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6일 일요일

울산에 다녀왔다

 


금요일 오후 다섯 시 반에 나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하는 내내 정말 큰 비가 퍼붓고 있었다. 속도를 더 높이지 못하며 운전했다. 반대편 차선은 차들이 거의 멈춰진 채로 길게 줄을 서있었다. 집에서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 앱은 네 시간 이십사분 걸릴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었지만, 울산 숙소에 도착한 것은 밤 열한시 십오분이었다.

토요일 정오에 리허설을 하기 위해 공연하는 장소에 갔다. 날씨는 덥고 습도는 높았다. 출연하는 팀들이 리허설을 하는 동안 몇 명의 제작진 쪽 사람들은 춤을 추며 좋아서 뛰어다녔다. 그것을 한참 바라보았다. 구경꾼이라면 그래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거기엔 무더운 날씨에 무대를 설치하고 공연을 무사히 치르도록 하기 위해 옷이 땀에 절어 쉰내가 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잔뜩, 일을 하고 있었다. 서로를 동료로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은 삼갈 수 있었을 것이다.


긴 대기 시간 끝에 순서가 되어 연주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밤의 쇼를 즐기고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와 악기를 가방에 담으며 다음 날에도 이어질 일정을 위해 어서 숙소로 돌아가 쉬려고 했다. 그런데 무대 뒤의 사정이 긴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달되는 소식이 오분 십분 단위로 바뀌고 있었다. 내일 일정이 취소되었고, 한 곡만 더 연주하는 것으로 되었다가, 연주는 더 하지 않고 다 함께 무대 인사를 하기로 되었다가, 나중에는 인사같은 것 없이 그대로 행사를 종료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틀 동안 뉴스를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호텔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서 유튜브로 뉴스를 보았을 때가 되어서야 물난리로 또 다시 끔찍한 일들이 생겼던 것을 알았다. 나는 잠을 자는 대신 새벽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새벽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동이 트고 빗방울이 잦아드는 것 같더니 안개가 자욱해졌다. 멀리 햇빛이 보이고 구름이 걷힌 곳이 보였다가 거기에 다다르면 다시 비를 맞았다. 휴게소에서 연료를 채우느라 멈췄을 뿐, 화장실에도 들르지 않았다. 주유소에서 주유기 손잡이를 쥐고 있는 동안 몇 마리의 까마귀들이 서로 대화하듯이 까악거리고 있었다. 도로 위에 자동차에 치어 죽은 동물의 사체가 있었는데, 까마귀들은 거기에 달려들었다가 자동차가 다가오면 재빠르게 날아서 피하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에 집에 도착했다. 수해를 입은 사람들의 소식이 뉴스에 계속 나오고 있었다. 이틀치 뉴스를 몰아서 읽고 잠들었다.

2023년 7월 7일 금요일

이지는 낫고 있다

 


이지가 많이 나았고, 더 낫고 있다. 한 달 넘게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채혈을 하여 이지의 혈당수치를 재고, 열두 시간에 한번씩 이지에게 인슐린을 주사해줬다. 아내는 이가 없어서 혼자 제대로 먹지 못하는 이지를 위해 하루에 네번씩 처방식 사료를 손가락으로 떠먹이고 있다. 일주일 전부터 이지의 혈당수치가 정상범위 안에서 얕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인슐린의 양을 줄이고 주사하는 횟수도 하루에 한번으로 하게 됐다.

오후에 진료를 받으러 동물병원에 가서 그동안 집에서 이지를 돌보며 기록한 것을 담당 선생님에게 보여줬다. 혈당수치의 추이를 자세히 읽어본 주치의 선생님은 손뼉을 쳐가며 기뻐해줬다. 간단한 검사를 하고 약간의 피하수액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왔다.

물론 당뇨를 앓고 있는 고양이는 아직도 오래 더 보살펴줘야 한다. 그래도 다른 기저질환이 없고 빠르게 혈당수치가 안정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지가 낫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금 가벼운 마음이 들었다.


아내가 심어놓은 캣그라스를 꺼내면 고양이 가족들이 한데 모여 잠깐 동안 샐러드 파티를 하곤 한다. 어느날 밤엔 내가 이지에게 처방식을 먹이고 있었는데, 절반쯤 먹이고 있을 때 그 자리에서 헤어볼과 함께 캣그라스 잎을 그대로 토해내어버렸다. 그 소리에 잠들었다가 깨어난 아내가 다가와서 혀를 끌끌 차며 새로 캔사료를 꺼내어 처음부터 다시 이지에게 먹였다. 헤어볼을 잔뜩 토해낸 이유는 컨디션이 좋아진 이지가 종일 그루밍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다. 토해낸 것 정도야 얼마든지 치워주고 닦아줄 수 있으니 이지가 어서 건강해지길 바란다.


