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바쁜 시월



어제 하루 여덟 시간 반 동안 운전을 했다. 오늘 새벽 두 시 반에 집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운 좋게 비어있는 자리가 있었다) 베이스를 꺼내어 어깨에 메고 집에 올라왔다.

삼십년 전에 나는 악기 가방을 메고 걸어다니느라 양쪽 어깨에 피멍이 사라지지 않았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초조했던 시절, 나는 훗날 연주를 하면서 살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베이스를 등에 메고 얼마든지 걷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 주 전에 시골집에서 고구마를 캐고 상자를 실어 날랐던 뒤로 허리 통증이 재발했다. 밤중에 집에 도착하면 차에서 악기 한 개를 꺼내어 드는 것이 힘이 들 정도였다. 나는 타협하고 게을러져서 지난 화요일 이후 악기와 페달보드를 자동차에 실어둔 채로 매일 다녔다. 오늘 새벽 한 주의 일정을 마친 뒤 드디어 차에서 악기를 꺼내어 짊어지고 페달보드는 트렁크에 옮겨 실었다. 이제 목요일에 일본에 다녀와 토요일에 안양, 일요일에 광주 공연을 할 때까지 다시 나흘 동안 악기들은 차에 실려져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바빴던 시월 일정들이 끝난다.

울주에 다녀왔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었다.

네 시간 반 동안 달려 울주에 도착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셀 수 없이 많은 산등성이를 보았다. 산이 만든 곡선들이 유난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차에서 내려서는 예상 못했던 추위를 느끼고 옷을 얇게 입고 온 것을 후회했다.

울주 산악영화제에는 몇 번 왔었다. 마지막은 2018년이었다. 태백산맥의 끝단 산바람은 언제나 상쾌한 공기가 떠다닌다.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에 바깥에서 밤공기를 들이마셔 보았다.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하루 종일


아침 열시 반에 광명역 맞은편 행사장에 도착했다. 가을하늘은 푸르고 높았다.

밴드의 연주 순서는 오후 다섯 시였다. 리허설을 열한 시에 해달라고 했던 모양이었다. 사운드체크 정도만으로 리허설을 일찍 끝낼 수 있었다. 열두 시에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나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안에서 조금 잠을 잤다. 지난 주에 시골집에 가서 일을 좀 했는데 그 뒤로 허리통증이 도졌다. 순서가 될 때까지 자동차 시트를 눕혀 드러누운채로 시간을 보냈다.


행사는 정해진 시간을 잘 지켜 진행되었다. 준비에 공을 들이고 돈을 아끼지 않은 티가 났다. 진행을 맡은 팀은 규율이 잡혀 있고 엄격하게 일을 잘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맡은 바를 잘 해내는 것과 자기들이 꾸민 각본을 고루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오늘 보았던 그 팀은 고압적이고 무례했다. 그것이 그 기업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처럼, 나는 느꼈다.
아픈 허리를 문지르며 정체가 심한 퇴근길을 열심히 달려 집에 왔다. 대표팀과 베트남의 축구 평가전이 시작하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통증 때문에 악기는 그대로 차에 실어둔 채 집에 올라왔다. 내일은 친구들 밴드 합주가 있다. 다음 주 일본에 가기 전 유일한 합주연습이다. 차에 실어둔 악기를 가지고 갈 작정이다.


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춘천 공연


전날 밤에 페달보드에서 MXR 프리앰프를 제거하고 보스 코러스 옆에 코러스 페달을 한 개 더 붙여 놓았다. 패치 케이블은 전부 빼어서 접점부활제로 잘 닦고 전원 연결선도 깔끔하게 새로 정리했다. 코러스 페달은 각각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함께 담았던 것인데, 나는 그 제조사를 아무 생각 없이 엉뚱한 회사의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잘 보이는 곳에 버젓이 상표가 붙어있었는데도. 공연을 다 마친 뒤에 염민열과 대화를 하다가 비로소 Providence 상표라는 것을 다시 알았다. 그렇게 오래 사용하고 있는 물건의 이름 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니. 생각을 게으르게 하면 안되는데.

공연장에 도착해서 우리 공연을 준비해주는 팀의 스탭 중 한 분이 하루 전날 돌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장 젊은 직원이었다. 리허설을 할 때에 모니터 음향의 상태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는 따로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고 연주하기로 했다. 우리는 밴드의 이름으로 따로 조의를 표하기로 했다. 무대 위에서 사고가 났거나 했던 일은 아니라고 해도 함께 일하며 많은 장소를 다녔던 분의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이 어두웠다.

이상한 기분을 갖고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왜 그랬는지 물 한 병을 다 마셨다가, 겨우 두어 곡 지날 무렵부터 오줌이 마려워서 아주 힘들었다. 마지막 곡을 연주하고 무대인사까지 잘 마친 뒤에 화장실까지 냅다 뛰어갔다. 이번 춘천공연은 그런 일들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