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얼어붙은 겨울.


베토벤을 듣고 있는 새벽.
몇 해 전에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 Wilhelm Bakhaus 라는 분이 1969년에 돌아가신 분이었다는 것을 (너무 한참) 뒤늦게 알고 놀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까먹고 조금 전에 베토벤 소나타가 생각이 나서 틀어 둔 채로, '와... 이 사람은 아직 연주를 하시나?'하고 또 찾아봤다가 몇 해 전에 놀랐던 기억을 되찾음. 바보도 아니고.

CD 음반으로 겨우 듣고 있는 20세기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이렇게 좋은데, 쇼팽이 살아있을 때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방 안에서 그의 연주를 직접 들었던 사람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좋았겠지 뭐. 졸았거나.
완전히 취향의 문제이지만 키스 자렛의 연주 도중에 들리는 신음은 너무 너무 듣기 좋은데 글렌 굴드의 허밍은 어김없이 짜증이 났었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한 주일을 보내고 몸과 정신이 망가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 손만 씻은채로 쓰러져 다섯 시간 동안 잤다. 갑자기 뺨을 맞으면 갑자기 이성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뭔가 많이 엉켜있는 채로 기분좋지 않은 곳으로 치닫고 있다가 스스로가 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체험해보면 순간 편안한 정신 상태를 되찾기도 한다.

바로 지금이 그런 느낌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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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하지마.


조금 힘들었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들었는데 문자메세지가 와있었다.
뒤늦게 확인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동안 내가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기연습을 하고 학교공부와 음악공부를 하느라 하루가 모자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집안 형편이 특별히 어려워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조금의 사치를 부리기 위해서도 아니라, 단지 그렇게 일을 해야 하는 현실로 몰렸기 때문이었다.

휴일을 누리지 못하는 십대의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내가 미안해요,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다. 그럴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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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4일 수요일

다 보인다, 얘.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자꾸 눈 곁에 뭔가 움직이는 것 같다.
이지가 스피커 뒤에 숨어서 눈이 마주치면 몸을 낮추고 내가 보지 않는 체를 하면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놀고 있었다.

많이 재미있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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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9일 금요일

불조심.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동생의 집 아래층에서 작지 않은 화재가 났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아내는 낮 부터 동생 집 앞에서 함께 걱정을 하며 소화현장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동생네는 피해가 없다고 했지만, 불이 나고 비어있던 다른 집에서 숨지고 만 개가 한 마리 들려 나오기도 했다고 들었다.
위험한 일을 목격했는데도 나이 어린 조카 아이들은 의연했다. 저녁에 찾아가 만났을 때에 아이들은 장난하듯 말을 던졌지만 사실은 제일 먼저 집에 남아있던 동물과 벌레들을 걱정했다고.
정서적인 균형감은 그 녀석들 엄마인 동생의 생활에 배인 정서 덕분일 것.
여러가지로 다행.
하지만 어릴적 부터 늘 동생보다 덜떨어지고 안정된 정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 라는 녀석은 여러가지로 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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