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3일 토요일

다급했던 이야기.

약속 한 시간 전에 지하 3층 주차장에 내려갔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며 들을 음반을 골라 틀어놓은 뒤 유유히 출발했다. 시간은 충분했다.
그런데 지하 3층 주차장 출구가 사라졌다. 하나뿐인 주차장 출입구에 셔터문이 내려져있었던 것이었다.
지하 3층에서 1층 수위길까지 뛰어 올라갔다. 관리해주시는 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지하 3층에 내려가 직원이 와주기를 기다렸다. 1분이 아까왔다. 만일 10분이 지체된다면 지각을 할 것이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한참 동안 11층에 머물러있었다. 십여 분을 기다린 후에야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1층까지 왔다가 다시 올라가버렸다. 나는 다시 1층 수위실에 뛰어 올라갔다. 관리인 아저씨는 인터폰으로 누군가에게 아까와 똑같은 말을 다시 했다.

직원이 내려와서 셔터문을 열어준 것은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왜 늦게 오셨느냐고 했더니 간단한 대답을 했다. '밥 먹느라고요.'

나는 미친듯이 도로를 달렸다. 분명히 과속단속 카메라에 촬영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분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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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5일 금요일

리듬이 망가져있다.



이틀은 아침 일찍 잠들었다.
뒤이어 이틀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정말 정신이 없다.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후에 비로소 차 열쇠를 두고 나온 것을 알았다.
다시 10층까지 올라가 방을 뒤지다보니 차 열쇠는 등에 매고 있던 악기가방 안에 있었다.
한숨을 쉬며 다시 지하 3층 주차장으로 가던 중, 이번엔 확실히 전화를 두고 나온 것을 알게되었다. 다시 10층으로 올라가 전화기를 찾아내고 더 잊은 것은 없는지 확인을 했다.

두 개의 악기를 들고 나와야 했던 탓에 이마엔 땀이 맺혔다. 연주를 두어 시간 앞두고는 '아파서 못 오겠다'는 전화를 한 드러머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

새벽까지 이어질 음악 소리를 생각하며 저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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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14일 목요일

이번엔 감기에 걸렸다.

지난 해에는 앓았던 적이 없었다.
정신적으로는 바닥을 기어다녔는데 긴장상태가 지속되었던 탓이었는지 몸이 아프지는 않았다.
올해 여름부터, 자주 많이 아팠다.

어제 밤에는 며칠 고생하던 배앓이가 낫는 듯 하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겨 새벽에 옷을 얇게 입고 어두운 거리를 뛰어 나갔었다.
그것이 나빴나보다.
얇은 외투를 다른 곳에 벗어두고 반팔 셔츠만 입은채 되돌아와야했다.
또 배탈이 나서 중간에 택시에서 내려야했다.
정신을 추스리겠답시고 몇 킬로를 걸어서 돌아왔다.
결국 감기에 걸렸다.

이제는 버텨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꼭 약을 사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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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9일 수요일

추석.

달 밝은 가을밤이었다.
추석. 옹졸한 가족이기주의와 사욕의 날.
자기만족, 생색, 이기심, 타인에 대한 무관심, 보상심리가 송편으로 빚어져 밥상 위에 올랐다.

이유없이 새벽부터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3천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안주로 삼아 먹고 있었다. 조금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제법 느끼하고 괜찮다.

아침에는 누군가가 마음을 다칠까봐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술을 마신 김에 이곳에 적어둔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에게 나는 우호적이지 않다.
당신의 딸이 선생이라면, 일반적인 인문학적 상식은 공부해뒀어야 맞다. 그것을 미처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부끄러워할 정도의 인성은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무식해지려는 노력은 해야 옳다.
우리 집안의 교사들 중 정의와 사랑,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인격의 고양을 가르칠 사람들이 몇 분이나 될까. 한 분 정도일까.

그놈의 종교. 죽음을 저당잡아 벌이는 다단계 사업.
무엇을 골랐더라도 당신들의 본능은 하나일 뿐이다. '아무튼 내가 좀 잘 살았으면 좋겠다.'이다.
역겹다. 구실을 만드는 것은 익숙하지만 역사의식이나 인륜은 먼 곳에 두고 그만 잊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계발하지 못했다. 내 자식을 사랑하고 내 부모를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지만 본질은 전부 너희들의 욕망이다. 명절은 욕망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난 자들이 모여서 음식을 나눠먹기가 되었다. 최소한 빼앗아 먹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정치 이야기, 얼마든지 해도 좋다. 정치란 원래 안주거리이다. 그러나 토할 것 같으니까 제발 사회정의 운운하지 않으면 좋겠다. 정의를 위해 피를 흘렸거나 죽었던 사람, 우리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출세를 위해 애쓰다가 잘못된 줄에 섰던 사람들이나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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