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은 로리 갤러거, 다이어 스트레이츠와 스모키를 들으며 시작했다. 중학생 무렵 카세트테이프로 듣고 있던 음악들을 다시 들으며 즐거워 했다. 일월 넷째 주에 한국에서 '애플뮤직 클래시컬'이 시작했다. 그 덕분에 올해엔 어느 때보다 클래시컬 음악을 많이 들었다. 마리아 주앙 피르스의 피아노는 일년 내내 듣고 있었다.
그리고 조 헨더슨의 1991년 앨범 The Standard Joe가 리마스터 되어 나왔다. 나는 군복무를 마친 뒤에 이 시디를 누군가에게 빌려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들었었다. 그 후로 처음 들어보았다. 이 앨범을 시작으로 조 헨더슨의 음반들을 몇 장 연거푸 듣고 있었다.
2월엔 빌 에반스를 한참 들었다.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중계를 보고 답답해지면 얼른 어두운 곳에 앉아서 이어폰으로 빌 에반스의 음반을 들었다. 그리고 파가니니 현악 4중주, 기타 2중주와 피아노 음악들을 들었다. 엘렌 그리모의 모차르트와 라흐마니노프, 쇼팽 연주, 가브리엘 포레, 올가 셰프스의 쇼팽 연주를 듣고 있었다.
2월 마지막 주엔 쿼텟 허드슨의 음반을 들었다. 이 앨범엔 밥 딜런, 조니 미첼, 지미 헨드릭스의 곡들과 잭 드죠넷, 존 스코필드의 곡 몇 개가 담겨 있다.
3월엔 마리아 주앙 피르스의 앨범들을 연이어 들었다. 그동안 굳이 꺼내어 듣지 않고 있었던 키스 자렛의 클래식 연주 앨범도 들었다. 손열음과 Svetlin Roussev,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를 들었다. 피아노 음악을 듣다가 오스카 피터슨의 앨범도 두어 장 들었다. 그 사이에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를 나누어 들었다. Baden Powell, Ambrose Akinmusire, Julian Lage도 듣고 있었다.
집에서 또 쓰러져 허리를 부여잡고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다니면서부터는 빌 에반스와 짐 홀의 Undercurrent 앨범도 집중하여 들었다. 그 음색과 질감이 진통제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았다.
4월에도 클래식 피아노 음악에 푹 빠져 지냈다. 여수와 울산에 다녀올 때엔 운전하며 짐 홀, 카라얀의 벨를린 필, 파가니니 쿼텟, 옐로우재킷, 바니 케슬을 들었다. 찰스 로이드, 그랜트 그린, 존 콜트레인 쿼텟, 제리 멀리건의 앨범도 들었다.
한의원에서 한 번 침을 맞을 땐 물리치료, 부항 등을 함께 하기 때문에 거의 오십여분이 지난다. 이달에도 계속 침을 맞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침상 위에 엎드려 있어보려고 시도했다가 그만 뒀었다. 한의원에서 틀어두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몸에 찔러 둔 수십개의 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5월에 웨스 몽고메리가 목록 맨 위에 있는 이유는 애플뮤직에 있는 두 시간 십육분 짜리 앨범을 들었기 때문이다. 웨스 몽고메리는 정말 몸을 혹사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녹음을 많이 남겼다. 그래서 어느 것을 골라도 좋다, 라고는 해주기 어렵다. 물론 그가 연주한 것 중 제일 나쁜 것이라도 웬만한 연주자의 베스트 정도는 되겠지만, 두 시간 넘는 이 앨범은 딱 한 번만 듣고 말았다. 나머지는 아마 앨범 Full house를 재생한 시간일 것 같다.
이달엔 마이클 솅커 그룹, 스콜피언스와 주다스 프리스트도 들었다. 쿨 앤 더 갱, 드 바지도 들었었다. 맨날 옛 음악만 다시 듣고 있었던 봄이었다.
