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20일 수요일

추운 봄.


어제 밤에 이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 몸은 피곤한데 다시 잠들지 못했다. 동이 틀 때에 다시 잠들었다가 그만 낮이 다 되어 깨었다.

꼼이가 하루 하루 더 아파 보였다. 안스러워 쓰다듬다보면 더 슬퍼졌다.
커피를 만들어 한 잔 가득 마셨다. 봄인데 마음은 한겨울 같다.

지난 화요일 이후 한쪽 잇몸이 다시 부었다. 사흘을 잠을 못 잔 상태로 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벼락같은 진단결과를 들었었다. 그 다음 이틀을 학교에 다녀왔는데, 피로를 제 때에 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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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병원에 가서 고양이 꼼이의 혈액검사 결과를 수의사, 아내와 함께 보고 있었다.
거의 모든 수치가 빨간색으로 표시되어있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다. 올해 2월부터 여덟 번의 검사결과들이 모니터에 보여지고 있었다.
지금은 꼼이에게 빈혈이 제일 심각했다. 빈혈이 무섭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수치들이 심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스테로이드 투약 덕분에 장기 내의 종양이 더 커지지는 않았고 복수도 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뿐. 위장관 쪽에서 출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내는 꼼이를 위해 보조제를 구입하고 주사기와 피하수액을 주문했다. 우리는 무엇이라도 더 해줄 수 있는 것을 찾고 있다.

작고 하얗고 예쁜 어린 고양이를 안고 집에 돌아왔던 그 해의 겨울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순이가 어린 고양이를 며칠 혼내기도 하며 훈육했다. 천방지축, 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금세 몸집이 커져버린 고양이 꼼을 순이는 자주 핥아주고 데리고 다니며 놀았다. 둘이서 함께 껴안고 자주 잠들기도 했다. 순이의 제대로 된 첫번째 친구, 고양이 가족이었다.

꼼이는 내 책상 곁에 놓여진 순이의 사진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다시 깊은 밤이 지나가고 있다. 집안은 조용하고 창문 밖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추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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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3일 수요일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퇴원 수속 후 아버지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졸음 운전을 하여 집에 돌아왔다.
아내에게 꼼이가 구토를 계속 했는지, 상태가 좋아지지는 않았는지 물어봤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 꼼이가 혈변도 쌌고 구토도 계속 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진료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시간을 확인한 후 한 시간 정도 외출복을 입은채로 잤다. 알람을 듣고 깨었을 때에 숨을 쉬기 위해 여러 번 심호흡을 해야 했다. 사흘째 잠을 거의 못 자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로 다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동물병원까지 가는 동안 아내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고양이 꼼이의 검진이 평소보다 오래 걸렸다. 나는 진료실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수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내 고양이 꼼이가 심각한 암에 걸렸고,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 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종양이 이미 간 근처와 소장, 대장에 모두 전이되어 있다고 했다. 복수가 생기기 시작했고 림프절로 보이던 것들이 암세포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했다. 나도 아내도 의사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을 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몇 개의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수의사로부터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약 4주 안에 고양이 꼼이가 죽을 것 같다고 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통보를 듣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에, 문득 이 집의 천장이 이렇게 낮았던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긴 침묵, 창문으로 들어오는 강바람이 피부에 싸늘하게 닿았다.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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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0일 일요일

병원.


이른 아침, 알람을 듣고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짐을 챙겼다.
아픈 고양이를 살피고 곁에 앉아 오래 쓰다듬어줬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부친을 모시고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입구의 검역이 더 엄격해졌다. 이틀 전에 돌아다니며 감염을 전파했던 사람에 대한 뉴스를 본 것이 기억났다.

밤중에 잠시 병원 밖에 나와 사람 없는 곳에 서서 마스크를 벗고 숨을 쉬었다. 집에 설치해둔 웹캠을 들여다 봤다. 고양이들이 모두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다. 나는 이가 빠진 미완성의 직소퍼즐처럼 여러 개의 찰나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비어있던 퍼즐의 자리에 슬프고 화가 났던 기억들도 빠르게 지나갔다.

다시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는 응급실이 있다. 지난 번까지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장모님 생각을 했다. 오늘은 어쩐지 그 기억들이 아득히 먼 옛 일들처럼 여겨졌다.

다시 병실로 돌아와 누워있는 부친을 살폈다.
지난 번에도 그는 몸에 연결된 주사 등을 뽑아버리는 바람에 병실 바닥을 피투성이로 만들었었다. 수술을 잘 마치고 집에 모셔다 드릴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나는 부친이 헛기침만 해도 벌떡 일어나 침상 위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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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7일 월요일

병원.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
도로는 정말 막혔다. 꼬박 한 시간을 운전하여 부모님 집에 도착했다.
두 분을 태우고 내비게이션이 시키는대로 옛 강변로를 따라 갔다. 금호동을 지나고 반포 다리를 건넜다.

진료를 받고 약을 사오면 끝나는 일정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 주에 했던 혈액검사와 소변검사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만일 아버지의 암세포가 여전히 펴져있다면 방광을 절제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곁에 앉아있던 모친과 환자인 아버지 두 분이 동시에 손을 내저었다. 더 수술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있었다. 의사가 시선을 나에게 돌려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선 방광경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본 다음 다시 진료를 하자고 했다.

방광경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에 다시 들어갔다. 나쁜 것은 또 다시 무엇인가가 발견된 것이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크기가 아주 작다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시경을 이용한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곁에 있는 두 노인이 다시 이상한 말을 할까봐 급히 달력을 꺼내어 의사와 함께 수술 날짜를 약속했다.

입원을 위해 협진을 받기 시작했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일들을 해야 했다. 내분비과에 들러 진료를 받고, 혈액검사를 다시 했다. 순환기내과에 들러 진료를 받고, 각각 한 시간 간격으로 심뇌혈관과에 들르고 마취과에 가서 협진을 이어 받아야 했다. 심혈관과에서 지난 번 스텐트 시술을 했던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되어 며칠 후 심장초음파 촬영을 새로 예약했다.

많이 걷고 오래 기다리느라 두 노인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나는 일부러 계속 선채로 있었다. 결국 심장초음파 촬영과 재진료를 마친 후에 마취과 협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수술동의서는 다음 주에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한 뒤에 쓰기로 했다. 아침 아홉시에 도착했는데,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야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부모 두 분을 다시 집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돌아올 때에는 퇴근시간이어서였는지 도로의 정체가 지독했다.
집에 돌아왔더니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뛰어 나와 반겼다. 몸이 편하지 않은 꼼이는 방안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손을 씻고 꼼이에게 다가가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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