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2일 월요일

음악

중학생 시절 나는 매일 긴 시간 음악을 듣고 살았다. 그 시절 똑같은 음악을 끝없이 반복하여 듣고 있던 것이 정말 얼마 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무손실 음원, 리마스터 된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또 멀고 먼 옛 이야기라는 게 체감된다. 사십년 전 자주 듣고 있던 음악을 지금 좋은 음질로 다시 들어보고 있으면 중학생 때 카세트 테이프로 듣고 있었던 시절 그 음악들도 음질이 좋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어떤 테이프는 소리가 먹먹하거나 트레블이 지나치게 들려서 힘들어 했었는데 마치 지금 깨끗한 음질로 듣고 있는 이 음악 그대로 과거부터 듣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오늘 아침엔 Joe Henderson의 'Lush Life'를 듣고 있었다. 1992년에 나는 이제 막 나온 시디를 사서 그것을 양손으로 쥐고 집에 돌아와 경건하게 비닐을 벗겼었다. 어딘가 저 높은 곳에 있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 수준의 연주를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애플뮤직에 고해상도 무손실 음원으로 올려져 있고, 좋은 음질로 다시 듣고 있다. 그런데 애플뮤직에 어째서 'So Near, So Far' 앨범은 없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 내가 m4a 파일로 변환해둔 것이 보관함에 간신히 남아 있는데 도저히 원본 시디를 찾지 못하겠다.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고양이 이지

 

방 안에 햇빛이 들어오고 어렴풋 소리가 들렸다. 그릇 소리, 고양이를 어르는 말 소리가 들리고 있어서 잠이 덜 깬 채로 밖으로 나갔다. 아내가 이지에게 밥을 먹여주고 있었다. 아내와 이지 앞에 다리를 접고 앉아서 고양이가 고개를 흔들어 여기저기 뿌려둔 습식사료 파편들을 닦아 치웠다. 이지의 입 안에 곱게 갈은 습식사료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일을 하루에 세 번, 아내가 혼자 맡아서 하고 있다. 그렇게 일곱 달째 고양이를 먹이고 있고 여전히 이지의 혈당 수치는 백 몇 십이 나오고 있다. 스스로 먹지 못하는 나이 든 고양이에게 건조사료 대신에 깡통사료를 먹이기로 아내가 결정하고 실행하지 않았더라면, 이지의 당뇨병은 악화되었을 것이다. 비싸고 힘든 비용과 노력을 들여 고양이를 보살피고 있는 중이다.

베란다에도 햇빛이 잔뜩 들어오고 있었다. 창유리 앞에 서서 겨울 한 가운데에 있는 바깥을 내다 보았다. 이 집에 이십 년째 살고 있는데 처음 이사했던 날처럼 아직도 아파트 10층은 너무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난지 8년이 된 순이를 아직도 그리워 하고 있다. 찬 바람에 선뜩한 기분이 들 때처럼, 문득 보고싶어지고 가끔은 슬퍼진다. 애정, 교감, 좋아하는 마음은 생의 대부분을 힘들게 만든다. 함께 숨 쉬고 서로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때 그 잠깐의 기억을 달이고 고아 마시며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 낸다.

2024년 1월 11일 목요일


무슨 꿈을 꾸고 깨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과거엔 잠에서 깨어나면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곤 했다. 때때로 꿈풀이를 검색하여 읽어보기도 했었다. 꿈이라는 것이 기억을 정돈하여 뇌에 저장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자고 나서 꿈을 떠올려보지도 않게 됐다.

그 대신에 조금 전의 꿈 내용을 완전히 잊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기억하려 하고 있는지 추측해 볼 수는 있게 됐다. 아직 뇌와 꿈에 관한 과학적 성과에 대해 읽거나 배우기 이전에도 나는 꿈 꾼 것을 내가 현실에서 경험한 것과 관련지어 보는 습관이 있었다. 꿈이 미래를 예측한다던가 상징한다고 믿기 보다는 두서 없고 무논리적인 그 스토리를 기억하여 곱씹어 생각해보곤 했었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영어 어휘들, 음악 등을 기억하는 데 꿈 꾼 것을 연관시켜 기억해온지 오래 됐다. 그것은 기억을 엉터리로 저장해버리기도 했다. 현실의 것과 꿈의 내용이 섞여서 소설의 이야기나 낱말들, 노래 등등이 실제 경험과 다르게 기억되기도 했던 것이다.

꿈에 대하여 중요하지 않게 여긴 이후로 나빴던 경험에 대한 기억이 덜 생생하게 기억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을 기억하긴 하면서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것은 우선 순위 밖으로 저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주 힘들고 기분 나쁜 꿈에 사로잡혀 은연 중에 정신적 피로를 많이 느껴왔다. 이젠 힘들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꿈은 꾸지 않고 있거나 빠르게 잊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로, 거의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잉크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쓰는 것이 좋다고 듣긴 했었다. 오래된 만년필 회사는 기본적으로 잉크를 같이 만든다. 펠리칸은 잉크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요즘 펜을 만드는 회사는 전부 자사 브랜드의 잉크도 생산한다. 그렇다면 잉크만 제조하는 회사의 잉크는 어떤 만년필에 넣어 쓰면 좋은 걸까. 예를 들어 지금 내 디플로마트 만년필엔 다이어민 잉크가 들어있는데, 30ml 짜리 디플로마트 잉크를 진작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어민 잉크는 이 펜에서 아주 잘 흐르고 써진다. 오토후트 펜에도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다. 파버카스텔 펜에는 그동안 여러 브랜드의 잉크를 넣어 써오고 있다. 그래서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지냈다. 펠리칸 펜에도 다이어민, 파커, 카랜다쉬 잉크를 번갈아 넣어 쓰고 있었다.

지난 달 말에 펠리칸 잉크를 몇 병 샀다. 그동안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었던 M200 브라운 마블에 빨간색 펠리칸 잉크를 넣어 보았다. 놀랍게도 필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냥 잘 미끄러지고 잘 흐른다는 것만이 아니라 펜 끝이 종이에 닿아 그어지는 기분이 완전히 변한 것이었다. M200 파스텔 블루엔 파커 블루블랙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 대신에 새로 산 펠리칸 Türkis 를 넣어 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펠리칸 펜에 펠리칸 잉크를 넣으면 그것만으로도 펜의 닙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느낌으로 써지고 있었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신기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