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일 화요일

놀고 싶은 고양이.

새벽.
놀고 싶어진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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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일 월요일

음악 듣기.

from http://flickr.com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이렇게 생긴 것을 주머니에 넣고 하루 종일 귀를 이어폰으로 틀어막은채 지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떤 날에는 집에 돌아온 다음 내가 무엇을 타고 어떤 길을 지나서 귀가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귀를 막으면 여러가지가 편했었던 시절이었다. 코는 막을 수가 없었다. 최루탄에 유난히 약했던 나로서는 그것이 고생스러웠다.


세월이 많이 지나왔는데도 음악을 듣는 방법은 여전히 똑같다. 미디어만 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며 다닐 수는 없는 생활이 되었다.

예를 들어 주말이면 멀쩡히 설치해둔 오디오 기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좋은 음반들을 처음 부터 끝 까지 몇 장씩 들어본다던가 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일을 위해서 늘 켜두고 있는 음악들 말고, 온전히 내 정신을 씻고 닦거나 할 수 있는 음악 듣기의 시간은 거의 없다.


가방 안에 카세트 테잎들을 담거나 시디를 수 십 장 넣어다닐 때에는 무거워도 힘들지 않았는데, 그리고 사실은 그 시절에 듣고 좋아했던 음악들 덕분에 지금의 생활이 있게 된 것일텐데 이제는 작은 기계에 몇 만 곡을 담아 다니면서도 뭘 들을 시간이 없다니.

공부는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음악은 다 들을 시기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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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0일 토요일

고양이 털.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아 구석에 놓아둔채 건드려보지 않았던 다이나콤프.
고양이 털이 엉겨붙어 이 모양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고양이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고양이들은 매일 털을 뿜어내며 놀고 존다.

이런 것에 알레르기도 없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의 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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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7일 수요일

춘천


오늘은 그냥 포스팅 갯수 한 개 더해놓기 위한 글.
너무 블로그를 비워두고 있었어서 괜히 순서도 없이 써놓는 글.

그리고 사진은 몇 주 전에 잠시 들러 몇 시간 머물렀던 춘천의 명동 뒷골목이다.
그곳에서 군복무를 했었어서 오래 전에 나는 저 좁은 길을 군화를 신고 지나다니고는 했었다.
누군가가 면회를 와서 외출을 나와 즐기러 다닌적은 한번도 없었다. 언제나 부대내 사무실에서 회식을 하거나 함께 지냈던 동료들과 두 세 번 들러본 것이 전부.

춘천닭갈비는 정말 맛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좋은 음식인데, 문제는 내가 닭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다는 것... 그래도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의전상 맛있게 먹는다. ...혹은, 맛있어 보이게 먹을 수 있다.

춘천에 있던 시절, 주말 외출이라도 어쩌다가 나올 수 있게 되면 인성병원 뒷 쪽의 지하찻집에 갔었다. 당시에 유일하게 음악 비디오를 상영하고, LP로 신청한 음악도 틀어주던 가게였다. 퀘퀘한 지하실 냄새를 견디며 담배를 한 갑 다 비우도록 몇 번이나 들었던 옛날 음악들이 기억난다.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터덜 터덜 부대로 복귀했던 적도 있었다. 커피는 참 맛이 없었지만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군인 시절에 그곳은 정말 좋은 장소였는데,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 춘천 시내에는 뭐 그렇게 커피집이 많이도 생겼는지.

군 시절의 동료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제대를 한 뒤로 군 시절의 이야기는 남들에게 거의 하지 않지만, 그곳에서 만났던 유능한 내 선임들, 영리하고 재능 많았던 어린 친구들, 언제나 신세를 졌던 분들의 모습은 아직도 이십대들의 모습으로 내 기억 속에 살고 있다.

군대 시절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군복이었다. 
나는 내가 의외로 제복을 입고 지내는 폐쇄적인 조직 생활에 잘 맞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 충격적이었다. 폭력을 다루는 조직, 국가가 강제하는 획일적인 상명하복 체계의 집단 속에서 나는 꽤나 규율을 지키는 체 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철두철미하며 적당히 비열해지기도 하면서 잘 살았다. 만약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직업군인들이 조금만 더 의롭게 보이고 전문적이라거나 신념과 자긍심에 차있는 모습이었다면 큰일이었을 뻔 했다. 그 집단에 머물러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올 여름에는 자전거를 타고 한 번 춘천에 가보고 싶은데, 사실은 자신이 없다.
겨울을 지나면서 뭐 이렇게 통증이 많은지. 아프다는 말이 습관처럼 입에서 나와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는 중이다.

기타치는 민열이는 강화도에 놀러오라고 했는데, 그곳에도 꼭 가보고 싶다. 멀리 남쪽에 계신 선배님, 형님도 찾아뵙고 싶은데 내가 몇 가지나 해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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