2023년 6월 29일 목요일

음악

 

두 주 전 일요일 밤에 집으로 오는 고속도로에서 이 앨범을 들었다. 이제 막 나온 새 앨범이었다. 전날 집에서 출발할 때 미리 다운로드해두었다가, 이틀 동안의 공연을 모두 마친 뒤에야 차분해진 기분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내 오래된 자동차는 내부 소음이 심해져서 중간부터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운전했다. 집까지 아직 이백여 킬로미터 남았었다. 어두운 도로의 차선을 응시하며 지레 피곤해있었다가, 다시 처음부터 앨범을 재생할 때엔 자동차 앞유리에 비치는 빛들이 모두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피로를 잠시 잊어버렸다.

여기에 있는 음악들은 명징하면서 평온하고, 정확한데 따뜻하다. 절묘하게 절제되어 있고, 아름답다. 이 음악인의 오랜 팬으로서, 이 음반을 들으면서 나는 이전에 그가 솔로로 내놓았던 One Quiet Night 이나 What's All 과 같은 앨범보다는 Bright Size Life 와 Watercolors 가 먼저 떠올랐다. 그 무렵 처음 들었던 할로바디 일렉트릭 기타의 조용한 분위기가 강하게 기억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겹쳐지고 잘 섞인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리버브는 물론이고, 앨범 전체의 음향도 아주 좋았다. 24비트 96khz 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은 이런 때에 제 몫을 다 한다는 생각도 했다.

이 앨범은 그냥 시작부터 끝까지 한 시간 동안 듣고 있어야 좋지만, 나는 한 가운데에 있는 I Fall In Love Too Easily가 맨 처음에 좋아졌다. 빌 에반스의 앨범 Moon Beams 의 세번째 트랙은 짧으니, 이어서 들어보아도 좋겠다. 나머지 두 곡을 제외한 여섯 곡은 새로운 오리지널 넘버들이다.

무엇보다도 멜로디. 그리고 감정과 기억, 여백이 이 앨범을 빛나게 해준다. 그는 작년 투어 중에 잊고 있던 폴더에서 찾아낸 것들을 꺼내어 긴 시간을 들이지 않고 녹음했다고 했다. 아무렴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다. 툭 던지듯 연주했다고 해도 그것은 오십여년 동안 쉼 없이 연주해온 사람의 음악일테니까.

2023년 6월 25일 일요일

묘이산

 


지난 주 일요일 아침에 나는 사천에 있는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놀랍게도 그 시간에 영업을 하고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얼음이 담긴 커피를 사서 몇 모금씩 마시며 새만금 포항 고속도로를 달려 군산으로 가고 있었다.

사오십 분 달렸을 때 갑자기 저 앞에서 볼록한 것 두 개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이 넓직한데 주변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덩어리가 솟아 있었다. 처음 몇 초 동안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곁눈질을 하다가, 언제 어디선가 저것에 대해 읽었거나 보았던 기억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이산인가 보다, 라고 했다.

나는 일부러 속력을 줄이려고 하진 않았다. 아침 햇빛을 잔뜩 맞고 있는 큰 암석 두 덩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걸 구경하느라 내가 느리게 가고 있었던 것도 몰랐다. 내가 달리고 있는 방향의 왼쪽에서 분별도 없이 불쑥 솟은 산 두 개가 지나가고 있었던 것인데, 나는 왜 저 산이 솟아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처음엔 기묘한 덩어리로 보이던 것들이 가까와질수록 비현실적으로 생긴 커다란 산이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위에서 떨어져 꽂혀버렸다기 보다는 아래에서 솟아난 것이라고, 왜 단정하여 생각했던 것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걸까. 생뚱맞게 튀어 올랐을 수는 있어도 하늘에서 뚝 떨어져 박혀버렸을 리는 없다고 저절로 여겨진 걸까. 어쨌든 마이산. 마이산이 저렇게 생긴 것이었구나. 수백년, 수천년 전에 그 자리에 발을 딛고 저 두 개의 산을 바라보았을 사람에겐 과연 신비롭게 보였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구천만년, 일억년 전 그곳은 호수였다고 했다. 그 한 쌍의 산은 퇴적암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단단한 바위가 되어버린 역암산이다. 다른 암석보다 가벼우니까 밀려 올라왔을 것이고 아주 뜨거운 열에 달구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이 여러 개의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그 중에 마이산이 귀엽게 들린다. 다만 내 눈엔 한쪽이 살짝 비틀어진 고양이 깜이의 귀를 더 닮은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 혼자, 묘이산으로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