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0일 토요일

순천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가방을 무대 뒤에 놓아뒀다. 백스테이지를 비춰주는 조명 한 개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비어있는 악기가방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누워 있었다. 잠시 치워두느라 놓여져 있었을 무대용 계단 위에서 낡은 긱백은 설치 미술처럼 빛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아주 많은 공연, 연주를 했다. 이 일을 생업으로 삼고 삼십여년을 지냈는데, 공연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기운이 빠진다. 그것은 체력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두 시간 짜리 공연이나 삼십 분 짜리 짧은 연주나 똑같이 연주를 마치면 몸 안의 무엇인가가 빠져나가 지니고 있던 에너지가 줄어든 기분을 느낀다. 어쩌다가 힘들지 않았던 날엔 내가 조금 전 무대에서 모든 힘을 다 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여 개운하지 않고 무언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순천으로 향하는 길에 오른손에 작은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다. 팔 년 전엔 왼손이 갑자기 저리고 감각이 둔했던 적이 있었다. 이번엔 오른손 검지가 통증은 없었지만 뻣뻣했다. 리허설을 할 때에 손가락이 편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 날 공연은 모두 피크를 쥐고 연주했다. 그 덕분에 제대로 연주할 수 있었다. 

잠이 모자랐던 것도 아니었고 허리의 통증이 심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손가락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생각하면서 밤길을 달려가는 승합차에 앉아 있었다.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어 고양이 이지의 혈당수치를 묻고 이지의 상태가 어떠한지 들었다. 내가 집에 없는 동안에는 아내 혼자 시간 마다 이지를 채혈하여 혈당을 재고 인슐린 주사를 놓고 스스로 먹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처방식과 캔사료를 개어 먹이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열흘 동안 우리는 고양이 이지를 보살피느라 긴장한 채로 살았다. 각자의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느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힘이 들었었나 보다.

이지를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게 하고 검사를 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이 말하길, 당 수치가 높은 것을 빼면 다른 모든 것의 수치가 정상이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그 말에 고무되어 나는 전력을 다 하여 보살피면 고양이가 금세라도 나을 것 같은 생각을 했었나 보다. 갑자기 좌골신경통이 생기고 손가락 감각이 둔해졌던 것이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나아졌다. 조금 차분하게 더 길게 보고 돌보면 이지는 낫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2023년 6월 6일 화요일

이지가 아프다.


열네 살 고양이 이지가 아프다.

어릴 때처럼 활발하지 않고 자주 드러누워 쉬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 그냥 나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당뇨병이었다. 병원에서 당뇨병 진단을 받고, 나는 작은 몸집의 고양이가 당장 전신마취를 하거나 수술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이지를 보살필 새로운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당뇨병 환자를 관리해주는 일은 짧은 동안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조기에 당뇨증상인 것을 알게된 것이라고, 주치의 선생님이 말해줬다. 사나흘 병원을 오가며 피하수액을 맞추고, 집에서는 이지에게 하루에 두 번 인슐린을 주사해주고 몇 번씩 혈당수치를 확인하는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고양이 이지는 치아흡수병변으로 이를 뽑는 수술도 받아야 했고 입원도 여러번 했었다. 그런 것들을 잘 극복했던 고양이이니까 당뇨병도 낫게 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한다.


2023년 6월 3일 토요일

작은 공연.


토요일 낮, 삼청동 길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엔 마스크도 없었다. 그들은 표정이 밝아 보였다. 몇 시간 후 서울의 다른 길 위에선 시국 집회, 시위가 열릴 것이었다. 경복궁 주차장은 청와대 만남의 장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편의점에서 산 음료를 손에 들고 길가를 걸어보았다. 해 저무는 길엔 바람이 불고 꽃잎이 날렸다.


일곱시 반에 연주를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이 암펙 B-15N 앰프의 소리가 참 좋았다. 나는 이 앰프를 늘 구경만 했다가 이번에 처음 써보았다.
연주는 두 시간. 시간이 주관적으로 흐르는 짧은 동안이 지나갔다.
깊은 밤이 되어 얇은 외투를 걸치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어둡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쳐다봤다. 몇 시간 전 그곳처럼 여겨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북악산을 다시 넘어서 달리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까진 일기예보에서 일요일부터 온다고 했었다. 사나흘 넘게 내린다고 하니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가물어도 비가 와도 걱정인 시절이다.

사진 속의 고양이들의 모습은 며칠 전에 찍어둔 것들이다. 흐리고 습한 오늘 집안의 고양이들은 종일 드러누워 잠을 잤다. 이지 혼자 낮동안 이쪽 저쪽 어슬렁거리며 조용히 참견하고 다녔다.



고양이 짤이는 자주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걸거나 몸을 부빈다. 조금 쓰다듬어주면 이내 드러누워 내 손을 움켜쥐고 그르릉 소리를 냈다. 잘 먹고 잘 자고, 언제나 점잖다. 착한 심성이나 점잖은 태도는 사람이나 고양이나 타고 나는 것 같다. 너는 매일 착하구나, 하며 안아주면 짤이는 더 크게 그르릉거리곤 한다.



고양이 깜이는 늘 심심하다. 나이 많은 고양이 언니들이 놀아주지 않으면 사람에게 불만을 늘어놓으며 뭐라도 해달라고 조른다. 먹고싶은 것이 있을 땐 갑자기 예의바르게 굴기도 하지만 저 혼자 졸음이 와도 요란하게 칭얼거리고 못본체 하면 생떼를 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무릎에 올려놓고 토닥거리면 이내 코를 골며 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