6월엔 13년 동안 타던 차를 폐차하고 갑자기 새차를 구입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대구, 군산, 인천에 다녀오는 길엔 그냥 배경음악처럼 클래식 피아노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새차의 스피커가 너무 품질이 나빠서 장거리 운전을 하며 음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냥 도로의 소음 속에 가끔씩 음악소리가 섞여 들리게 하는 데엔 피아노 음악이 알맞았다. 새차를 타고 지방공연을 하고 돌아와 제일 먼저 자동차 스피커를 교체했다. 포칼 스피커로 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
7월에 팻 메스니의 새앨범 MoonDial이 전부 공개됐다. 지난 해에 나왔던 Dream Box 의 연작이긴 하지만 그 느낌이 다르다.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 이 앨범을 자주 들었다. 그 외엔 케빈 유뱅크스, 바비 브룸, 퀸, 조지 벤슨, 바니 케슬을 듣고 있었다.
여러 번 재생하진 않았지만 이달에 나왔던 인상적인 앨범은 Slash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Orgy of the Damned였다. 블루스 앨범이고, 그의 기타 톤은 정말 멋졌다. 앨범 제목은 좀 민망했는데, 나처럼 취향이 저질인 사람이나 지레 민망해 하는 건가 보다, 했다. 그리고 애플 뮤직에서 앨범 그래픽을 굳이 움직여주는 기능이 이 앨범에서는 꽤 효과적이었다.
8월. 대전, 양산, 아산, 광주 등을 다니면서 음악을 많이 들었다. 심야에 집에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다보면 한 시간 두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위 목록의 것들을 많이 들었지만, 그 외엔 레드 제플린의 라이브로 시작하여 역순으로 앨범을 한 장씩 듣고, 데이빗 커버데일 시절 딥 퍼플을 듣다가 메탈리카로 이어지곤 했다.
빌 에반스와 에디 고메즈의 듀오 앨범 Intuition은 1974년 녹음이라는데, 이번에 처음 들어보았다. 빌 에반스가 연주하는 Fender Rhodes 소리가 듣기 좋았다. 스티브 스왈로우의 Falling Grace가 여기에 있었다.
또 조 헨더슨의 Big Band, 옐로우 재킷의 Parallel Motion, Jackets XL도 들었다.
9월엔 아버지가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수술 전 검사를 위해 병원에 몇 번 갔다가, 수술 두 주 후엔 다시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고 왔다. 대전, 경주, 광명에 공연하러 다니면서, 음악을 듣지 않고 있던 적이 많았다. 멍한 상태로 있거나, 틈이 나면 짧은 시간 잠을 잤다. 이달엔 위 목록에 있는 것들이 들었던 음악 전부였을 것이다.
10월은 아주 바쁘게 지냈다. 구미에 갔다가 다음날 서울 올림픽 공원에, 바로 그 다음날엔 칠곡에 가서 연주했다. 클래식 음악은 이제 다시 미뤄두고 알 디 메올라의 새앨범, 찰리 헤이든, 키스 자렛, 제프로버 퓨젼, 폴 데스몬드, 예스, 길 샤함, 브랜포드 마살리스, 스틸리 댄, Fourplay를 들었다. 조 샘플의 Sample This 앨범도 들었다. 이 음악들은 소니 워크맨에 담겨 있기 때문에 데이터를 걱정하지 않고 자주 들었다. 에릭 클랩튼의 새앨범도 들었었다. 주말마다 공연을 하러 다니는 중에 주중엔 부모를 차에 태우고 여주에 다녀오거나 병원에 다녀왔다. 장거리 운전을 하고 나면 허리가 많이 아파서, 찜질기를 등허리에 대고 음악을 들으며 누워 있었다.
1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예기치 않았던 일이었다. 영암에 다녀와서 완전히 지쳐 누워있다가 며칠 후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을 때에 노인이 어딘가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갑자기 위독해졌고 일주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이달에 음악을 들었던 기억이 없는데, 애플뮤직에서 정리해준 것을 보면 위의 것들을 저렇게 듣고 있었다고 했다. 일기장에 써둔 것 중엔 데이브 그루신, 덱스터 고든 같은 음악들도 있었다. 무엇에 기대고 싶은 마음에 음악을 마냥 틀어두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12월. 빌어먹을 자들이 내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고 온 다음날 밤 일이었다. 그 뒤로 한 달 내내 음악을 들은 것이 없다. 뉴스만 보았다. 거제도와 포항에 다녀올 때에도 유튜브로 뉴스와 시사방송만 보았다. 이틀 전엔 비행기 사고로 참사가 일어났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목숨을 잃었다. 분노, 상실감, 슬픔이 밤낮 없이 안개처럼 산과 강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