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6일 화요일

이지가 아프다.


열네 살 고양이 이지가 아프다.

어릴 때처럼 활발하지 않고 자주 드러누워 쉬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 그냥 나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당뇨병이었다. 병원에서 당뇨병 진단을 받고, 나는 작은 몸집의 고양이가 당장 전신마취를 하거나 수술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이지를 보살필 새로운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당뇨병 환자를 관리해주는 일은 짧은 동안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비교적 조기에 당뇨증상인 것을 알게된 것이라고, 주치의 선생님이 말해줬다. 사나흘 병원을 오가며 피하수액을 맞추고, 집에서는 이지에게 하루에 두 번 인슐린을 주사해주고 몇 번씩 혈당수치를 확인하는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고양이 이지는 치아흡수병변으로 이를 뽑는 수술도 받아야 했고 입원도 여러번 했었다. 그런 것들을 잘 극복했던 고양이이니까 당뇨병도 낫게 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한다.


2023년 6월 3일 토요일

작은 공연.


토요일 낮, 삼청동 길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엔 마스크도 없었다. 그들은 표정이 밝아 보였다. 몇 시간 후 서울의 다른 길 위에선 시국 집회, 시위가 열릴 것이었다. 경복궁 주차장은 청와대 만남의 장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편의점에서 산 음료를 손에 들고 길가를 걸어보았다. 해 저무는 길엔 바람이 불고 꽃잎이 날렸다.


일곱시 반에 연주를 시작했다. 그곳에 있는 이 암펙 B-15N 앰프의 소리가 참 좋았다. 나는 이 앰프를 늘 구경만 했다가 이번에 처음 써보았다.
연주는 두 시간. 시간이 주관적으로 흐르는 짧은 동안이 지나갔다.
깊은 밤이 되어 얇은 외투를 걸치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어둡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쳐다봤다. 몇 시간 전 그곳처럼 여겨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북악산을 다시 넘어서 달리는데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까진 일기예보에서 일요일부터 온다고 했었다. 사나흘 넘게 내린다고 하니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가물어도 비가 와도 걱정인 시절이다.

사진 속의 고양이들의 모습은 며칠 전에 찍어둔 것들이다. 흐리고 습한 오늘 집안의 고양이들은 종일 드러누워 잠을 잤다. 이지 혼자 낮동안 이쪽 저쪽 어슬렁거리며 조용히 참견하고 다녔다.



고양이 짤이는 자주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걸거나 몸을 부빈다. 조금 쓰다듬어주면 이내 드러누워 내 손을 움켜쥐고 그르릉 소리를 냈다. 잘 먹고 잘 자고, 언제나 점잖다. 착한 심성이나 점잖은 태도는 사람이나 고양이나 타고 나는 것 같다. 너는 매일 착하구나, 하며 안아주면 짤이는 더 크게 그르릉거리곤 한다.



고양이 깜이는 늘 심심하다. 나이 많은 고양이 언니들이 놀아주지 않으면 사람에게 불만을 늘어놓으며 뭐라도 해달라고 조른다. 먹고싶은 것이 있을 땐 갑자기 예의바르게 굴기도 하지만 저 혼자 졸음이 와도 요란하게 칭얼거리고 못본체 하면 생떼를 쓴다. 그 모습이 귀여워 무릎에 올려놓고 토닥거리면 이내 코를 골며 졸기 시작한다.



2023년 5월 18일 목요일

만년필 수리

 

지난 주에 펠리칸 펜을 쥐고 있는데 손가락 사이로 잉크가 흘러내렸다. 배럴에 틈이 벌어져 잉크가 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한동안 펜을 계속 닦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하여 잉크를 빼내고 펜을 씻은 다음 한참 들여다 보았다.

내가 펜을 노려본다고 뭐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번 더 만년필을 잘 닦고 보증서가 들어있는 포장상자를 꺼냈다. 수입사에 수리를 맡기는 일을 작년에 해보았기 때문에 당황하거나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았다. 수리센터로 만년필을 발송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았다.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펜을 수리하기 전에 담당직원이 전화를 해주고 어떻게 수리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 정도의 배려만으로도 수리를 부탁하는 쪽에서는 안심이 되고 신뢰감도 생긴다. 보증기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정책에 따라 수리비는 무상이었다.

담당자는 배럴이 깨어져 있으므로 교체를 할 것이라면서 펜이 심한 압력을 받았나봐요, 밟혔다거나, 라고 말했다.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고 가능한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지만 어쩐지 내 목소리에 섭섭해하는 심정이 담겨서 입 밖으로 나왔다. 그분은 배럴이 깨어진 이유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곧 말을 이어갔다. 배럴을 새것으로 교체할텐데, 준비되어 있는 부품은 새로 나온 모델 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새 모델이라면 내가 작년에 사서 가지고 있는 M605 펜처럼 불투명한 배럴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깐 고민해야 했다. 펜을 들어 빛에 비추었을 때 배럴의 줄무늬 사이로 잉크레벨을 볼 수 있는 것이 이 펜의 특징이며 장점이었다. 불투명한 펠리칸 펜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고는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잠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아무 서두를 일이 없어 보이는 편안한 음성으로, 그 담당자가 다시 묻고 있었다. 이 배럴로 교체해도 될까요. 나는 그렇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래서 완벽하게 불투명한 배럴로 바뀐 펠리칸 만년필이 돌아왔다. 불투명한 펜을 써본 적 없었다면 많이 어색하고 낯설어할 뻔했다. 어쩐지 더 견고해진 느낌이지 않아, 라고 나 혼자 위로하는 최면을 거는 중이다. 이 만년필만 두번이나 수리를 받았다. 이제 아무 말썽 없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