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1일 목요일


무슨 꿈을 꾸고 깨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과거엔 잠에서 깨어나면 꿈을 기억하고 그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곤 했다. 때때로 꿈풀이를 검색하여 읽어보기도 했었다. 꿈이라는 것이 기억을 정돈하여 뇌에 저장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자고 나서 꿈을 떠올려보지도 않게 됐다.

그 대신에 조금 전의 꿈 내용을 완전히 잊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기억하려 하고 있는지 추측해 볼 수는 있게 됐다. 아직 뇌와 꿈에 관한 과학적 성과에 대해 읽거나 배우기 이전에도 나는 꿈 꾼 것을 내가 현실에서 경험한 것과 관련지어 보는 습관이 있었다. 꿈이 미래를 예측한다던가 상징한다고 믿기 보다는 두서 없고 무논리적인 그 스토리를 기억하여 곱씹어 생각해보곤 했었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의 내용이나 영어 어휘들, 음악 등을 기억하는 데 꿈 꾼 것을 연관시켜 기억해온지 오래 됐다. 그것은 기억을 엉터리로 저장해버리기도 했다. 현실의 것과 꿈의 내용이 섞여서 소설의 이야기나 낱말들, 노래 등등이 실제 경험과 다르게 기억되기도 했던 것이다.

꿈에 대하여 중요하지 않게 여긴 이후로 나빴던 경험에 대한 기억이 덜 생생하게 기억되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을 기억하긴 하면서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것은 우선 순위 밖으로 저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주 힘들고 기분 나쁜 꿈에 사로잡혀 은연 중에 정신적 피로를 많이 느껴왔다. 이젠 힘들게 하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꿈은 꾸지 않고 있거나 빠르게 잊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로, 거의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2024년 1월 10일 수요일

잉크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쓰는 것이 좋다고 듣긴 했었다. 오래된 만년필 회사는 기본적으로 잉크를 같이 만든다. 펠리칸은 잉크를 만들어 파는 것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요즘 펜을 만드는 회사는 전부 자사 브랜드의 잉크도 생산한다. 그렇다면 잉크만 제조하는 회사의 잉크는 어떤 만년필에 넣어 쓰면 좋은 걸까. 예를 들어 지금 내 디플로마트 만년필엔 다이어민 잉크가 들어있는데, 30ml 짜리 디플로마트 잉크를 진작에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다이어민 잉크는 이 펜에서 아주 잘 흐르고 써진다. 오토후트 펜에도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다. 파버카스텔 펜에는 그동안 여러 브랜드의 잉크를 넣어 써오고 있다. 그래서 같은 브랜드의 잉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지냈다. 펠리칸 펜에도 다이어민, 파커, 카랜다쉬 잉크를 번갈아 넣어 쓰고 있었다.

지난 달 말에 펠리칸 잉크를 몇 병 샀다. 그동안 다이어민 잉크를 넣어 쓰고 있었던 M200 브라운 마블에 빨간색 펠리칸 잉크를 넣어 보았다. 놀랍게도 필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냥 잘 미끄러지고 잘 흐른다는 것만이 아니라 펜 끝이 종이에 닿아 그어지는 기분이 완전히 변한 것이었다. M200 파스텔 블루엔 파커 블루블랙이 들어 있었는데, 그것 대신에 새로 산 펠리칸 Türkis 를 넣어 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펠리칸 펜에 펠리칸 잉크를 넣으면 그것만으로도 펜의 닙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좋은 느낌으로 써지고 있었다. 남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신기한 경험이었다.

안개

 

새벽엔 짙은 안개가 바깥에 자욱했다.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강쪽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최근 눈이 많이 내린 것은 한반도 주변에 수증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날씨 예보 기사에서 읽었다. 꼭 수증기나 대류현상 때문이 아니어도 이 동네에 안개가 가득한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조용한 새벽에 바깥의 모든 것이 안개에 가려져, 마치 고립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일은 전에도 몇 번 경험했었다. 아주 오래 전 고양이 순이를 품에 안고 안개가 자욱한 밖을 바라보며 베란다 창유리 앞에 서 있던 날의 기억이 최근에 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 앞에 지나갔다. 부드럽고 윤기있는 순이의 털과 갸르릉 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순이의 눈동자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베란다 문을 닫으며 집안으로 들어와 잠 자는 고양이 짤이를 쓰다듬어 주고 내 의자 위에서 몸을 말고 잠든 깜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볼을 갖다 대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찰나의 순간을, 기억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지와 아내가 자고 있는 방에 다가가 잠깐 귀 기울였다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음악을 듣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오래 조용한 공기를 느끼고 싶기도 했다.

2024년 1월 9일 화요일

겨울

 기온이 다시 내려갔고 오늘은 눈이 또 내릴 거라고 했다.

나는 어제 야외에 세워두었던 자동차를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세웠다. 나흘 동안 야외에서 눈을 맞은 차엔 얼음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유리에 얼어붙은 눈이 녹지 않았고 오래 낮은 기온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 기어가 작동하지 않았다. 내 오래된 자동차는 추운 곳에 오래 있다가 시동을 걸면 자동변속기가 작동하지 않아 바퀴에 힘이 전달되지 않곤 한다. 엔진은 움직이는데 차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기어를 반 수동으로 바꾸어 확인하면 기어 단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시동을 껐다가 몇 초 후에 다시 켜면 기어가 정상으로 작동했다. 그 문제는 영하의 기온에서만 일어났다. 다시 추워지고 또 눈이 내린다고 하니 내 차를 좀 녹여 둘 필요가 있었다.

이 아파트엔 자동차가 과포화 상태를 넘어선지 오래 되었다. 주차장은 모자란데 차는 계속 늘고 있다. 차가 많아지면서 겨울이 되면 어디에도 주차를 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지하주차장엔 다른 차를 가로막아 세워둔 차들 때문에 이동하기 조차 어렵다. 여유 공간 따위는 무시하고 길을 막은 차들을 밀어 치워놓고 차를 뺄 수도 없게 됐다. 세대가 변했기 때문인지, 이곳 주민들은 이웃에 대한 생각은 점점 못 한다. 자기의 이익과 손해에 예민하면서 공익적인 것에는 무심하다.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언제나 깊은 밤 시간일 수 밖에 없는 나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서 아파트 담을 끼고 몇 바퀴씩 돌며 헤메인다. 이번엔 날씨 예보를 보다가 늙은 내 자동차가 생각나서 아직 자동차들이 돌아오기 전에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둔 것이다. 어쩐지 이런 정도의 행위 조차도 내가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어쨌든 오늘 밤엔 내 차에 붙은 얼음이 녹을 것이고 다음 날 엔진과 기어도 이상없이 작동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