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5일 목요일

순이가 귀엽다.




처음에는 베이스 소리를 듣는 것이 싫어서 그러는줄로 알았다. 베이스를 치고 있으면 어디에 숨어있다가도 달려나와서 다리 위에 올라와 방해를 하곤 했다.
그럴때마다 다시 악기를 내려놓고 쓰다듬어 주고 달래준 다음 연습을 계속 했다.
어떤 때엔 나도 짜증이 나서 고양이를 덥썩 집어 푹신한 곳을 겨냥하여 집어 던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순이는 삐친 표정을 짓고 멀리 앉아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악기 뿐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안고 있으면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 같다.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다리 위에 베개를 올려두고 책을 받쳐놓았더니, 아니나다를까 다가와서 그 위에 뻔뻔하게 앉아버렸다.

이것이 고양이가 가진 일종의 질투인지, 아니면 '너 한번 엿먹어봐라'라는 투의 심술인지 파악을 하지 못하여, 지금도 여전히 달래고 쓰다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해주면 갑자기 많이 좋아한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마음 한쪽을 치유받는 기분이 들어서 나는 고양이에게 고마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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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3일 화요일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고양이.


내가 잠이 들때까지 고양이 순이는 방황을 하고 있다. 혼자 봉투안에 들어갔다가, 의자 밑에 누워봤다가, 빨래걸이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한다. 놀아달라는 것 같아서 다가가면 그냥 곁에 와서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내가 침대에 누우려는 모양을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단숨에 의자위로 올라가 자신의 잠자리를 마련한다.
이 의자를 침대 곁에 바짝 붙여둬야 한다. 그렇게 해두지 않으면 잠자는 동안 계속 순이가 칭얼거리는 소리에 시달려야한다.
무슨 이유로 이런 시스템이 형성된 것인지는 서로 기억을 못하겠는데, 어쨌든 사람과 고양이가 '나란히' 잠을 자야하는 것으로 되어지고 말았다. 언제나 곁에 있어주는 고양이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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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고양이.


동물과 단 둘이 살아본 사람이라면 나와 똑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고양이들은 은근히 사람에게 잘 엉겨붙고 치근댄다.
순이도 두 살이 되면서부터는 부쩍 무릎 위에 올라와 골골거리기 일쑤이고, 항상 졸졸 따라다닌다. 
내가 자려고 누우면 곁에 와서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으면 항상 책상에 걸터앉아 마주 보고 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다는듯 제 볼일을 볼때면 어디론가 사라져 내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못들은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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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2일 월요일

공연 후에.


잘 자고 일어났다.
그놈의 악몽에 대한 글을 써둔 효과가 있었던 것이었는지, 꿈의 강도가 많이 약해졌다.
정말 많이 피로할 때까지 버티다가 잠들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꿈을 꾸었어도 기억을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만 손이 퉁퉁 부어있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꺼두고, 대신 빈 공책을 펴놓았다. 천천히 하나씩 있었던 일을 짚어 보았다.
어제 밤에 부산에서, 마지막 곡이 시작될 때부터 무대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들어올때까지 아래층과 위층의 모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뛰며 좋아해줬다. 관객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볼 수 있는 것은 즐겁고 기쁘다. 기분 좋았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여유있어도 좋을 순간에 잔뜩 신경을 세우고, 긴장해야할 때에 바보처럼 느긋하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번의 공연을 통해 무대 위에서의 작은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이제 이 달의 일정은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시간이 생겼으니 며칠 놀러라도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는 여전히 없다.
일이 없어도, 놀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