, 조지 벤슨, 팻 메스니를 좋아하여 연구하듯이 듣고 있다는 Tomatito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미셀 카밀로는 앨범의 첫 곡은 피아졸라에게 바치는 곡 'El Dia Que Me Quieras Tricuto A Piazzolla'으로 시작하여 그 곡을 프롤로그로 삼고, 마지막 곡은 이 음반의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듯 에필로그로 삼아 노래를 넣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만든 시작과 끝이 근사하다. 마지막 곡 'Amor De Conuco'에서 노래를 불러준 Juan Luis Guerra는 사실 대단한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이 사람도 마피아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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